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치료하던 간호사 2명이 70m 응급의료센터 옥상에 오른지 11일째다. 폭염이 왔다가 강풍이 불었다가, 폭우가 내렸다. 두 해고노동자를 아래에서 지켜보는 동료들은 마음이 아프다. 2006년 함께 해고됐다가 2010년 대법원 판결 후 복직한 3명의 노동자(김진경 영남대의료원지부장, 김지영 사무장, 이희주 부지부장)를 만났다.
사측 노무사, 창조컨설팅 심종두
알고보니 ‘노조파괴 컨설팅’
2006년 회사가 피하던 교섭의 의문은 2012년에서야 풀렸다. 201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조파괴 컨설팅’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실체가 드러났다. 창조컨설팅이 2011년 유성기업에 제시한 노무 자문 제안서에는 자문한 사례에 영남대의료원이 있었다. 창조컨설팅은 단체교섭 및 노동쟁의 대응을 지원했다고 밝혔고, 조합원 수를 1,200명에서 60명으로 줄였다고 컨설팅 결과를 소개했다.
“그때 지방노동위원회 가면 사측 노무사로 심종두 노무사가 왔어요. 그때는 그렇게 악랄한 인간인지 몰랐죠. 그러고 나서 심종두 노무사가 보건의료노조 산별 교섭에 사측 노무사로 또 들어왔어요.” – 김지영 사무장
서울남부지법 항소1부(이대연 부장판사)는 지난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심종두 노무사에게 징역 1년 2월을 선고했다.
2007년 초 해고된 10명 중 당시 지부장을 제외한 9명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 대법원은 지부장을 포함 박문진, 송영숙 등 3명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병원은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이들을 복직시키자마자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그중 일부는 다시 해고했다. 결국 2012년 대법원에서 모두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두 번째 해고와 복직 후, 사측은 다시 정직 3개월 징계를 내렸다.
김지영 사무장은 “2007년 복직 판결받고 잠깐 들어왔다가 다시 해고됐다. 2010년 대법원 판결 받고 4년 만에 복직했는데, 다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며 “복직하자마자 3개월 정직 받고 또 나왔다가 2011년부터 현장에 갈 수 있었다. 한 사건으로 해고를 두 번이나 당한 거다”고 말했다.
2006년은 달랐다
사측, 약속 어기고 교섭 안 나와
교섭 안 나오는데, 교섭하라는 노동부
2006년 영남대의료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공농성 중인 박문진(58)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송영숙(42)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이 해고된 것은 2007년 2월이다. 2006년 단체교섭은 파행으로 끝났고, 쟁의를 벌인 결과는 노조 간부 28명 징계로 돌아왔다. 당시 영남대의료원지부장은 ‘파면’, 박문진(당시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 송영숙(당시 영남대의료원지부 사무장)을 포함한 9명은 ‘해임’으로 모두 10명이 해고됐다.
김진경 지부장은 “그해 교섭이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 했다. 2004년 주5일제를 하면서 합의한 인력을 다 충원을 하라는 거였다”며 “합의한 걸 지키라고 하는데, ‘내가 합의하지 않았다’, ‘지금 경영 문제로 못 한다’ 이런 식이었다. 약속을 파기하고, 교섭 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교섭을 해태했다”고 말했다.
2006년 8월 노조는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3일 동안 부분 파업을 벌였다. 교섭 진전이 없자 노조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행위 조정신청을 했다. 경북지노위는 “충분한 논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노동 쟁의’라고 볼 수 없다”며 조정신청을 반려했다. 대구고용노동청도 노조에 공문을 보내 “실질적인 교섭 없이 쟁의행위에 돌입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므로 쟁의행위를 자제”하라고 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교섭을 피하는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노조는 사측에 교섭하자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의료원 곳곳에 대자보, 현수막 등을 걸었고, 로비에서 농성도 하고, 병원장 집 앞에도 찾아갔다. 노조는 그해 말까지 쟁의행위를 이어갔다.
