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업체 배스킨라빈스가 지난 28일 게재한 광고가 물의를 빚었다. 아동을 성적 대상화 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현재 만 10세에 불과한 어린이 모델을 마치 성인처럼 꾸며놓고,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입술을 클로즈업한 행태가 아무리 봐도 아동을 성적 대상화 한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이 일었다.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해당 업체는 사과문을 게시하고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사람들은 이후에도 광고의 이미지가 성적 대상화에 해당하는지 해당하지 않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성적 대상화 논란이 있을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논리 중 하나다. 연출된 이미지에는 죄가 없고,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시선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업체가 게재한 사과문에도 은연중에 드러난다. 업체는 ‘그럴 의도가 없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부모님 참관, 일반적 수준의 메이크업, 아동복 착용이라는 세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보호자도 동의했을 정도로 안전하게 이루어진 촬영이었다. 광고 촬영 중 해당 아동을 성적 대상화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보호자가 가만히 있었을 리 없다. 지적받은 스타일링도 통상적인 수준이었다’. 행간에서 읽히는 내용은 이 정도다.
통상적이라는 말은 옳음과 동의어가 아니다. 일반적 수준이라던 아동 모델의 메이크업은 결과적으로는 성인 여성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얼굴을 만들어 냈다. 아동복 브랜드에서 나왔다던 옷은 크기만 줄인 성인 여성의 옷처럼 보인다. ‘아이가 성인처럼 보여서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성인처럼 보이느냐다. 메이크업과 손바닥만 한 의상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성적 대상화된 여성의 신체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성의 입술에 집중한 이미지는 성적 함의를 드러내는 클리셰로 지겹도록 사용되어온 것이다. 그럴 의도가 없었던 요소들이 하나하나 모여 나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 사건을 질타하는 사람들은 제작 측의 ‘고의성’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만 10세의 어린이를 데리고 광고를 찍으면서도 조심하고 고찰하지 않았던 그 ‘무심함’을 질타하는 것이다.
누구도 이 현상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의 순백함을 주장하느라 논의를 퇴행시켜선 안 된다. 우리는 아동성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통계상 매일 3건 이상의 아동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은 2013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누군가에게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기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상 성욕을 가진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여길 만한 단초를 제공한 사회와 문화의 탓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아동과 청소년이 출연하는 광고에 대한 구체적인 선정성 가이드라인이 없다. 해외에서는 아동에 대한 성적 대상화나 그럴 만한 가능성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영국의 광고심의기관은 18세 미만 아동이거나 그렇게 보이는 누구든 성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을 규제한다. 의도와 관계없이 아동을 성적 대상화 할 만한 요인을 원천 차단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단호함이 필요하다.
지적하고 비판했을 때 얻을 것만 있고 잃을 것은 없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억울해할 일도 아니고, 자신의 눈에는 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뿌듯해할 일도 아니다. 아동 성적 대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그것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얻을 것은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한 삶이다. 굳이 무언가를 잃게 된다면, 그것은 ‘고의가 아니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일부 어른들의 안일한 의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