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죄에 대한 국민적인 공분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지난 8일 장씨는 자신이 일하는 모텔에서 투숙객을 둔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한강에 유기한 혐의로 체포됐다. 몇 달 전 제주도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씨에 이어 또다시 살해 후 엽기적인 시신유기방식이 보도되자, 국민들은 경찰에 신상공개를 요구했다.
경찰은 체포 이후 ‘특강법’(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범행수단의 잔인함, 피해여부, 충분한 증거수집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하지만 신상공개가 범죄 예방, 치안 유지에 효과적인 수단인지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 신상공개는 강력범죄를 예방하기보다, 피의자를 향한 엄격한 처벌을 원하는 국민적 감정을 고양시키는 기제로 작동할 뿐이기 때문이다.
1995년 슈램과 밀로이가 성범죄자 신상공개 전·후를 비교해 재범률을 조사한 결과, 신상공개집단의 재범률은 19%, 비공개 집단의 재범률은 22%였다. 범죄 예방의 근거가 무너진 상황에서, 신상공개를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로 ‘국민의 알 권리’, ‘피해자 인권’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2016년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여론조사 결과 87%의 국민이 신상공개를 지지했다.
그것은 누구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국가 역시 나의 안전을 지켜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신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언론은 그런 국민들의 두려움과 불신을 제거하기보단 오히려 부추긴다. 범죄 수법에 대해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신상공개는 범죄에 대한 모든 맥락을 없앤 채, 피의자 개인에게만 관심을 쏟게 한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을 고통에 상응하는 처벌과 응징을 원하는 ‘엄벌주의’는 여기서 시작된다. ‘엄벌주의’는 처벌의 강화를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여전히 범죄는 개개인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강력 범죄는 개개인의 일탈로서 정의하기엔 인과과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범죄자가 범행을 행하는 동기는 단순 우발적 동기로만 볼 수 있는가?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막을 수 없었냐는 문제 등 다양한 인과가 점층적으로 개인의 범죄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관리에서 벗어난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진주 방화 살인사건은 국가의 부족한 관리체계를 피의자 신상공개로 덮으려 했다.
‘국민의 알권리’를 이유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시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즉 범죄를 예방할 국가의 책임을 교묘하게 숨겨 또 다른 범행을 예방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범죄자 처벌은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상공개만으로 국민적인 공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을 넘어서, 그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정비를 완비하는 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