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미투 후 1년,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던 당사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7일 오후 7시 대구시 중구 대구백화점 앞에서 ‘2019년 3.8세계여성의날 기념 제26회 대구여성대회’가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43개 단체가 모인 ‘제26회 대구여성대회 조직위원회’가 준비한 이번 대회 슬로건은 “#미투 #대구 내 삶을 바꾼다, 우리가 해낸다”이다.
제26회 대구여성대회 조직위원회가 선정한 ‘성평등 디딤돌상’은 2018년 한해동안 지역에서 미투(me_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이끌었던 당사자들에게 돌아갔다. 대구 문화계, 경북대학교, 대구경북기계부품연구원, ‘스쿨 미투’ 당사자들과 대구가톨릭대병원노조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미투 운동 당사자들이 바로 그 증인이다. 깨어난 우리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며 “대구는 여기에서 결단을 가지고 변할 것인지 여전히 보수의 성지로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대구의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앞장서는 우리의 이름은 여성이다”고 강조했다.
#경북대학교 미투 A 씨 : A 씨는 지난해 4월 미투대구시민행동 등과 함께 10년 전 대학원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미투 폭로 후 교육부는 특별감사를 벌였고, 김상동 경북대 총장도 엄정 조사하고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대는 교육부 감사 처분에 따라 가해자를 ‘경고’ 처분만 했다. 이후에도 수업에 배정하고, 피해자와 공간 분리를 위해 연구실을 옮겼지만 기존 연구실을 함께 사용한다고 국정감사에서 지적받기도 했다. A 씨는 계속해서 ‘2차 피해’를 호소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미투 글자만 봐도 어깻죽지가 찢어질 거 같기도 하고 많이 울컥하기도 합니다. 미투를 통해서 외면하고 있었던 10년 동안의 저를 되찾을 수 있었고, 저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됐습니다. 오늘 슬로건처럼 미투를 통해서 제 삶도 많이 바뀌었고, 바뀌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스럽고 기쁩니다”
#대구경북기계부품연구원 미투 B 씨 : B 씨는 지난해 8월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과 함께 연구원 내 성폭력, 비정규직 차별 등을 폭로했다. 그는 8년 전 성폭력 피해를 여성가족부에 신고했고, 직장 내 성추행으로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11년 동안 연구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그는 계약이 만료됐다. 공공부문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고, 기간제법을 따라도 근무 기간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이 된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라고 판정했고, B 씨는 ‘무기계약직’으로 복직했다.
“오늘 이 자리는 여성으로서 차별받고 핍박받은 여성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보다 성숙한 성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 격려하기 위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년은 저에게 고통스럽기도 하고 힘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 삶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고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과거의 저처럼 누군가는 혼자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 같습니다. 혼자 계시지 마시고 세상 밖으로 나오셔서 도움을 요청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기관의 가해자들은 아직 제대로 징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대구시가 좀 더 책임 있는 대응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구문화계 미투 전하은 씨 : 전하은 씨는 지난해 4월 <뉴스민>을 통해 지역 중견 화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미투대구시민행동 등 지역 시민단체는 대구시에 지역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실태 조사를 요구했고, 사법부에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대구지방법원은 가해자에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했다. 가해자는 곧 항소했다.
“가해 행위자는 사법부의 엄연한 처벌에도 자숙은커녕 뻔뻔히 공적 활동을 했고, 그 주변인들 또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 사건과 함께했던 수많은 이야기와 얼굴이 지나갑니다. 제가 피해 사실을 알린 뚜렷한 방향 하나는 또 다른 피해자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상은 제 이름으로 받는 것이지만 사실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같이 행진했고 목소리 높였던 멋있고 아름다운 여러분들, 세계의 여성들, 대구의 여성들,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저의 작은 용기로 성폭력 없는 대구 문화예술계가 되길 희망합니다”
#대구 한 고등학교 스쿨 미투 라원 씨 : 지난해 8월 SNS를 통해 대구 내 학교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성차별 발언을 폭로하는 ‘스쿨 미투’가 시작됐다. 라원 씨도 당시 스쿨 미투를 했던 당사자다. 대구교육청은 현장 조사에 나섰지만, 미투 폭로 학생들의 신원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스쿨 미투 당사자들은 ‘스쿨미투 청소년연대 in 대구’를 꾸렸고, 지역 시민단체는 ‘스쿨미투대구대책위를 꾸려 대구교육청에 학교 인권 침해 전수 조사 실태를 요구했다.
“우리 학교는 아직도 여성혐오 발언을 한 선생님들이 교단에 서 있습니다. 스쿨 미투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여성들과 활동가분들 만났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페미니즘 학교를 만들고 교원에게 페미니즘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많이 연대해주시고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도 후배들은 여성혐오 발언을 일삼는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듣고 있지만, 앞으로는 바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가 더 소리 높여서 학교 내에서 이상한 발언들 하는 선생님들 다 뽑아버립시다”
#대구가톨릭대병원노조 :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노동자들의 불합리한 사내 문화와 열악한 근로조건을 폭로하며 2017년 연말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병원 장기자랑 무대에 선 것을 폭로했고, 임신 7개월차가 되도록 야간근무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지난해 8월 39일간의 파업으로 불합리한 사내문화 청산을 위한 단체협약을 맺었다.
“앞서 미투 폭로를 했던 당사자분들께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저희 병원 노조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호사들의 섹시 댄스와 캉캉춤으로 저희 병원이 알려졌습니다. 2018년 그 뜨거운 여름, 30년 노동 착취, 열악한 처우에 맞서서 파업을 했습니다. 병원 노동자 80%가 여성노동자입니다. 지금도 우리 간호사들은 병원에 맞서서 열심히 투쟁하고 있구요. 저희 노동자들은 끝까지 성평등, 여성인권을 위해 앞장서도록 노력하겠습다”
참가자들은 행사에 앞서 오후 12시 30분부터 미투운동 영상 상연, 미투 사진전, 성별임금격차해소 ‘3시스탑’ 행동, ‘2019 여성 의제 말하기’ 필리버스터, 거리 행진을 진행했다.
조직위원회는 “우리가 삶을 이어가는 이곳 대구를 성평등한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성평등과 다양성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새롭게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직위는 ‘성평등 걸림돌상’ 수상자 4명도 선정했다. 교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제대로 징계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정한 김상동 경북대 총장, 대구은행 성폭력 사건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구지방법원 재판부, 학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폭력 사건 2차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강은희 대구교육감, 성매매 여성 비하 발언을 지속한 홍준연 더불어민주당 중구의원이 수상자다. 조직위는 8일부터 ‘성평등 걸림돌상’ 전달을 위해 당사자들을 찾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