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태일 48주기 노동영화 특별전” 준비 여정(2) /김상목

'청년 마르크스'의 분노에서 170여 년 후...
'내가 사는 세상', '사수', '안녕, 미누'의 세상에서

18:08

특별전 영화 4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각각 세대와 지역(“내가 사는 세상”), 대기업에 대항하는 노동자/노동조합(“사수”), 이주노동(“안녕, 미누”), 노동문제의 역사적 기원(“청년 마르크스”)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
지역 청년들의 소외된 노동현실을 조명하고,
문화예술노동이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을
감각적 음악과 회색빛 이미지로 구현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지역에서 노동 관련 소재를 갖고 꾸준히 작업한 최창환 감독의 장편 극영화입니다. 익숙한 지역의 여러 공간(동성로, 신천강변 외)을 배경으로 최근 주목받는 지역 독립영화인들이 협력해 저예산과 촉박한 일정 속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2017년 중반 전태일 47주기 대구시민노동문화제의 사전 제작 지원으로 완성한 중편 영화를 소셜펀딩을 진행해 장편으로 탈바꿈합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을 수상하고 현재 여러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받고 있는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작품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의 한 장면

1시간이 조금 넘는 상영 시간 속에서 시각적으로는 시종일관 흐릿하고 우울한 흑백 톤의 이미지와 함께합니다. 주인공 민규의 꿈인 음악가 활동에서 흘러나올법한 강렬하고 감각적인 전자음악이 기묘한 평행선을 달리며 가로세로 뼈대를 연결합니다. 흑백 이미지는 차가움과 불투명함을 조성해 청년세대에게 가혹한 지역의 노동 인식과 정당한 대가 지불에 인색한 풍토를 묘사합니다. 또, 감각적 음악은 현란하지만 공허한 느낌을 자아내 과거 세대가 조직을 만들어 민주화와 노동권 보장을 위해 싸웠던 시절과 대비하는 방황의 정서를 이끌어냅니다. 그렇게 모두가 외로운 거리로 질주합니다.

한 커플이 있습니다. 남자는 주간에는 퀵서비스, 야간에는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며 음악가로서 꿈을 키웁니다. 여자는 입시미술학원 강사로 일합니다. 그/그녀는 미래가 불안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친한 것 같지만, 친분을 이유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소심한 저항도 해보지만 강고한 관계의 벽, 집단이 아닌 개인의 무력감은 결국 아무것도 해결해내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서로에 대한 회의와 불신만 증폭됩니다. 억지 해피엔딩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은 시궁창이고, 고뇌하지만 마땅히 돌파할 재주도 행운도 없는 평범한 커플은 결국 예정된 파국으로 나선을 돌 뿐이죠.

그렇게 작품은 자존감을 갖지 못하고 떠나기만 반복하는(그리고 미로를 헤매다 다시 돌아오는) 청년세대의 초상을 구현합니다. 주인공들과 같은 세대라면 공감대를 느낄 것이고, 다른 세대라면 간접체험을 통해 소통에 근접하거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사는 세상”은 노동문제를 다루는 근래 다른 독립영화와 비교해서 대구라는 지역색과 문화예술노동의 대우 문제에 주목하는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남녀는 각각 음악과 미술에 종사하지만, 생계를 해결하지도 못합니다. 흔히 ‘노동’으로 인식되지 못하기 때문에 지인들인 고용주에게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고 극장 개봉도 추진 중이지만, 정작 지역 독립영화인들의 활동 환경은 아직 개선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여러 영화제를 통해 다른 지역에서 “내가 사는 세상”을 볼 기회가 생기지만, 오히려 지역 내에선 이 영화를 보기가 더 힘들 지경이기도 하구요.

“내가 사는 세상”은 이번 노동영화 특별전의 첫 번째 타자로 11/17(토) 15:00에 상영됩니다. 상영 후에는 작품 속 배경에 걸맞은 손님을 모셨습니다. 대구청년유니온 이건희 위원장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내색, 두 분입니다.

[작품정보]
내가 사는 세상 Back from the Beat (2018)
드라마|한국|66분
(감독) 최창환 / (주연) 곽민규, 김시은

19회 전주국제영화제(2018) CGV아트하우스-창작지원상
18회 전북독립영화제(2018) 경쟁부문
13회 런던한국영화제(2018) 초청작
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초청작

