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가능성을 처벌할 수 있을까 / 김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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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이 닫히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28일 섬뜩한 CCTV 영상 하나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한 여성이 집에 들어간 뒤 문을 닫는 순간, 빌라 복도 구석에 숨어있던 남성이 튀어나와 불법침입을 시도하는 영상이었다. 간발의 차로 문이 닫혀 용의자는 여성의 집에 들어가는 것에 실패했다. 대신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문고리를 돌려보거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였다. 추가로 공개된 영상에는 도어락에 불빛을 비추어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하는 모습까지 담겼다. 이런 행동을 보고 여성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세 가지다. 강간의 가능성, 강도의 가능성, 살인의 가능성이다. 혹은 하나의 가능성일 수도 있다. 세 가지 모두가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이다.

▲지난 28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에서 한 남성이 복도 한 구석에 숨어있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여성을 따라 집안으로 침입하려한 일이 벌어졌다. (사진=YouTube 영상 갈무리)

가능성인 게 문제다. 고의적인 범행 시도 정황이 뚜렷하지만, 정황 증거만으로는 용의자를 처벌할 수 없다. 그가 처벌을 받는다면 주거침입죄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주거침입죄는 공동관리 대상인 복도나 계단에 진입한 것만으로도 성립한다. 그마저도 해당 건물이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단 증거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강간미수와 강간은 실행에 착수해야만 혐의 적용을 논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론도 주로 용의자의 처벌 여부를 두고 갈렸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처벌할 수는 없다’와 ‘정황이 이토록 명백한데 아무런 처벌도 없이 지나갈 수는 없다’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후자의 주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 8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서명한 ‘신림동 강간미수범을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란 제목의 국민청원이었다.

사람들은 왜 강력한 처벌을 원하고 있는가? 이번 사건에서 처벌 여부보다 먼저 지적해야하는 점은 사실 이 지점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강력한 처벌은 용의자를 사회에서 유리시키고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사회로 영원히 복귀하지 못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피해자가 될 뻔한 여성이 이사가거나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집에 여전히 살 수 있기를 바랐을테니 말이다. 경찰과 사법당국이 진정으로 반성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시민들은 용의자를 격리하고 사회에서 없애버리는 것 말고는 안심할 방법을 별달리 상상하지 못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사건이 일어날 정황만 보여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치안을 강화하고 불안감을 해소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가해자가 적법한 처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믿을 수 있는 것은 용의자를 사회에서 완전히 밀어내버림으로써 이 사건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뿐이다. 엄벌의 예시로 삼아 시민 각자의 마음속에 경각심을 심고 서로 경계하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벌주의는 저신뢰의 뾰족한 징후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나쁜 일은 그래서 경찰의 출동이 벌어진 그 골목길에서 벌어졌다고 본다. 신변위협이 있다는 신고에 긴급출동을 하고도 경찰이 ‘또’ 안일한 대처를 한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경찰은 CCTV를 확보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순찰 강화만 약속하고서 돌아갔다. 바른미래당의 논평대로 진주 방화 살인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장이 사건에 대한 초동조치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지 겨우 한 달 지났을 뿐이다. 엄밀히 말해 스토킹이라면 스토킹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입법부의 논의는 없다시피 하다. 상황을 잠재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손보겠다는 주체가 없으니 이번에도 시민들끼리 누군가를 얼마나 강하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상황만 남았다. 가능성만으로 누군가를 처벌하는 것은 우리 법체계가 허락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범죄로 이어질 만한 상황을 줄이고 통제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가능성을 처벌하지 못해도 가능성을 관리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림동이 아니라 어디에서건, 또 다시 용의자를 ‘강력처벌’ 해달라는 울분은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