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映畫選祐)’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가 읽은 영화 속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보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의 영화 감상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영화전문매체 로튼토마토에서 매년 미국 전역 개봉 영화가 아니라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저평가된 10편 안팎의 작품을 ‘베스트 무비 오프 더 레이더’로 선정한다. 2016년에는 <부산행>과 <곡성>이 한국영화 중 처음으로 꼽혔다. 이때 그리스 출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한 <더 랍스터>도 포함됐다.
<더 랍스터>는 홍보문구처럼 ‘사랑에 관한 가장 기묘한 상상’을 그린다. 주인공 데이빗(콜린 파렐)은 어느날 개 한 마리와 함께 ‘커플 메이킹’ 호텔을 찾는다. 개는 짝을 찾지 못한 형이라고 한다. 아내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그는 이 호텔 안에서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 숲으로 쫓겨난다. 이 호텔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격리인 셈이다. 데이빗은 어떤 동물이 되고 싶냐고 묻는 호텔 직원에게 바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랍스터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이 호텔의 일과는 커플 메이킹 행사와 짝을 찾지 못한 동물 사냥이다. 사냥에 성공하면 짝을 찾을 수 있을 시간이 연장된다. 데이빗은 동물이 될까봐 억지로 사랑할 이성을 찾아 헤맨다. 끝내 사냥을 즐기는 싸이코패스 여성을 사랑하는 척 연기하다가 들통난다. 데이빗은 목숨을 걸고 숲으로 도망친다. 숲은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이성교제를 불허하는 외톨이들이 모여 산다. 커플이 되면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빗은 숲에서 한 여자(레이첼 와이즈)를 만나 첫눈에 반하고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계기는 근시라는 공통점에서 출발한다.
둘은 숲에서 달아나기로 결심하지만 외톨이들의 리더가 이를 눈치채고 여자의 눈을 멀게 한다. 이 여자와 숲에서 도망친 데이빗은 둘을 연결해 주던 공통점(근시)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낀다.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빗은 공통점을 되찾기 위해 나이프를 들고 화장실에 간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망설이는 데이빗과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여자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결혼이나 연애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비정상’이란 딱지를 붙이는 사회를 풍자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결혼에 대한 관습과 억압을 들춰낸다. 결혼하지 않으면 각종 불이익을 당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는 영화 속 사회는 거래의 수단이 된 사랑을 은유한다. 사랑이 없어도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짝을 맺는 사람들이 가득한 현실과 결혼 만능주의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비혼을 선택하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거나, 조건에 맞는 배우자를 추천해주는 결혼 산업이 발전하는 사회에 조소를 보내는 영화다. <더 랍스터>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들에게는 좀 더 절실한 우화로 다가온다. 여러 이유로 사랑을 포기하는 세상에서 사랑을 강제하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결혼 만능주의에 반기를 드는 숲속 외톨이 집단과 비교하며 딜레마에 빠진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영화는 극단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 같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과장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결혼이나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에 걱정을 핑계 삼아 무례한 훈계를 하거나, 짝을 찾지 못했거나 자발적으로 혼자를 택한 사람들의 초조함을 부추기는 것을 흔히 접해보는 탓이다. 심지어 한 지자체장은 청년들에게 결혼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는 인식을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니, 영화의 상상력이 큰 무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