제2탄! “사수”
정권은 변했지만 적폐는 변함없다
현재진행형인 대전 유성기업 투쟁의 기록
노조탄압이 왜 反인권, 反사회적인가에 대한 증언

개인적으로 가길 꺼리는 동네가 몇 군데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현대기아자동차 본사가 있는 서울 양재동입니다. 남들 다 간다는 양재동 꽃시장은 한 번도 못 가봤고, 오직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정문 앞과 바로 옆의 하나로마트, 양재역만 드나들어봤습니다. 현기차 정문 한편에 엮어놓은 비닐과 천막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죠. 그리고 정문 앞에서 매일 격렬한 실랑이가 벌어지는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급작스런 정리해고나 직장폐쇄/폐업은 원사용자(원청)인 현기차그룹이 배후에 있다고 현기차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주장하면서 농성과 시위를 자주 벌였던 곳입니다. 집회신고를 내기 위해 24시간 내내 노조와 용역업체 관계자들이 교대로 서초경찰서 앞에서 대기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곳은 현기차 그룹이 지배하는 영토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수’의 한 장면

해외 유수의 자동차업체들이 국내에서 생산비용이 증가하면 비용 절감을 노리고 일본의 토요타처럼 외국 현지생산라인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해외 라인 이전이 덜한 편입니다. 비정규직 쓰기 좋고 기업에 여러 가지 특혜를 주기 때문에 굳이 낯설고 불안 요소 많은 해외로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비용 절감과 인력 통제의 용이함을 위해 현대기아차그룹은 “하청”이라는 이름으로, 직접 통제가 가능한 구조를 완성시켰습니다. 사실상 하위 계열사에 가까운 외부하청 외에도 인력만 공급하는 업체를 통해 사내하청이란 이름으로 법적으로 금지된 “불법파견”을 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 지는 오래됐습니다.

2010년대 내내 진행 중인 사례 중 하나가 “사수”가 다루는 대전 유성기업입니다. “사수”는 상영시간 100분여 내내 묵묵히 노동자들이 겪는 끔찍한 상황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로 돌아오는가에 집중합니다. 지난한 해고와 투쟁 과정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동료가 과로로 급사하거나 사고로 떠나는 걸 막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는데 노조를 만들어도 동료가 죽는 걸 못 막는 꼴을 보는 이들은 지치고 병들어갑니다. 하지만 장기간 투쟁이 잊혀갈 때쯤 터져 나오는 ‘동지’의 죽음은 때로는 사회적 이슈가 되고 살아남은 이들에겐 채찍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 작은 성과나 진전도 있습니다. 부당노동행위로 유성기업 회장이 실형을 받고 법정에서 구속돼 복역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회사는 노조에 대한 탄압을 계속 이어갑니다. 꿈쩍하지 않습니다. 회장이 구속되어도 말이죠. 회장 위에 또 다른 회장이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노동부가 나 몰라라 하는 게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영화를 보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하청기업 대표는 구속해도 현기차그룹 원청의 개입 조사는 미적거립니다. 동료들의 원통한 죽음의 원흉인 회장 구속에 환호하는 순간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찰나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회사와 그 배후에 있는 현대기아차 원청과 싸움은 계속됩니다.

“사수”는 요즘 노동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의 경향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대개 주인공이나 주변인물이 처한 부정적인 장치로 노동이 다뤄지는 편이지요. 하지만 원래 노동 다큐들은 “사수”가 취하는 접근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영상 활동가들이 속보 혹은 대안언론매체로서 역할을 하고자 시작했던 게 ‘한국형 독립다큐’, 요즘엔 ‘액티비즘 다큐’로 불리는 최초의 경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직된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못하고 그나마 상대적으로 다양한 매체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이런 활동들은 많이 쇠약해졌지요.

하지만 유성지회 노동자들의 싸움은 다행히 우군이 있었습니다. 청주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라는 미디어 활동가들입니다. 관조하는 게 아니라 명백히 한쪽 편을 지지하며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로 “공룡”은 묵묵히 유성기업 노동자들 옆에 서 있었습니다. “사수”는 “공룡”이 지난한 유성지회 투쟁에 연대하며 성실히 기록한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노조 선전부장을 맡은 조합원이 동료들이 폭행당할 때 그걸 기록하기 위해 외부자가 되어야 하는 고통을 고백하는 건 어쩌면 외로운 싸움을 기록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공룡” 구성원들의 고민 그 자체를 투영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저 성실하고 우직합니다. 애초에 극적 긴장이나 찍는 사람의 욕망보단 찍는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주고픈 이들의 이야기를 3자에게 전하고픈 진심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니까요.

“사수”은 특별전의 두 번째 주자로 11/17(토) 18:00부터 대구경북지역 최초로 상영됩니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는 “공룡”의 공동감독들과 유성지회 조합원(들)이 이야기손님으로 초대되었습니다.

[작품정보]
사수 For Dear Life (2018)
다큐멘터리|한국|100분
(감독) 김설해, 정종민, 조영은
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초청작
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2018) 초청작

제3탄! “안녕, 미누”
‘목포의 눈물’과 ‘손무덤’으로 상징되는 ‘이주’와 ‘노동’의 풍경.
애시당초 세상에 국경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평범한 진실.

