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포스코에서 2차례 해고를 겪은 노동자 이건기(54) 씨는 다른 서류와 함께 아래 글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냈습니다. 이건기 씨는 올해 6.13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경북도의원(포항시 제6선거구)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뉴스민은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글을 게재합니다.]
“정의로운 행동입니다. 용기 잃지 마세요”
대통령님, 아니 문재인 변호사님께서 부산의 법률사무소에서 저의 손을 잡고 직접 해주신 말씀입니다.
26년 전, 1992년 12월 12일. 포항제철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되어 1993년 초에 변호사님 찾아갔을 때 일이었습니다. 당시 심리적 혼돈 상태에서 변호사님의 위로 말씀은 저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정의로운 행동은 이후 제 삶의 이정표가 됐습니다.
실로 무자비한 탄압과 인권유린이었습니다. 직장 내 왕따, 미행, 납치, 폭행, 가족 협박 등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30의 나이, 결혼 10개월 만이었습니다.
해고 이후 소송을 진행하면서 대구에서 중식당을 했습니다. 포철 간부들이 중식 배달통을 오토바이에 매달고 다니는 것을 보고 “꼴좋다”는 비아냥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노조활동의 대가가 저런 거라고 직원들에게 홍보 수단으로 삼을까봐 학창시절의 대구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는 임신하여 홀로 포항에 남았습니다. 대전이 고향인 아내는 임신 기간 동안 말 한마디 할 수 있는 친인척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지적장애 1급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임신 기간에 불안함과 침묵, 경제적 불안정, 남편과의 의도치 않은 별거 생활 등. 의사 상담에 의하면 이것이 원인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원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더 큰 가족애를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후 변호사님과 현재 법제처장으로 계시는 김외숙 변호사님의 조력 덕분에 1심에서 승소하고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에 따라 1996년 원직복직 하였습니다.
2000년 2차 해고. 복직 후 4년 만에 또다시 해고되어 그 아픔을 간직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 지정과 복직 권유가 있었습니다만, 포스코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복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저의 삶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경북도당 유세단장과 19대 대선에서는 포항에서 민주당 유세단장을 맡아 변호사님 당선을 위해 뛰었습니다. 죽도시장에 오셨을 때 저를 알아봐 주셔서 감동했습니다.
26년 후, 2018년.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와 공존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뜨거운 한반도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의 기초를 만들어 가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대한민국의 한 조각 땅 위에서 민주와 정의의 쪽빛마저 비치지 않는 그늘진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바로 동토의 땅 포스코입니다. 군사정권 때와 같은 일들이 포스코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징계 철회하고 원상회복 해야 합니다.
며칠 전 노조를 함께 설립했던 사랑하는 후배 3명이 해고, 2명이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당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적으로 한 일에 대한 보복조치가 아닌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포스코 인재창조원에서 노무부서 직원들이 민주노조에 대항하는 기업노조 가입 우수부서 발굴홍보 대책과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사측의 조직적 움직임을 포착하여 노조간부들이 그 현장을 찾아 증거확보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측의 노조탄압과 지배개입이라는 부당노동행위는 온데간데없이 문건탈취와 건조물 침입, 폭행이라는 프레임으로 덮어 씌어 해고를 시켰습니다. 폭행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노조의 행위는 부당함에 대한 정의로운 행동, 즉 정당방위가 분명합니다.
대통령님. 포스코의 민주노조 설립은 대기업 노조의 배부른 투정이 아닙니다. 지난 50년 동안 청산하지 못한 군사문화, 현장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갑질, 산재 은폐, 잘못된 해외투자, 지난 정권에서 일어난 경영진의 정경유착과 비리 등 얼룩진 과거가 있습니다.
이러한 악습을 청산하고 새로운 포스코 50년을 노와 사가 함께 투명하고 공정한 회사, 자유롭고 정의로운 포스코를 만들기 위한 노동자들의 저항과 몸부림의 결과가 노동조합 설립이었습니다.
정의로운 사람이 대접받는 공정한 사회, 노동자의 기본권과 자유, 노사화합, 노동중심 복지사회는 노동이 추구하는 시대정신이라 생각합니다. 민영화된 포스코에 대하여 국가가 경영에 대한 어떠한 조치와 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탄압에 따른 부당노동행위와 살인과 같은 해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갑질과 산재 은폐는 행정력을 동원하여 공정한 조사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 포스코의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내릴 수 있도록 엄정한 조치를 바라겠습니다.
2018년 12월 18일
포스코 해고노동자 이건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