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경계하는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

[99.9%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 제가 한 번 읽어봤습니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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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총리가 돌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으나, <교학사> 교과서 외 7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 말합니다. 많은 이들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친일 미화, 독재 우상화하는 <교학사> 교과서처럼 될 것이라 우려했었습니다. 설마했는데 교육부 총리의 입에서 교학사 교과서만이 올바르다고 할 줄이야…(다시 생각해도 소오름!)

지난 3일,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올바른 역사’를 이야기하며 전국 고등학교 99.9%의 교사, 학생, 그리고 교과서 집필진과 출판사를 ‘좌편향’, ‘비정상’으로 매도했습니다. 이 나라 교육부와 정부가 국민 99.9%를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미 교육부가 이야기한 좌편향 지적(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 북한 남침 등)은 거짓이거나 역사적 오류가 있음이 여러 언론에서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국무회의에서,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지금 누구의 혼이 비정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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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교육부

좌익세력 경계하는 좌편향 교과서?

그래서 <뉴스민>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좌편향’ 교과서는 오히려 ‘좌익 세력’을 경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에 우익, 좌익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1920년대부터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하려는 항일 운동 세력은 저마다 이념이 달랐는데요. 교과서는 항일운동 세력이 민족주의 세력인지 사회주의 세력인지 설명을 덧붙입니다. 특히, 좌우합작이 이루어졌던 신간회 결성(1907년),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주축으로 결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결성(1945년) 등은 모든 교과서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좌우익 세력의 합작을 중요시 여기던 서술은 해방 후 미군정 시기로 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교과서는 ‘좌우익 세력의 갈등’(리베르), ‘좌우 합작 운동 실패’(지학사), ‘남한 정국 양분’(미래엔) 등 소제목으로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후 신탁통치 논란에 대해 다룹니다. 한국 임시 민주 정부 수립과 최대 5년간 미·소·영·중 신탁 통치 등에 관한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가 좌우 대립의 발단이었습니다(1945). 우익은 신탁 통치를 또 다른 식민 지배로 해석하고 반대했고, 좌익은 빠른 독립을 위한 연합국의 후원으로 해석해 외상 회의 결정을 지지하면서 대립합니다.

이 와중에 통일 정부 수립이 어렵다면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수립하자는 이승만의 정읍발언이 나오는데요(1946). 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파는 신탁 통치 문제로 빚어진 갈등을 해결하고자 좌우 합작 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여운형이 암살되면서 좌우 합작 운동은 막을 내리지만, 김구, 김규식 등이 남북 협상 회의를 열어 김일성 등과 남한 단독 선거 반대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남북 협상파는 남한 단독 선거에 불참했고, 남조선노동당 등은 파업, 시위 등으로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 결정에 대한 저항은 좌우익의 대립만이 아니었습니다. ‘통일 정부 수립 운동’(미래엔),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두산동아) 등 소제목으로 모든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대대적인 투쟁이 일어납니다. 당시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해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미군정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습니다. 연일 항의 시위가 벌어지는 중 남조선 노동당은 남한 단독 선거를 반대하면서 경찰서 등을 습격합니다. 미군정과 우익단체가 제주도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자만 2만5천여 명이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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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은 8종 교과서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남조선 노동당 당원을 중심으로 5.10총선거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미군정은 극우 청년들과 경찰, 군대를 파견해 진압에 나섰다’(리베르)

‘제주도 좌익 세력은 5.10총선거를 앞두고 단독 선거 저지와 통일 정부 수립을 내세우며 무장봉기했다. 미군정은 무력으로 진압을 시도했지만, 3개 선거구 중 2곳에서 선거가 실시되지 못했다’(미래엔)

‘단독 총선거에 반대하는 남조선 노동당의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다’(지학사)

‘공산주의자와 일부 주민이 단독 정부 수립 반대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며 무장봉기했다. 사건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되었다’(비상교육)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분위기가 고조된 1948년 4월 무장 봉기가 확산되어 좌익을 중심으로 한 유격대는 미군 철수, 단독 정부 수립 반대를 주장하며 경찰, 군인 및 우익 청년단체와 맞섰다’(두산동아)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과 일부 주민들은 남한 단독 선거 반대, 미군 철수 등을 요구하며 무장봉기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군인과 경찰, 우익 단체를 동원하여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였다’(금성)

‘제주도에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남한만의 단독 선거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무장 봉기 세력은 경찰지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 단체를 습격했고, 미군정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 진압에 나섰다'(천재교육)

‘남로당 주도로 총선거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 경찰서와 공공기관이 습격받았다'(교학사)

역사교과서

그러나 제주4.3사건을 다루는 서술은 이전의 남한 단독 정부 반대 활동을 다루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마치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이 모두의 동의로 결정된 듯이 반대 세력을 진압해야만 했다는 인상을 남깁니다. 이 결정은 UN에서 했죠. 당시 남한 정당 세력들은 정부 구성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었고, 통일 정부를 지향하는 남조선 노동당과 제주 도민들을 진압했던 것은 미군정과 우익세력이었습니다. 제주도의 3.1절 기념식 이후 고조된 미군정에 대한 반감과 단독 정부 수립 반대 시위 확산을 설명한 교과서는 <두산동아>, <미래앤>, <금성>,<천재교육> 뿐입니다. <교학사>는 이 부분의 소제목을 ‘단독 정부 수립 활동과 좌익의 방해’라고 달았습니다. 황교안 총리, 이런 걸 원하시나요?

제주4.3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의미는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었다는 것입니다. 4.3사건의 희생자들은 수년간 국가에 의해 ‘빨갱이’로 몰렸고, 2003년이 되어서야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교과서가 이를 다루면서 좌익세력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서술해 마치 ‘봉기 진압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그런 ‘기운’이 들게합니다. <미래앤>, <금성> 만이 본문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학사> 외 7종은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명예회복에 대한 국가의 노력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좌익 세력에 대한 경계는 마치 2년 뒤 일어날 6.25전쟁을 겨냥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6.25 전쟁의 상처로 우리에게 금기시된 ‘좌파’, ‘좌익’, ‘사회주의’, ‘공산주의’등이 이미 전쟁 이전 좌익 세력에게도 덧씌워진것 같습니다.

6.25전쟁 과정은 북한의 남침 계획부터 시작합니다. 교과서는 전쟁 발발, 유엔군 참전, 중군군 개입, 전선 교착, 휴전까지 그 과정을 자세히 서술합니다. 수험생들은 이 과정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이며 순서를 외우죠. 사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의 과정보다는 전쟁이 주는 교훈일텐데요.

‘이승만 정부는 반공주의를 내세워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거나 정권의 부패와 무능함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탄압하였다’(금성),

‘전쟁의 상처로 남북 간 대결 의식과 적대 감정이 높아지면서 분단이 더욱 굳어져갔다’(리베르)

‘남북한은 전쟁의 경험을 독재 정치를 강화하는데 이용했다. 이승만 정부는 반공을 강조하면서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지학사)

교과서에도 보이듯이 6.25 전쟁의 상처는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쌓았고, 독재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런 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6.25전쟁에서 북한의 불법 남침을 더 강화라고 합니다. 통일을 대비하겠다면서 북한에 적대적 인식을 강화시키려는 의도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역사를 참 제대로 배워 장기 집권으로 가는 길을 너무 잘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2편 계속>

‘좌편향 교과서’의 좌익 세력 경계는 교과서가 기록하지 않는 역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