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잔인함, 분노 자극의 애국마케팅, ‘봉오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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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선우(映畫選祐)’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가 읽은 영화 속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보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의 영화 감상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2019년을 관통하는 어젠다는 ‘애국’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의 해이고, 임시정부 수립 역시 10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일본 아베 정권이 경제보복을 가하고, 혐한의 흐름도 심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국민의 분노는 반일(反日)의 기치를 높이 세웠고, 불매 운동으로 번졌다. 아베 정권의 모습에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했던 일제의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반일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에 주목받고 있는 것은 ‘영화’다. 때가 때인 만큼 관객들의 관심과 흥미가 높아진 것이다. 이 덕분에 (<암살>, <밀정>의 예외도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망한다’는 영화계의 오랜 속설도 깨지고 있다.

1920년 6월, 일본 정규군에 맞선 독립군 연합부대의 첫 승리를 그린 영화 <봉오동 전투>는 최근 한일정세에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개봉 8일차에 누적 관객 수 267만 명을 기록했고,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은 15일에는 300만 명 이상 관람했다. 누적 관객 수 300만 명 달성은 천만 영화 <국제시장>보다 하루 더 빠르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관람객 평점은 9.23으로 집계됐다. 영화를 본 10명 중 9명은 호평한 셈이다. 온라인에서는 ‘영화를 본 뒤 애국심이 더 강해진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영화가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영화 한 편을 본다고 애국심이 고취될까. 난데없이 딴죽을 거는 게 아니다. 가재를 털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파 재산의 환수는 갈 길이 멀다. 독립투사들의 서훈은 정치적 갈등으로 외면당하고, 타국 만리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이들의 유해는 조국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다.

개봉한 지 일주일 된 <김복동>은 벌써 상영관이 237개가 줄었다. 관람객 평점은 9.89로 호평받고 있지만, 누적 관객 수는 4만3천 명에 그쳤다. <김복동>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 목소리를 냈던 김복동 할머니의 27년 여정을 담고 있는 저예산 독립영화다. 배우 한지민과 가수 윤미래가 각각 내레이션과 음악으로 힘을 보탰다.

광복절 전날인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지만 큰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일부 관객들이 영화의 예매율을 높이기 위해 ‘대리예매’를 한 뒤 표를 나눠주거나, 영화를 볼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남는 자리를 구매하는 ‘영혼 보내기’를 했는데도 관심은 저조했다. 99년 전 독립군의 승리를 재현한 상업영화에 대해서는 애국을 운운해 열광하면서도, 정작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무심한 태도는 비애감에 젖게 한다.

총제작비 190억 원을 들인 <봉오동 전투>는 최근 열기가 거센 애국 마케팅의 일종이다.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가 담겨 있지만, 실상은 ‘이윤 추구’가 목적이다. 일본 제품 대신 국산 대체재 사용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토종’이란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해 반사이익 효과를 노리는 유통업계 전략과 같다.

태극기가 그려진 맥주나 태극무늬, 건곤감리, 무궁화로 디자인된 한정판 볼펜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은 마케팅 수완일 뿐이다. 상술로 지적받은 빼빼로 데이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평론가들이 <봉오동 전투>를 향해 ‘국뽕(국가주의와 마약의 합성어)’ 비판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봉오동 전투>에서 첫 승리의 상징성과 목숨을 걸고 사지에 뛰어든 독립군의 삶과 심리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비열하고 잔혹한 일본군에 맞서 상대적 열세인 독립군이 갖은 중상을 견뎌내며 싸워나간 것을 노골적으로 비춰 분노를 자극하는 데 주력한다.

이 때문에 <봉오동 전투>를 되새겨야만 하는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독립군 소년병의 관용과 일본군 소년병의 반성은 다음 세대를 향한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관객은 독립군이 일본에 품는 증오와 복수의 감정에 동참할 것이다. 승리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지만, 함몰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감정만 앞세운 대응이다. 애국을 논하며 민족의 교훈과 사표로 삼아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영화 한 편을 보며 분노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