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아이 둘을 둔 어머니 이모(수성구, 45) 씨는 2003년 첫째 아이를 낳으면서 가습기를 집에 들였다. 가습기의 물때가 마음에 걸려 옥시 살균제로 가습기를 청소했다. 2006년 둘째를 낳고 기르는 동안에도 가습기를 썼다. 첫째는 감기에 잘 걸렸고, 기관지염을 앓다가 급기야 폐렴도 앓았다. 병원에서는 병의 원인에 대해 속 시원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건강한 줄 알았던 둘째는 초등학생이 되자 갑자기 어지럽다며 쓰러졌다.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았다. 둘째는 2살이 되던 해에 병원 검사에서 폐확산능(폐의 산소교환능력)이 좋지 않게 나왔다. 태어날 때 건강에 문제가 없고, 부모 모두 폐질환이 없었다.
이 씨는 자녀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니면서도 잦은 질병의 이유를 몰랐다. 2015년,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뉴스로 접하고 창고를 뒤졌다. 오래전에 썼던 가습기와 살균제가 보였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사용했던 가습기가 오히려 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정부에 건강피해 인정신청을 했다. 2018년 판정 결과는 4단계. 피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결과였다. 2019년 4월 현재까지도 둘째 아이의 결과는 통보받지 못했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인정기준은 폐질환, 천식질환, 태아피해 중에서도 일부 세밀한 기준에 따라 피해자를 분류한다. 폐질환의 경우, ‘가습기살균제 노출에 따른 질병 양상과 부합하는 소엽중심성 섬유화를 동반한 간질성 폐질환’이 확인돼야 한다. 천식과 태아피해도 협소한 자격 조건을 통과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인정 기준에 대한 조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씨와 같은 피해자 가족에게는 여전히 답답한 상황이다. 건강피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3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대구 중앙도서관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역설명회를 열었다. 이 씨를 포함한 피해자 가족 등 시민 30여 명이 참석했다.
“병원을 아무리 다녀도 아이는 아픈데, 피해자라는 인정조차 못 받고 있습니다. 국가를 믿고 기다렸는데 이제 저는 직장도 그만뒀습니다. 멀쩡하게 태어난 아들 딸 폐에 병이 있다는데 부모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거품 물고 쓰러지는 아이 보셨습니까. 피가 거꾸로 솓습니다. 정부가 인정을 안하고 있으니 소송조차도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사과하길래 피해 인정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담배를 피운것도 아니고 석탄광에서 일 한 것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죄가 없습니다.”(이모 씨, 45)
박혜정 환경노출확인 피해자연합 대표는 “정부가 피해 판정 기준 범위를 확대한다는데 기초부터 잘못됐다. 독극물을 가습기 살균제에 쓰도록 허가한 것은 국가다.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국가가 오히려 피해자의 목소리를 막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소영 강북삼성병원 교수의 건강피해 인정 및 판정기준 개선연구를 설명했고, 김정대 환경부 보건정책과 주무관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정책과 계획을 발표했다. 특조위는 법률자문단을 통해 개별 상담도 진행했다.
박소영 교수는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말씀에 100% 공감한다. 이제까지 정부가 찾아다니며 직접 설명한 경우는 없었다”라며 “좁은 인정기준은 죄송스럽다. 특이한 질병을 골라내는 게 아니라 인정 신청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맞았는데, 이제까지 그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인정 기준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이해해 달라”라고 말했다.
김정대 환경부 보건정책과 주무관은 “현행법에서는 피해에 대해 기업이 배상하도록 돼 있다. 정부는 원인 규명을 한다. 배상이나 구상할 때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정부는 정확한 인과관계를 조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피해구제 범위를 독성간염, 아동간질성폐질환 등으로 확대하고, 독성간염, 폐렴, 기관지확장증, 성인간질성폐질환, 천식에 대해서도 특별구제계정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8년 12월 31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총 6,246명이며, 이 중 1,375명이 사망했다. 대구의 경우 287명 중 54명이 사망했다. 건강피해 인정신청자 가운데 5,291명의 판정 결과가 나왔고, 정부지원 대상에 해당하는 신청자는 468명이다. 468명 중 205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특조위에 따르면, SK케미칼(전 대한석유공사)는 가습기메이트(CMIT/MIT 원료)를 1994년부터 제조해 판매했다. 1996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처음으로 사망했다. 2011년 보건복지부가 가습기살균제 사용 자제를 권고했고, 같은 해에 SK케미칼은 판매를 중단했다. 2014년 가습기살균제 폐손상 환경성질환이 처음으로 인정됐다. 2017년 1월 가습기살균지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같은 해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피해자들과 면담했다. 2017년 11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특조위는 2018년 3월 구성됐다. 특조위는 2018년 12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계획을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