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보급과 함께 한 20년이었고, 고용불안도 20년째다. SK브로드밴드 인터넷망 운용업무를 하는 박주홍(46) 씨는 1999년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인력파견업체 소속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하청업체 소속이다. 일은 그대로지만 회사 이름만 10번 가까이 바뀌었다.
1999년 하나로통신 하청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박 씨는 2003년 인터넷망 운용 업무를 시작했다. 2008년 SK텔레콤이 인수하면서 SK브로드밴드로 원청사가 바뀌었다. 아파트, 빌딩 등에서 가정·사무실로 인터넷을 나눠주는 통신망의 유지·보수하는 일이다. 인터넷망 유지, 보수 경력만 18년이지만, 초과근무수당을 더해도 월급은 3백만 원 수준이다.
소속된 회사는 계속 바뀌었다. SK브로드밴드 도급사 하청이었다가, SK브로드밴드의 하청이었다가. 일은 그대로지만, 소속은 계속 바뀌었다. 비슷한 처지였던 설치기사·콜센터 직원들은 노조(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를 결성해 투쟁한 이후 자회사 정규직이 됐다.
박 씨도 나서기로 했다. 근무지인 대구센터 직원 10여 명이 모였다. 김도윤(44)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김 씨는 “기사, 센터, SK브로드밴드의 작업을 연결시켜주는 내근직으로 10년째 일하고 있는데 임금은 거의 그대로다. SK브로드밴드로부터 작업 요청과 업무 지시를 받지만, 소속 회사는 다르다”고 말했다. 여성인 김 씨는 박 씨보다 임금이 적다.
박 씨는 대구센터 직원들과 함께 전국의 인터넷망 운용 직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소속 하청업체는 달랐지만, 근무 환경은 똑같았다. SK브로드밴드 로고가 찍힌 차량을 타고, 사무실도 같은 건물에 있다. 직무교육도 SK브로드밴드에서 받는다. 작업배치, 작업 변경도 SK브로드밴드가 하고, SK브로드밴드 임직원만 접근할 수 있다는 인트라넷에 접근해 자료를 봐야 한다.
2017년 7월 새희망정보통신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박 씨는 위원장이 됐다. 하청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임금이 조금 올랐다. SK브로드밴드-SK네트웤스-4개 하청업체 구조에서 SK브로드밴드-4개 하청업체로 바뀌면서, 중간업체가 가져가던 이윤을 돌려준 것이었다. 협력업체와 교섭 자리에서는 “돈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래서 노조는 매주 서울 SK브로드밴드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누가 우리의 진짜 사업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하청업체인 운용협력사에 고용됐지만, 원청인 SK브로드밴드에서 실질적인 작업 지침을 내리고 암묵적인 업무 지시를 내리며, 사무실 기물이나 비품 다수를 SK브로드밴드에서 제공한다. 사무도 SK브로드밴드의 국사 내에 위치해 있다”고 말했다.
임금과 고용불안도 원인이었지만,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이유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작업 지시가 내려왔다.
박 씨는 “폭우 현장과 화재 현장에서도 SK브로드밴드 장비 복구를 위해 현장으로 들어갔다”며 “2017년 포항 지진이 일어났을 때였다. 여진 가능성이 있음에도 건물에 들어가 복구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보호 장구도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함께 간 직원들에게 들어가지 말자고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