가끔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찾아보는 책이 있습니다. <세계가 우리집이다>라는 여행기인데 한국 여자 ‘지’와 스페인 남자 ‘다리오’가 세계여행을 함께 다니는 이야기이지요. 돈이 없다 보니 각지의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섞여 살다 훌훌 떠나고 인연이 이어지면 다시 만나는 삶의 반복입니다. 지와 다리오의 삶에서 국경이나 여권은 장식에 불과하지요.

지와 다리오 같은 진정한 세계인도 있지만, 글로벌한 시대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경계 사이에는 분리장벽이 기분 나쁘게 들어서고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던 국경이 며칠밤새 쑥대밭처럼 생겨나고, 그래도 빈 땅에 씨 뿌리면 땅임자가 아니라도 수확할 경작권은 보장해왔던 인류 고유의 관습 또한 부정당하기 일쑤인 세상입니다.

▲미누

“안녕, 미누”는 미노드 목탄이라는 네팔 사람 이야기입니다. 미누는 2~30대를 모조리 한국에서 지냈습니다. 한국말은 무지 잘 하고 네팔 말은 낯설어져 갑니다. 하지만 현행 법 체계(출입국관리법)상으로 미누는 그저 ‘불법체류자’에 불과합니다.(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 부릅니다) 그가 몇 년을 한국에서 살았건, 한국에 대한 애착이 아무리 짙고 이타적 봉사활동을 하건 아무 상관없습니다. 21세기 들어 오히려 더 국가별로 장려되고 조장되고 있는 ‘민족주의’, ‘순혈주의’ ‘국민 VS 비국민 논쟁’ 같은 유령들과 무관하니까요.

미누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동료들과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했고, 이주노동자밴드 ‘스톱 크랙다운’을 만들어 풍요로운 자산을 한국사회에 더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한국 정부의 표적단속이 의심되는 공권력에 의해 결국 강제추방되고 말지요.(표적단속은 미누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역대 집행부 전원에게 자행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8년간 살았던 한국에서 이제는 생소해진 고향 네팔로 돌아갑니다. 네팔에 가서도 공정무역 사회적 기업에서 활동하고 한국에 해마다 6천 명씩 일하러 떠나는 네팔 이주노동자 지원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건실하게 살았습니다. 불행을 이겨내고 착실히 살던 미누는 사회적 기업 박람회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한국 땅을 다시 밟으려 하지만 공항에 억류되었다 다시 돌아가고 맙니다. 영화는 그런 모순적인 상황을 소리 높여 분노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종일관 인간극장처럼 담담하게 다룹니다.

미누의 삶과 영화 전체를 역동적으로 만드는 힘은 그가 활동했던 락 밴드 “스톱 크랙다운”(강제추방 반대한다)이 들려주는 음악입니다. 경쾌한 하드록에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담아낸 시적인 가사가 일품입니다. 필요 없어지면 기계부품처럼 버려지는 현실에서 스스로를 인간으로 대우해달라고 외치는 스톱 크랙다운의 노래들 중 특히 1980년대 노동자들의 비참함을 절규하던 노동시인 박노해의 시 “손무덤”을 가사로 한 “손무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 시가 쓰일 때는 이주노동자라는 존재가 이 나라에서 인식되지 않던 시절인데 과거 ‘손무덤’의 주인공들이 현재는 이주노동자로 대체되었지요.

제도가 허술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데, 단지 비자가 만료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 낙인을 찍는 게 옳은 일일까요? 한국 국적을 가졌다지만 이 땅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해롭게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왜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던 미누는 십 분의 일도 요구할 수 없는 걸까요?

사회적 기업 박람회 방문 때 공항에서 쫓겨났던 미누는 올해 9월에 DMZ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안녕, 미누” 덕분에 근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영화의 힘이자 영화제의 온전한 순기능이겠지요. 개막작 상영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만면에 웃음을 띤 미누를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여 후 느닷없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미누에게 사과할 방도를 잃었습니다. 남은 건, 또 다른 미누를 안 만드는 일뿐이겠지요.

“안녕, 미누”는 특별전 둘쨋날인 11/18(일) 15:00부터 역시 대구경북지역 최초로 상영됩니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는 영화를 만든 지혜원 감독이 함께할 예정입니다.

