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청년NGO활동가] (8)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유림

16:49

[편집자 주=2016년부터 대구시 주최, 대구시민센터 주관으로 ‘대구청년NGO활동확산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NGO(비정부기구)를 통해 청년들의 공익 활동 경험을 증진시키고, 청년들의 공익 활동이 NGO에는 새로운 활력이 되고자 합니다. 2019년에는 20개 단체와 20명의 청년이 만나 3월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뉴스민>은 대구시민센터가 진행한 청년NGO 활동가 인터뷰를 매주 수요일 싣습니다. 이 글은 ‘청년NGO활동가확산사업’ 블로그(http://dgbingo.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단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러 수업이 진행 중이었고, 활동가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청년NGO활동가는 단체에서의 여러 경험이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소중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라고 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청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림이다.

▲3·8 여성대회에 참여한 유림 활동가

활동은 어떤가?
=원래 여성인권, 이주민 등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이주여성인권센터에 후원을 하고 있었고, 봄소풍을 갈 때 참여하는 식으로 센터를 조금은 알고 있었다. 이주민이고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이 생겨서 여기서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설레는 마음이 컸는데, 막상 활동을 시작하니까 사람들의 삶을 만나는 것이 마냥 설렐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난민으로 한국에 살기 위해 왔는데, 이곳에서도 배척당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많이 속상했다. TV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센터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좋다.

원래 이주여성에 관심이 많았나?
=열심히 공부해본 적은 없는데, 기회가 되면 이주여성에 관해 공부해보고 싶었다. 마침 기회가 닿아서 미루고만 있던 것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대구청년NGO활동확산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지인소개로 알게 되었다.

활동하면서 많이 배웠는가?
=많이 배웠다. 임금노동을 하지 않고 자원활동을 하거나, 집회에 참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세밀하고 현실적인 부분들을 보게 되었다. 시민단체에서 직접 활동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시민단체에 좀 더 많은 지원이 있으면 좋겠고, 더 많은 힘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주여성인권센터는 어떤 단체인가?
=이주여성이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주는 단체다. 이주민이고, 여성이어서 차별받는 부분이 많다. 단순히 개인에게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변해야 바뀌기 때문에 차별이나 배제하는 정책을 없애고, 더 좋은 정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운동을 제안하는 단체다. 그리고 난민여성에게 물품을 지원하는 사업, 중도입국 청소년에게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필요하면 검정고시 준비도 같이 도와주는 ‘레인보우 스쿨’도 있다.

들어올 때 보니까 사람들이 많더라. 단체분위기는 어떤가?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단체다 보니까 애인이 있냐는 질문 같이 사생활에 대해 묻지 않고, 사생활을 존중받는 느낌이다. 다른 단체보다 소수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상근자 분들이 많은 사업을 운영하는데 (사업량에 비해) 단체가 작은 느낌이다. 운영하는 사업은 좋다.

어떤 사업이 있는지?
=엄청 많다. 먼저, 상담소가 있다. 이주여성이 가정폭력, 이혼 등의 상황에서 법률상담과 지원을 해드리고 있다. 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가정 폭력 때문에 당장 생활을 꾸려가기 힘든 여성과 자녀분들이 지내는 공간이다. 난민을 지원하는 사업도 있다. 난민과 함께 하는 미술 프로그램을 하는데 그림책도 내고 나중엔 전시하는 것이 목표다. 프로젝트 사업으로, 난민과 일상에서 만나고 차별받는 공간에서 치유받을 수 있도록 하고 일상에서 더 가까이 만나고 있다. 또, 이주노동자들과 연대 등 관련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난민여성들 그림 전시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 유림 활동가

활동단체에서 어떤 역할인가?
=구멍. 구멍이라 하면 안 좋게 보이지 않나? 안 좋게 보일 수 있는데, 꽉 막혀 있는데 뚫어 주는 숨구멍 같은 것. 아무리 의제가 좋고, 이 일이 좋아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충분한 휴식, 적당한 업무량이 지켜지기 힘드니까 분주하고 바쁘다. 그럴 때 내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으니까 뭔가 만들 때도 같이 만들고 기획을 할 때에도 한 명이 더 있으면 나으니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숨구멍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청년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어떤 일을 맡아도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그 정도의 역할을 여기서 하고 싶다. 그리고 뭔가 배워서 주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센터 안이 아니더라도 밖에서 어떤 액션을 통해 ‘이주민의 삶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이 있다.

활동하면서 힘들지는 않았나?
=처음부터 이주민을 상대로 상담하지는 않았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 감정이 전이되어서 처음 한 달 정도 괜히 하는 것도 없는데 마음이 힘들었다. 그런데 프로그램도 같이 하다 보니까 조금 더 좋은 쪽으로 고민이 확장되었다.

