[영화선우]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를 닮은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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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과 악(惡). 무엇이 선과 악을 결정짓는 걸까. 선은 정의를 갈구하며, 사회가 정한 상식과 논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악은 이런 기준을 이탈한다. 둘의 구분은 명확하지만, 모호하기도 하다.

선과 악 사이의 딜레마는 종종 있다. 2018년에 개봉한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에 사상 최대의 악당 타노스가 등장한다. 그가 지구를 파멸하려는 이유는 권력욕을 충족시키거나 물질적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과 함께 발생하는 자원 고갈과 인구 폭발 문제로 인한 우주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다. 2014년 개봉작 <킹스맨>의 악당 발렌타인 역시 지나친 인구 증가로 인해 지구가 멸망 위기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인류를 몰살시키려 한다. 2004년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서는 악당 신드롬이 기회균등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영웅을 없애고 신세계를 세우려고 한다.

2008년 개봉작 <추격자>의 주인공 엄중호(김윤석)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는 출장 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다. 과거에는 법을 수호했지만, 지금은 법을 어기면서 먹고 산다. 엄중호는 우여곡절 끝에 자기 종업원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를 추격한다. 이유는 사적인 복수였다. DC코믹스의 배트맨은 선악의 딜레마가 선명한 인물이다. 낮에는 기업인으로 대외적 활동을 벌이지만, 밤이 되면 사회 야경꾼을 자처하며 악당들을 처단한다. 그의 행위는 법에 의거하지 않는 불법행위지만, 그를 응원하는 사람은 많다. 법과 정의가 충돌하는 딜레마적 상황이 온다면, 정의가 법을 이겼으면 하는 희망을 가진다.

<조커>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다. 영화의 배경인 고담(Gotham)시는 환경미화원의 파업으로 곳곳에 쓰레기가 쌓였고, 넘치는 오물로 쥐들이 우글거린다. 테러와 강도, 살인 청부가 벌어지고, 치안을 담당하는 검찰과 경찰은 부패했다. 이곳에서는 정의는 좌절되고 약자는 강자에게 짓밟힌다. 빈자는 부자를 증오하고, 부자는 빈자를 멸시한다. 재정 형편이 어려워진 시 당국은 당장 빈자에 대한 지원부터 줄이고, 빈자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조커를 추앙하게 된다.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병든 홀어머니와 단둘이 변두리 낡은 아파트에 산다. 용역업체에 속한 파티 광대 아서는 광대 가면을 쓰거나 분장한 채 파티에 가 분위기를 돋우거나 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한다. 고된 삶이지만 아서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매일 저녁 어머니와 함께 스탠딩 코미디 1인자로 유명 토크쇼를 진행하는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의 쇼를 TV로 보며 코미디언의 꿈을 키운다. 어머니는 그런 그에게 “늘 웃으며 살라”며 ‘해피’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하지만 아서는 폭력과 무시·조롱·경계의 대상이다.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그를 망가뜨리는 요인은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기분과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웃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정신질환은 그를 곤경에 빠트린다.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 아서는 점차 변해간다.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의 프리퀄에 속한다.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기원을 그렸다. 가난한 이들의 절망·박탈감·분노로 인해 세상은 폭력이 난무한다. 정의는 좌절되고 약자는 철저히 짓밟힌다. 영화는 힘없고 여린 사회 부적응자에서 내면의 증오와 폭력성을 발견하고 증폭시키며 괴물로 변해가는 ‘조커’의 변화·성장을 면밀히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지위 문제나 취약계층의 처지를 드러낸다. 이런 측면에서 <조커>는 히어로물보다는 약자의 편에서 사회를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를 닮았다. 짙은 분장을 한 아서의 웃음에 울음이 엿보이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조커>가 총기 범죄를 부추기고, 범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인공을 모방한 반사회적 범죄가 잇따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영화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반사회적 인물들이 계속 나오는 사회의 현실은 들여다보지 않고 모방 범죄의 위험성에만 주시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SNS 모두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화제다. <조커>는 걸작인가, 범작(凡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