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편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재정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안은 찾아보기 힘든 탓이다. “이럴 거면 연금제를 없애자”는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정말 국민연금을 폐지하는 방향이 맞을까?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은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핵심적인 사회안전망이다. 국민연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사적연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높은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사적연금은 국민연금보다 적은 혜택을 줄 수밖에 없는 탓이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을 끝내 고쳐 써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에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네 가지 방안은 다음과 같다. 1안은 현행 유지다. 보험료율을 9%로 하고 소득대체율을 2028년까지 40%로 낮춘다. 2안은 국민연금은 현행 유지하되 기초연금액을 2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3안과 4안은 소득대체율을 각각 45%와 50%로 올리고, 보험료율도 각각 12%, 13%까지 올리는 방안이다.
네 가지 방안에서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1안은 현행 국민연금법을 그대로 유지하니 두말할 필요가 없고, 2안 역시 기초연금액을 상향하려는 노력은 있으나 국민연금법은 건드리지 않았다. 3안과 4안은 소득대체율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보험료율을 올린다는 측면에서 재정 안정성을 강화와는 조치라고 볼 수 없다. 이는 결국 문재인 정부 역시 지난 정부들부터 이어져 온 국민연금의 고질적 문제점을 방치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책임 방기는 지금 청년세대의 불안과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 전가로 이어진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시점으로 알려진 2057년은 현 청년세대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개혁의 출발선에도 서지 못한다면 재정 불균형에 대한 청년들의 불안함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또, 기금 고갈 시점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미래세대에게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회적 동의를 구해 점진적인 개혁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우선 기금 고갈을 늦춰야 한다. 적립된 기금이 없는 상태에서 근로가능인구보다 노령인구의 비중이 커지면 미래 세대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험료율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 선진국의 공적연금 보험료율이 15~18%인데 반해 우리나라의 보험료율은 9%로 낮은 수준이다.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현재의 보험료율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 물론 국민적 저항과 본인이 보험료 전액을 내야 하는 자영업자를 고려해 적정 수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기금 고갈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보험료율을 인상할지라도 고령화·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기금 고갈이 안 된다고 확신할 수 없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자금조달방식을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부과방식은 기금과 관련 없이 현재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거둔 보험료로 은퇴자의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기금의 고갈 여부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부과방식 역시 한계는 있다. 연금 수령자와 일하는 사람의 불균형이 극심해지면 젊은 세대가 엄청난 규모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다층연금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강화해 국민연금과 함께 노후소득을 보장한다면 미래세대의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다.
정부의 일반재정자금 투입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군인연금이나 공무원연금, 기초노령연금에 일반재정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의 노후소득 보장제도 역시 많은 경우 보험료뿐만 아니라 재정을 동원해 운영 중이다. 유독 국민연금만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만으로 운영돼야 할 이유는 없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것들이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하고, 반발하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하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빨리 시작해야 한다.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탄생한 정부다운 면모를 보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