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시 공무원 십여 명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허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일부 종교계와 보수언론에서는 서울시 공무원이 퀴어축제 반대 집단성명을 낸 것이 처음이라며 의미 부여를 하려고 애를 쓰지만, 고작 17명이 4천5백 명이 넘는 서울시 공무원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기사를 읽다가 청소년을 언급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성소수자 행사가 꼭 필요하다면 청소년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실내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전염병자 격리수용 하듯이 성소수자의 존재는 드러내지 말고 숨겨야 할,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암시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주장이다. 다음 세대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편협하고 부정적인 인식과 혐오를 조장할 뿐 아니라, 퀴어문화축제 개최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려는 시도이다.
성소수자 정체성은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자신의 성정체성에 눈을 뜬다고 한다.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생물학적으로 지정된 성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통 6세 이전에 느끼기 시작한다고 한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숨겨야 하는 것인양 말하는 것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감히 드러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과 같다. 성소수자를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사회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특히 더 일상적인 폭력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단적으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당장 학교부터 청소년 성소수자에게는 부정적인 경험을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면, 80%가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들었고, 54%는 다른 학생들로부터 직접적인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교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도 20%나 나왔다. ‘더럽다, 역겹다, 비정상이다, 치료해야 한다’ 등 혐오와 괴롭힘을 경험한 청소년 성소수자 80.6%가 우울증, 학습의욕 저하 등 지독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낫다고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직면하는 상황은 결코 녹녹치 않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 때문에 성소수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을 시도하는 미국 10대 성소수자의 비율은 일반 청소년 보다 1.5배에서 3배가 높다고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때문이다.
뉴욕주 버팔로에 살던 10대 소년 제이미 로드마이어(Jamey Rodemeyer)도 그 중 하나다. 제이미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후 학교에서 엄청난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다른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혐오에 굴하지 말자고 응원하던 그도 계속되는 괴롭힘에 2011년 불과 14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제이미의 죽음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경험하는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끈 계기가 되었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괴롭힘은 루저들이 하는 것”이라고 일갈하면서 제이미를 추모하는 노래를 콘서트에서 불렀고 (“나는 나답게 살고 싶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길 원해”라는 가사의 노래인 Hair를 불렀다), 다른 유명인들도 제이미에 대한 추모 물결에 함께 했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어떨까? 말할 것도 없이 그 고통은 한층 더 클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릴라 알콘(Leelah Alcorn)이라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죽음은 이를 비극적으로 잘 보여준다.
태어났을 때 남성으로 지정된 릴라는 4살 무렵 자신이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임을 알았다고 한다. 블로그에 남긴 유서에서 그녀는 14살 때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10년 동안 혼란을 겪은 끝에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기쁨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인 그녀의 부모는 신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다며 그녀의 성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이성애자 남성으로 ‘되돌리기’ 위해 부모는 릴라에게 소위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를 강요했다. 결국 릴라는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존재를 부정당하는 고통 속에 더 이상 탈출구가 없다며 고속도로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비록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릴라의 마지막 소원대로 그녀의 죽음은 미국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겪는 고통을 환기시키고 이를 바꾸려는 싸움의 새로운 계기가 됐다.
특히 전환치료 금지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순식간에 수십 만 명이 서명을 하고 이에 대한 반대여론이 커지면서, 그녀가 죽은 지 불과 1년이 되지 않아 미국 도시 중 처음으로 워싱턴디씨와 신시내티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전환치료가 금지됐다. 동성애를 일종의 병으로 보는 전환치료는 전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학대와 폭력일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지난 1990년 동성애를 국제질병목록에서 삭제 했는데, 이 날을 기념해 5월 17일이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로 지정됐다.
한국에도 제이미와 릴라 같은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만 성소수자에 대한 널리 퍼진 편견 탓에 그들의 이야기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벼랑 끝에 내몰리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소수자들의 축제를 청소년들의 눈에 띠지 않는 실내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사회가 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1999년부터 2015년까지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주에서는 고등학생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가 크게 줄었다.
희망적인 소식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싸움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만들어 성소수자의 존재와 인권을 단 한사람에게라도 더 말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자신들의 경험을 담은 <커밍아웃 스토리>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이 분들이 드디어 공영방송에도 출연했는데, 지난 5월 10일 밤에 방송된 KBS <거리의 만찬>, ‘오버 더 레인보우’ 편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자신들이 경험한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뉴욕에 있는 탓에 본방사수는 못했지만, 커다란 박수와 지지를 보내드린다.
나 또한 여느 해처럼 올해도 아이들과 함께 뉴욕시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행진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프라이드 행진에 데리고 나갔는데,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으로 살아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다른 소수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것을 배우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내 아이가 성소수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폭력적인 억압과 차별이 없는 세상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이런 내 뜻이 통했는지 고등학생인 큰 애는 학교에서 성소수자 권리옹호 클럽의 열성회원이다. 6월 1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에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오는 부모가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