좋은 쪽으로 고민이 확장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결혼이주여성분들은 보통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왔다. 중국분들도 있다. 멀지 않은 아시아인이어서 낯선 느낌은 아니었는데, 난민들은 대체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다 보니까 보통 흑인이다. 한국에서 흑인 비율이 높지 않다 보니까 낯선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런 게 지금은 완전 없어졌다. 특히 흑인 아기는 완전 본 적이 없었다. 흑인 아기들은 유니세프 광고에서 눈물 흘리고 있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봤었다. 사실 피부가 검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데, 상대를 대상화하는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피부가 검은 사람을 보면 불쑥 그런 마음이 들었다. 프로그램 하러 오는 엄마들은 보통 아기를 안고 온다. 그림 그릴 때 한 손으로 그리기 힘드니까 아기들 돌봄노동도 한다. 곱슬머리를 가까이서 마주하고 먹는 음식이 달라서 낯선 향이 나기도 한다. 처음엔 새로웠다. 흔히 말해 뽀얗고, 젖냄새 나는 아기가 아니라 새로운 향이 나고 피부가 검고 머리가 엄청 뽀글뽀글한 아기를 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TV를 봤을 때처럼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이 아기는 그냥 이 아기이고 누구의 아들, 딸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책으로만 인종차별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직접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다르다. 삶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더 듣고 싶어졌다. 활동하면서 ‘이런 것들을 배워가는구나’ 하는 부분이 있는지?
=임금노동을 해보진 않았지만, 페미니즘이든 노동운동이든 청소년운동이든 소위 사회운동을 조금씩 해봤을 때 늘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뭔가 미온적이고 이것은 도움을 주는 것이지 세상을 바꾸진 못한다.’고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면, 복지시설은 그냥 도와주는 곳. 물론 필요한 것이 있고, 지원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면 안 되고 정책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흑백논리가 있었다. 여기서 활동을 하니까, 기저귀를 나눠주는 등 복지시설 같은 일이 많고, 상근하는 활동가 중에서도 사회복지를 전공한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과 친해지고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의 고민을 가지고 있고 이주여성들의 차별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을 펼쳐서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많이 깼다. ‘이렇게 해야 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런거야!’라는 생각이 무너졌다. 활동가든, 이주노동자든 사람들의 삶을 만나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는가?
=최근 미술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난민분이 집에 초대해주셔서 다른 활동가와 같이 갔다. 여기서 만나면 조금 위축되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못하는데, 집에서는 편안하게 그 나라에 있을 때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집에 초대하는 것은 친구 느낌이니까. 내가 생각해도 친밀해진 느낌이 있었는데, 수업 때 눈 마주치면서 웃기만 하는데도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말을 유려하게 하고는 것보다, 그 사람의 삶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이는지, 얼마나 닿으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같다.

남은 기간 활동 각오가 있다면?
=처음엔 거창했다. 어쨌든 임시로 있는 것이고, 뭔가 기획해서 하는 것은 못하지만, 쌤들이 바빠서 또는 가끔 지쳐서 못 보는 것을 제가 봐서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주민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로만 하는 선언적인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있더라도 그 사람의 삶에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어떤 걸 원하는지 그 사람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서 나름의 고민을 기록하고 있고, 그렇게 지내고 싶다.

8개월 활동이 끝나면 준비하는 것이 있는가?
=휴학생인데, 교사가 되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다. 교사가 되면, 정말 다양한 학생이 있고, 학생들의 가정 구성원이 다양하고, 소위 다문화라고 말해지는 이주민이 많은데 여기서 느낀 것들, 고민했던 것들을 학교에서 잘 펼쳐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전공을 물어봐도 괜찮은가?
=초등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전공교육을 들으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못 배운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중에 가정폭력으로 힘들어 하는 학생이 많고, 본인이 당하지 않더라도 엄마가 가정폭력을 당하는 상황이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해선 하나도 배울 수 없다. 여기 있으면서 가정폭력상담교육도 배우고, 여성주의에 대해 공부해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이 안전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처음에 ngo, 시민단체,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질 때는 ‘세상을 바꾸는~’ 이런 슬로건이 와닿았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했던 세상이 문제여서 내가 힘들었지.’, ‘내 탓이 아니었지.’ 이런 위로를 많이 받았는데 막상 그 슬로건을 마음에 품고 있으니까 회의감이 찾아왔다. 만약 세상이 진짜 좋게 바뀌었을 때, 힘들게 활동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갈 기력이 없으면 그게 좋은 걸까?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거창한 말보다 내가 바뀌는 것, 내 주변 사람 곁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말했던 고민들로 더 단단하게 자리 잡아 가는 것 같다. 청년NGO활동가 경험이 나중에 돌이켜 봐도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소중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