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내내 한 장의 사진이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 이 사진 속에는 작업모와 마스크에 가려 있지만 누가 보아도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한 청년이,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김용균은 이 사진을 찍은 후 두 달 만에, 태안화력발전소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 벨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김용균의 죽음은, 지난 2016년에 있었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김 군 사망 사고를 떠오르게 했다.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 군은 위험천만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인력 부족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마땅히 2인 이상이 투입되어야 할 작업 공간에 홀로 떠밀린 김 군에게, 스크린도어는 생명의 방어벽이 아니라 죽음의 막장이었다. 이후 김 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슬퍼하는 수많은 시민의 추모 물결이 끊이지 않았고 처참한 노동조건에 대한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김 군은 또다시 김용균이라는 이름의 참담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김용균이 몸담았던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58건의 산업재해가 일어나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태안화력은 한국서부발전 전체 사고의 84%, 사망사고의 92%를 차지할 만큼 이미 악명 높은 작업장이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의 90% 이상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었다. 태안화력 노동자들은 사고 방지 대책으로 2인 1조 근무 수칙 준수와 노후 설비 개선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묵살당하기 일쑤였다.
2018년 SK브로드밴드 자회사 홈앤서비스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이남주는 아파트 인터넷 설비 작업을 홀로 진행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같은 해에 태광엘리베이터 소속 노동자 이명수는 이마트 다산점 지하 1층에서 혼자 작업하던 중 에스컬레이터에 몸이 협착되어 사망했다. 동료들은 이들이 최소한 2인 1조로 작업을 진행했다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2인 1조 수칙에서 두 사람이란, 단지 한 사람의 두 배수만을 뜻하지 않는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단의 위험 공간에서 2인 중 1인은 바로 다른 1인의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제주의 생수제조업체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진행하던 고등학생 이민호의 사망 사고는, 노동 현장이 일하는 공간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장과 다를 바 없음을 우리에게 일깨웠다. 이민호 학생이 사고를 당한 기계는 평소에도 고장이 잦았다. 그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자주 멈춘다고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사망사고가 일어나기 두 달 전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기계를 점검하다 떨어져 갈비뼈를 다쳤다고 한다. 나이 어린 현장실습생의 생명과 노동 현장의 안전을 조금만 살폈더라도 앞길이 창창한 17세의 청년이 그토록 허망하게 세상을 뜨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은 이렇게 말했다. “전 정말 그동안 모르고 살았어요. 우리 아들이 그렇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구요. 알았더라면 정말 바로 손잡고 데리고 나왔을 겁니다. 자식이 그렇게 위험한 곳에 있는 걸 허락할 부모는 없으니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끔찍한 사고로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자식이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줄 알았더라면 바로 데리고 나왔을 것이라는 어머니 김미숙의 말에는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 되는, 두고두고 새겨야 할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우리 사회의 산업시스템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치명적인 사고 위험이 있고, 고장 난 기계라도 계속 돌리도록 한다. 그 시스템 아래에 수많은 노동자가 한 해에만 1,000여 명이 죽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느 누가 되었든 간에 목숨을 담보로 한 노동을 타인에게 강제할 권한이 없다. 노동자의 작업장이, 한 발 삐끗하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생사의 갈림길과 같다면 그 공간은 노동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내는 ‘김용균법’만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은 오로지 ‘운’에 맡긴 채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를 밤낮으로 돌려대는 지금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외주화를 막는다 해도 ‘죽음’과 ‘위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검은 석탄가루가 날리는 어두운 컨베이어 벨트 작업장에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힘겨웠다던 어머니 김미숙이, 아들 김용균을 떠올리며 말한 것처럼 우리는 죽음의 기운이 드리운 작업장에서 우리의 청년들, 우리의 노동자들을 데리고 나와야 한다. 아니 그런 곳으로는 그 누구도 보내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