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소성리의 2018년, 남북평화라는 ‘희망고문’

12월 29일, 사드 철거 소성리 송년촛불 문화제 열어

20:33

29일, 세밑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도 훈기가 돌았다. 마을회관 앞마당에는 방풍 비닐을 치고 난로를 피웠다. ‘사드 철거 소성리 송년 촛불 문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문화제가 시작하는 저녁 7시가 다가오자 소성리 주민들이 하나둘 마을회관을 찾아왔다. 도금연(82) 씨는 2018년 기대감에 부풀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는 모습에, 이제 평화도 오겠구나 생각했다.

“김정은이 손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거 다 봤다. 이제 참말로 사드 빼겠다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여기 지키고 앉았고. 이제 우리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데···새해에는 다른 거 바랄 것도 없고 사드만 미국 보내줬으면 좋겠다”(도금연 씨)

▲29일 소성리 송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소성리 주민들
▲29일 소성리 송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소성리 주민과 연대자

소성리 주민들에게 2018년은 어땠을까. 화목난로 주변에 둘러앉은 주민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1월 1일 달마산에 올라 ‘사드 철회’를 염원한 것부터 시작한 2018년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23일 정부는 주민 반발을 뚫고 사드기지에 공사 장비를 반입했다. 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상황이었다. 이석주(64) 소성리 이장은 “실망이 컸다”라고 했다.

“몇 안 되는 주민들이 항의하는데 경찰 기동대가 몇천 명이나 나왔는지 모르겠다. 장병 복지 시설 공사를 한다면서 경찰까지 투입했다. 미국 좋으라고 주민들은 짓밟는 거지. 문재인 정부는 다를 거로 생각했는데 실망이 컸다. 남북 평화 분위기에 사드가 대체 무슨 필요가 있나.” (이석주 소성리 이장)

사드를 포함해, 공사 장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다. 임순분(64) 소성리 부녀회장은 지난 5월 오키나와를 방문해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만났다.

“오키나와에 가봤더니 거기도 여기처럼 경찰들이 막 사람들을 들어내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거기는 물건은 안 부수던데. 미국이 소성리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힘들게 하는 걸 알았어요. 다른 곳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싸우는 거 같아서 말은 안 통하지만 같은 뜻이라는 느낌이 들었지요.”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

청와대를 향한 주민도 있다. 도모(79) 씨는 주민들과 함께 지난 11월 소성리 사드 철회를 요구하러 청와대에 방문했다. 연풍문 앞에서 상복을 입고 문재인 대통령을 기다렸지만, 만날 수는 없었다.

“임시배치라고 하고 우리한테 아무런 말도 없네요. 문 대통령 당선되면 사드는 잘 해결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 마을은 사전투표해서 다 문 대통령 찍었어요. 그런데 아무런 효력이 없네요. 이제 누구한테 얘기해야 합니까.” (도모 씨)

사드 철회 기약이 없기도 했지만, 주민들은 2018년을 가슴 아픈 한 해로 기억하게 됐다. 소성리 지킴이 故 조현철 씨가 지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11월 13일 급성 심정지로 사망했다. 장례식 첫날 빈소를 찾았던 박규란(69) 씨는 조 씨를 떠올리며 다시 눈물이 머금었다.

“젊은 청년이 갔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말하겠노. 가슴에 항상 담고 있다. 너무나 인생이 안타깝다. 그간 함께 해 준 것이 너무나감사하다. 새해에는 우리를 걱정해주시는 모든 분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다.” (박규란 씨)

소성리 주민들에게 2019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이들은 1월 1일 성주군 달마산에 올라 사드 철회를 빌 계획이다.

한편,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이병환 성주군수도 참여했다. 이병환 군수는 “군수로서 해결하지 못하는 점 마음이 아프고 아쉽다. 국가 정책이 쉽게 바뀌지 않아 안타깝다”라며 “마음 변치 않는 열정에 박수 보낸다. 올 한해 힘드셨지만, 잘 보내시고, 내년에 저희도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29일 소성리 송년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이병환 성주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