이희주 부지부장은 “노동청에서 행정 지도가 내려오고, 그때부터 다 불법이라고 했다. 쟁의행위도 불법이고, 행정 지도가 나왔기 때문에 교섭 안 해도 된다고 일방적으로 교섭에 안 나왔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때 노동부도 병원 입맛에 맞는 답을 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수 차례 진정했지만, 노동청은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이는 2012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됐다. 환노위 지적사항 보고서에는 “의료원 측이 단체협약 개악,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노사관계를 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중재 또는 감독 역할을 하라”고 나와 있다.
대자보 뜯기고, 농성장 침탈 수차례
몸싸움 생기자 곳곳에서 ‘폭력 집단’ 매도
의료원 곳곳에 붙여 놓은 대자보는 당시 병원장이 직접 나와 뜯었다. 로비 농성장에는 CCTV 16대가 생겼다. 농성장은 20차례나 뜯겼다.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노조 탈퇴서가 날아들었다. 그해 10월 노조와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 지역 연대 단체들은 장기 투쟁을 준비했다.
“저희가 하도 들려 나가니까 저희끼리 쇠사슬로 묶고 그랬어요. 지금도 간부들은 공포가 있을 거예요. 새벽에 자고 있으면 남자 구사대들이 로비에 쳐들어와요. 그때 병원장이 먼저 나서서 대자보 뜯고, 어떤 교수는 밤에 술 먹고 와서 농성장 훼손한 적도 있었어요.” – 김지영 사무장
노조가 2006년 10월 천막 농성을 시작한 날, 천막을 막으려는 사측과 몸싸움이 심하게 일어났다. ‘불법 파업’에 이어 ‘폭력 집회’, ‘폭력 집단’ 같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영남대의료원 전공의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무차별적인 폭행 사건은 노조와 외부 세력의 책임”이라고 했고,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회도 “노조는 폭력에 희생된 우리 직원들에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급기야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입장을 내고 “영남대의료원에서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한 법 집행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지부장은 “경총에서 한 사업장의 파업에 대해서 입장을 낼 이유가 없지 않나. 굉장히 조직적으로 노조를 와해하려는 방법이었다”며 “그날 사태는 계획적이었다. 출근할 때 관리자들한테 간편한 옷에 운동화를 신고 오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3명의 해고노동자가 못 들어온 것도 이 사건 때문이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은 마지막 투쟁, “노동조합 자존심 회복”
노조는 해고자 복직, 노동조합 정상화 요구를 걸고 마지막 투쟁을 시작했다. 박문진 지도위원 정년이 겨우 1년 남았다. 이들은 지난 13년 동안 안 해본 ‘극한투쟁’이 없다고 말한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 집 앞에서 57일 동안 매일 삼천배를 했다. 집회, 선전전, 단식, 삭발은 물론이다. 영남학원 이사를 임명하는 박근혜는 탄핵당했고, 노무사 심종두는 실형을 받았다. 두 해고노동자는 고공으로 올라갔다. 영남대의료원만 그대로 있다.
“자존심, 명예회복이에요. 물론 심종두는 (감옥에) 들어가 있지만, 노조 탄압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병원 사람들은 아무런 책임도 안 졌어요. 그 당시 병원장이 아직도 활개 치고 있는 거 보면 너무 화가 나요.” -이희주 부분회장
“노동조합 존폐에 대한 문제라고 봐요. 기획된 탄압으로 해고자가 발생했고, 지금까지 노조가 찌그러졌어요. 우리 직원들이 이분들 복직 못 시키면 영남대의료원에 노조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 마지막 불씨를 다시 살리는 거라고 봐요” – 김지영 사무장
“노사 간에 벌어진 일인데 왜 노동조합만 책임을 져야 해요. 노동조합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건 부당하죠. 여전히 노조할 권리를 찾아야만 하는 시대를 끝내자는 마음도 컸구요. 언제까지 문을 두드리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긴 고민 끝에 두 분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김진경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