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경북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찌그러진 회전문과 경찰을 사이에 두고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건물 안팎에 앉았다. 오전 대치 중 깨진 개찰구 유리조각과 일회용 도시락이 바닥에 뒹굴었다. 도로공사 2층 로비에 앉은 노동자들을 경찰이 에워싸고, 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가 한 번 더 에워쌌다. 건물로 통하는 출입문은 모두 막혔다.
이틀째 로비를 점거 중인 250여 명 대부분은 여성노동자다. 전국 고속도로영업소에서 일하는 5개 노조원들이 모였다. 지난 8월 29일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은 이들과 아직 소송 중인 이들도 있다.
2004년 경남지역 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으로 입사해 16년째 일한 전서정(53) 씨는 “대법원 판결이 났는데 바뀐 게 없다. 내일 모레 명절인데 우리라고 이러고 싶어서 왔겠나. 전 부치려고 장도 봐놨는데, 우리도 김천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며 “저도 처음 입사하고 3년 8개월은 공사 직원이었다. 자회사는 용역보다 못하다. 우리 일자리를 돌려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남인천고속도로 영업소에서 12년 일한 백흥기(56) 씨는 1심 소송 중이다. 백 씨는 “대법원 판결과 우리가 진행 중인 소송이 0.1도 다르지 않다. 1심, 2심, 대법원까지 이기고 오라는 거다”며 “시간이 지나면 이긴다. 그런데 공사가 쓰는 소송비용은 다 나랏돈이다. 자회사로 간 사람들한테 인센티브도 줬다고 한다. 나랏돈을 사장 개인적인 자존심을 위해 막 써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백 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제 손으로 뽑았다. 비정규직 제로화, 노동자를 위해 줄 거라는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가 묵인하지 않았으면 사장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배신감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지침이 나왔을 때 각 영업소에는 홍보 포스터가 걸렸다. 곧장 정규직이 될 것 같았지만, 지난 6월 말 자회사를 선택하지 않고 직접 고용을 원했던 노동자들은 모두 계약이 만료됐다.
안다현(56) 씨도 강원도 남양양고속도로 영업소에서 12년 일했다. 안 씨는 “우리가 하는 일이 통행료 받고, 통행권 투입하고, 하이패스 미납 요금 관리하고 대법 판결난 분들과 똑같다. 1,500명 다같이 직접고용 돼야 한다”며 “가족들한테도 김천까지 왔다고 말했더니 꼭 잘돼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우리 밥자리(일자리)가 달렸다”고 말했다.
17년째 인천 한 고속도로 영업소에서 일한 김기영(55) 씨는 이번 판결에서 최종 승소했다. 김 씨는 “이제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졌다. 그런데 공사가 발표한 걸 보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승소한 사람들을 직접 고용하면 풀 뽑기 같은 일에 쓴다는 거다. 그동안 청와대 앞에서 노숙하고, 톨게이트 지붕에서 농성한 것이 허망하다. 무조건 사장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처음 입사해서 공사 직영일 때도 1년 단위로 계약했다. 그때는 용역업체로 바뀐지도 몰랐다. 하는 일이 똑같으니까”라며 “그때 우리가 무지했다. 좀 똑똑했더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을 거다”고 말했다.
이날 경찰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력 1,200여 명을 배치했다. 이날 점거 농성 중인 조합원 9명이 현행범으로 연행됐고, 2명이 경찰과 대치 중 응급실로 실려갔다. 노조는 이강래 사장과 직접 면담을 할 때까지 점거 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강래 사장은 지난 9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745명 중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정규직 고용에 동의한 220명 등을 뺀 499명에 대해 고용의사를 확인 후 자회사로 고용하거나 기존과 다른 직군으로 직접 고용할 계획을 밝혔다. 현재 1·2심 재판이 진행 중인 요금수납원 1,116명에 대해서는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도로공사 홍보팀 관계자는 “현재 농성 중인 분들이 너무 과격하고 폭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당장 면담 가능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일반연맹과 대구, 경북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3백여 명은 이날 오후 7시 30분 도로공사 후문 앞에서 ‘1500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쟁취 야간문화제’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