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国人たちは、今回の事件についてどう思う? (한국인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친한 일본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친구가 말한 사건은 방탄소년단(BTS) 멤버 지민이 지난해 7월 광복절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사진과 함께 광복을 기념하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BTS는 일본 TV아사히의 ‘뮤직 스테이션’ 출연을 하루 앞두고 취소 통보를 받았다.
친구는 SNS에 BTS 관련 게시물을 매일 한 개씩 올릴 정도로 광팬이다. BTS의 팬이자 일본인인 친구는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우선 이번 방탄소년단 티셔츠가 1년이 지난 후 다시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 일본 내 일부 ‘극우주의자’들의 소행임을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고, “이들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라고 했다. 일본 내 혐한세력이 정치적으로 BTS의 티셔츠 문제를 동원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BTS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멤버들이 원폭사건을 기념하는듯한 티셔츠를 입은 사실에 대해 일본 팬들에게 직접 사과한 적이 없고, 이 사실이 BTS 혹은 한국 국민 전체가 일본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내 혐한 세력이 ‘한국인을 혐오해도 좋다’는 논리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BTS 멤버들이 일본 팬들에게, 그리고 일본인 전체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가 명백해진다. 현재 일본 정부를 포함한 극우세력과 평범한 시민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 일본인은 자국에서 혐한을 주도하는 ‘극우세력’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제국주의의 산물로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한 ‘인류 전체의 비극’을 한국의 식민지 경험에 대한 대항 논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한국에서 BTS의 ‘원폭 티셔츠’가 문제없다는 이들은 식민지 시절 일본에 의한 폭력적 경험과 더불어 광복이 된 계기가 ‘원자폭탄’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원자폭탄 투하는 해방을 앞당겨온 사건이고, 일본인의 ‘악행’에 대한 정당한 ‘복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제국주의 시절 무고한 이들이 당한 폭력의 경험과 서사를 모조리 ‘일본’ 탓으로 돌리는 데서 기인한다. 우리는 ‘군국주의 일본 정부’와 ‘일본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상정하고 근현대사를 배워왔다. 동시에 당시 조선의 부패한 정치인과 백성을 따로 떼어놓지 않고 ‘조선인(한국인)’이라는 하나의 민족으로 묶어왔다.
그 결과 식민지의 경험은 오로지 조선인(한국인) 대 일본인이라는, 민족 대결 서사를 만들었다. 상처에 대한 공동의 기억은 ‘일본을 미워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민족주의 관점에서 식민 지배의 경험은 극대화됐고, 수십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죽어간 원폭 투하는 보이지 않게 된다.
또, 집단적 피해의식이 일본에 집중된 결과 제국주의 침략 야욕을 드러냈던 서양 열강과 당시 백성을 착취했던 고위관료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드라마 방영 초기 겪어야 했던 ‘역사 왜곡’ 논란은 이러한 무의식적인 민족주의의 연장선이었다.
일본은 우리에게 부정적 타자이면서 유의미한 타자이다. 제국주의 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원폭’을 정당화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
일본 내에서도 제국주의 역사를 청산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이들이 있고, 혐한 세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존재한다. 진정으로 근대의 불운한 역사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과 연대하고, 극우주의 세력과 국가 폭력에 함께 맞서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보편적 인류의 관점에서 더 발전된 ‘한·일 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1월 13일 BTS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광복절 기념 티셔츠 논란에 대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상처를 줄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 수 있었던 점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