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해 국제질병표준분류 기준에 등록하기로 의결했다. ‘6C51’이라는 코드가 부여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는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부문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되며 오는 2022년 1월부터 효력이 발생된다. 이에 대해 한국 게임업계는 “게임은 젊은이들의 문화이고, 미래 산업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4차 산업의 꽃”이라고 강조하며 ”게임 질병코드 지정은 게임문화가 젊은이의 문화, 미래의 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대한 반감과 멸시, 질시의 결과”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게임업계의 반발은 산업적 측면에서 질병코드 도입 시 게임 산업 전반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게임 중독의 정의와 원인, 진단기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해버리면 일정부분 낙인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임 산업계의 자연스러운 반발과는 별개로, “게임은 젊은이들의 살아 있는 문화”라며 “게임이 청소년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공부에 시달리는 우리들의 삶에 위안을 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소중한 친구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시기 바란다”는 젊은 세대의 강한 반감도 더해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처럼 게임은 청소년들과 젊은 세대들의 건강한 취미이자 바쁜 한국 현대 사회에서 위안을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일까? 유독 한국사회에서 게임이 젊은 세대들(특히 남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게임의 부작용(폭력성, 자극성 등)을 차치하고서라도, 게임에 과 몰입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온라인 게임을 관계를 맺는데서 오는 어려움과 불쾌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에 대한 중독은 사회적으로 취약하고 위태로운 인간이 불쾌한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에 탐닉할 때 발생한다. 그 자체가 의학적으로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상관없이 게임에 중독되는 이가 많아진다는 것은 ‘불쾌한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고, 이를 해소하는 데 우리 사회가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게임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1인당 주류 소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쇼핑 중독이 심각한 나라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불쾌한 고립감을 인간관계가 아닌 물질적인 무언가를 매개해서 해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위의 젊은 세대들의 주장처럼 ‘술’ 중독과 ‘쇼핑’ 중독 그리고 ‘게임’ 중독은 관계의 단절성을 표상하는 현상이 아니라 바쁜 현대 사회에서 위안을 주는 존재로 둔갑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정신을 놓을 만큼 술을 마셔야 또 다른 한 주를 버틸 힘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은 또 다른 소비를 통해서만 일시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게임 또한 청소년기에 또래들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자 적은 비용으로 오랜 시간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진정한 친구’라고 믿는다. WHO의 주장처럼 일부 과도한 게임 중독은 의학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을 둘러싼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배제하고 단순히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다 해서 과연 얼마만큼의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여성학자 정희진은 외로움을 자기충족적인 건강한 외로움과 불안하고 고립된 외로움으로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에서 외로움은 절실한 연대의 근거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는 현실이 외로운 사람을 이용한다고 했다. 관계의 힘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게임을 질병으로 낙인찍는 것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불안하고 고립된 이들이 많다는 뜻일 테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고립된 이들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관계 회복을 꿈꿀 때, 게임 중독은 진정으로 질병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