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12월 23일부터 9회로 “정치(선거법)제도 개혁을 위한 대구 제정당·시민단체 연석회의”의 선거제도 개혁 관련 기고를 연재합니다. 연석회의는 ‘촛불혁명의 완성은 정치 개혁이며, 정치를 바꾸는 시작은 선거제도 개혁이라 생각한다. 민심과 의석수를 일치시키는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은 대구 정치, 나아가 한국정치 변화와 개혁의 시발점이다’고 밝히고 있다.]
① 선거제도 개편은 정치개혁의 물줄기 – 대구참여연대 좋은정책네트워크 준비위원: 장우영
② 반쪽짜리 청년주권, 선거권·피선거권 낮춰야 – 우리미래 대구시당 대표 정민권
③ 연동형 비례대표제, 뉴질랜드 삶의 질을 바꿨다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 장태수
④ 선거제도 개혁으로 ‘아재정치’에서 벗어나자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남은주
⑤ 8년 전에도, 현재도 교사·공무원은 정치기본권이 없다 – 민중당 대구시당 사무처장 송영우
⑥ 절반의 득표율로 독점당한 지방의회 –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조광현
⑦ 대한민국 선거, 투표권은 평등하지 않다 – 노동당 대구시당 위원장 신원호
⑧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선거법 –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지부장 성상희
⑨ ‘유시민 사표론’을 아시나요? – 녹색당 대구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장우석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최근 유튜브에서 개인 방송 <알릴레오>를 시작해 화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특임교수가 출연한 1회 유튜브 누적 조회수는 261만 회, 2회 조회수는 82만 회다. 1회와 2회 사이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가현안에 대한 엉터리 뉴스를 바로 잡는다는 취지의 <고칠레오>도 121만 회를 기록했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유시민 이사장이 정계를 떠나 작가로 복귀해 JTBC <썰전>과 tvN <알쓸신잡>을 거치며 얻은 대중적인 인기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이리라. 이런 그도 한때 ‘사표론’으로 현재 자신의 유튜브 구독자의 상당수인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유 이사장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게 갈 표는 사표가 될 거라며 진보 성향 유권자들에게 노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호소했다. 실제로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지지 철회로 민주노동당 지지자 상당수가 보수 정권이 재집권하는 것에 대한 우려로 노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분석이 유력했다.
노무현 당선 이후 유 이사장은 “민노당의 표는 그리 영향력이 없었다.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은 5억 원 내고 얻을 것은 다 얻었는데 마지막에 던지지 못했다”는 발언으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유 이사장의 민주노동당 사표론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그해 4월 1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민노당에 던지는 표는 권영길 후보의 경남 창원을 등 2곳을 빼고 모두 사표”라며 진보 성향 유권자가 민주노동당 대신 열린우리당에 투표할 것을 독려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선거에 눈이 뒤집혀 그깟 몇 석 더 얻으려고 지지자들 불쌍하게 앵벌이나 시키는 수준을 넘어 이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앞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한계를 보고 뭔가 전략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비판한 바 있다(훗날 이 두 사람은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을 거치면서 故 노회찬 의원과 함께 팟캐스트 진행을 한 바 있다).
이처럼 선거 때마다 양당 중에서 선택을 사실상 강요받는 유권자들은 사표를 막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차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표가 되는 줄 알면서도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정당과 정치인을 뽑을 때마다 심한 갈등 상황을 반복하면서 유권자들의 소신이 담긴 소중한 한 표가 사표 논란에 빠지지 않고 최대한 반영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었다. 만약 이런 선거 제도가 도입된다면 사표를 각오하고 소신 투표를 하거나 사표가 될 것이 두려워 차악을 선택하거나 투표 자체를 기권하는 유권자들은 없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단번에 없애버릴 선거 제도가 있으니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이미 많은 정치학자들이 성공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공인한 바 있는 이 선거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한국과 비례대표제도 전혀 다르게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은 직능별 대표를 표방해 장애인․여성․이민자 등이나 특정 영역의 전문가를 비례대표로 내세우거나 유명인을 영입한다.
반면 독일은 권역별로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 비례대표가 된다. 정치적 역량이 약하거나 지역과 당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애초에 비례대표가 될 수 없다. 이런 독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바로 정당득표율이 정당의 의석수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지역구에서의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와 권역에서의 ‘정당명부식 비례 대표제’를 서로 연동하여 결합한 것이다.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있고 1인 2표제로 지역구와 정당에 투표하는 건 한국과 독일이 같다. 그러나 한국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따로 구분하여 별도 집계하지만 독일은 연동하여 계산한다는 점이 다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어떤 정당의 주 의석수가 특정 숫자로 결정됐을 때 지역구 당선자가 많으면 비례대표 당선자는 줄어들고, 반대로 지역구가 적으면 비례대표는 늘어나게 된다. 지역구 의석은 우리와 같이 1표라도 더 득표한 1인을 당선자로 결정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득표수 또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당선자 수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유권자의 한 표 한 표는 바로 각 정당의 의석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니 사표 논란 따위는 애초에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녹색당과 같은 군소 정당의 원내 진입이 가능해진다. 군소 정당들은 연정을 통해 견제와 비판, 정책 제안을 하면서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정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고 어떻게 지속적으로 함께 살 수 있을지의 문제를 풀어가는 모든 행위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이와 같은 정치 과정의 주인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이 자신과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하며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또한 대표가 될 수 있는 훈련을 갖지 못한다면 시민이 주인이라는 뜻의 민주주의는 그저 아름다운 상징어로 남을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드는 길이다. 유시민 이사장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故 노무현 대통령 역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을 한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부디 대한민국 정치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