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도시나 건축에서 공공성에 관심을 갖게 되는 법적 근거는 건축기본법이다. 건축기본법을 제정해 공공 청사나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공간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인간다운 삶이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12일 오후 대구 중구가 개최한 대구 신청사 건립 전문가 토론회에서 이영범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교수는 이날 ‘과정으로서의 공공성’을 주제로 마지막 토론자로 나섰다.
이 교수는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다섯 기준이 있다”며 ▲목적의 타당성 ▲과정의 합리성 ▲방식의 민주성 ▲주체의 자발성 ▲가치의 사회성 등을 꼽았다. 이 교수는 다섯 가지 기준에 기반해 공공성이 올바르게 구현되는지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실질적으로 이런 공공성이 누굴 위한 것인가 하면 결국은 시민사회를 위한 것”이라며 “시민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이런 과정에 참여하고 참여를 통해 공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의식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공공 공간이 가지는 가치를 일상생활에서도 실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청사의 기능적 측면에서 공공성을 실현할 방안에 대해서도 설명을 이어갔다. 이 교수는 “첫째 줄여야 한다. 뭘 줄일건가? 행정 권위와 행정 기능 면적을 줄일 필요가 있다”며 “새로 지어지는 전국 청사를 보면 지나치게 건물이 가지는 권위주의가 너무 드러난다”고 짚었다.
또 “줄이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며 “뭔가를 줄이면 다른 건 늘려야 한다. 뭘 늘린건가? 시민과 접점이 되는 공유 공간을 늘려야 한다. 그 결과로 높여야 한다. 뭘 높일 건가? 시민 참여도와 만족감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공공 청사와 시민 접점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문화공간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이 교수는 “시민들이 청사를 즐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기능은 열린 문화공간이다. 열린 문화공간은 다양성과 복합성, 개방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놀거리가 단순하면 재미가 없어서 나중엔 안 온다. 그래서 다양성이 필요하다. 또 뭔가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행정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변화된 정책도 소개하면서 동시에 주민이 제안도 할 수 있는 기능도 포함하는 복합성도 있어야 한다”며 “그리고 다양한 참여 주체가 접근할 수 있는 개방성, 예를 들면 장애인, 청소년에게도 열려있는 문화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뉴욕 맨하튼의 타임스퀘어 광장이 현재 모습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의사결정 과정의 타당성 확보 방안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원래 타임스퀘어가 초라한 모습이었다”며 “이곳을 사람을 위한 광장으로 바꿔보자 해서 어떻게 했느냐면, 보통은 행정이 마스터플랜을 잡고 결정해 공청회 해서 추진하지만 뉴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09~2010년에 대략 5, 6개월 정도를 한 차도를 막고 싸구려 의자를 배치했다. 차도가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면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지 살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영구적으로 광장을 확장하는 걸 원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경험을 해본 시민 70% 이상이 여기에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결국 의사 결정을 시민들이 했다. 의사결정의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행정이 아무리 좋은 목적과 정당성을 갖고 있더라도 과정의 공공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목적의 타당성이 올바른 가치로 실현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회는 중구가 신청사 현 위치 건립 타당성 용역을 맡겼던 SPLK 건축사무소의 김현진 소장이 진행을 맡았다. 기조 발제자로 나선 이정호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는 대구시의 신청사 건립 추진 과정이 부지선정 방식에서부터 문제점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엄길청 글로벌경영평론가, 김인철 부산시 총괄건축가는 ‘대구가 가져야 할 도시 자생력과 시청의 역할’, ‘도시, 공유의 소산’을 주제로 토론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