[작품정보]
안녕, 미누 Coming to You, Minu (2018)
다큐멘터리|한국|91분
(감독) 지혜원 (출연) 미노드 목탄(미누)
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2018) 개막작
44회 서울독립영화제(2018) 초청작

제4탄! “청년 마르크스”
19세기 파리에서 만난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왜 ‘공산주의 선언’을 쓰게 되는가,
자본주의의 여명에서 노동 vs 자본의 대결구도
‘발견’의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청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두 친구가 만나는 1844년부터 <공산당 선언(공산주의 선언)>이 나오기까지의 두 사람의 20대 시절을 다루고 있습니다.(마르크스는 1818년생, 엥겔스는 1820년생) 그래서 제목은 “청년 마르크스”이지만 사실상 두 사람의 4년간의 생애를 따라가는 작품이지요. 마르크스가 망명해 있던 파리에서 엥겔스를 만나고 당대 유럽의 정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여러 사회운동가들과 교류하고 경쟁하며 당시 유럽 여러 곳에 기반을 두고 있던 ‘의인동맹’을 공산주의 동맹으로 개조하면서 ‘선언’을 작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청년 마르크스’의 한 장면

이쯤에서, ‘아니 왜 노동영화 특별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편력기가 들어가지?’라는 의구심이 생길 법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이 갈 만해서 들어가게 된 작품이지요. 두 청년이 만났던 시기는 산업혁명과 그 이전 상업혁명의 여파로 전 지구적인 교역이 이뤄지고, 그 무역이 이전의 농업 중심 생산보다 훨씬 더 이익을 낳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토지에 얽매인 구지배층(귀족)이 아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한 부르주아라는 이들이 등장해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제 한 몸 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을 고용해 부를 창출하는 때였으니까요.

부를 만드는 재화를 생산하지만, 살인적 노동시간과 저임금으로 겨우 먹고살기에도 급급한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던 때였습니다. 당대의 사상가들은 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연구하고 실험하는데 여념이 없었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문제의식을 이론으로 연구하고 정립해가면서 그들의 사후까지 이어지는 세계적 실험에 개입했으니까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과 노동의 소외를 정리했고 그 이론에 동의하건 부정하건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 후대에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청년 마르크스”는 그 태동기의 ‘청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일화들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감독인 라울 펙은 아이티 출신으로 픽션과 다큐를 오가며 역사적/사회적 소재를 잘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감독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초대 총리를 지냈으나 내전 틈바구니에서 암살당한 파트리스 루뭄바의 이야기를 다룬 “루뭄바”(2000년)와 르완다 내전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4월의 어느날”(2005년), 고국이기도 한 아이티 지진 후 재건원조가 어떻게 더 문제를 일으키는가를 폭로한 “죽음의 원조”(2013년), 미국 흑인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들의 암살을 재조명한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2016년) 등의 작품활동 속에서 야심차게 만든 근작이 “청년 마르크스”이지요.

작품은 워낙에 잘 알려진 인물과 사건을 다루다 보니 감독의 주관이나 창작보다는 전형적인 전개로 흘러갑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책에 나온 것처럼 만나고 교류하고 함께 이것저것 일을 벌입니다. 관객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 역사적 인물들을 찾아본다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꼼꼼하게 재연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수준으로 역사책 속의 에피소드와 당대 사회상을 재현하는데 공들입니다.

특히, 초창기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 운동의 사상가들이 역사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것처럼 등장할 때마다 묘한 희열을 느끼는 이들도 제법 될 것입니다. 격동의 4년간 푸르동이나 바쿠닌 같은 이들과 20대의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때로는 함께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세상의 모순을 어떻게 바꿔볼 것인가 질주하던 시절의 기운, 전도유망했던 두 젊은이가 왜 평생 노동 문제에 천착했는지를 “청년 마르크스”는 보여줍니다.

또한 두 사람의 ‘동지’로 마르크스의 부인 예나와 엥겔스의 연인 메리의 역할도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이 4명의 교차하는 관계를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보면서 다양한 관점으로 상상해볼 기회를 주는 점도 꽤 흥밋거리입니다.

“청년 마르크스”는 특별전의 마지막 상영작이기도 합니다. 2018년 현재에서 170여 년 전 유럽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셈인데 ‘온고지신’의 묘미를 보는 이들이 느끼길 기대해봅니다. 상영이 끝나면 경북노동인권센터 김용식 사무국장님 모시고 영화 속 배경들에 대한 시네토크 시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작품정보]
청년 마르크스 The Young Karl Marx, Der junge Karl Marx (2017)
드라마|독일, 프랑스, 벨기에|118분
(감독) 라울 펙 (주연) 오거스트 디엘, 스테판 코나스케, 빅키 크리엡스, 올리비에 구르메, 한나 스틸
64회 시드니영화제(2017) 초청작
43회 시애틀국제영화제(2017) 폐막작
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2017) 초청작
48회 인도국제영화제(2017) 초청작
2회 프렌치 시네마 투어(2017) 초청작
36회 밴쿠버국제영화제(2017) 초청작
32회 워싱턴DC국제영화제(2018) 경쟁부문
6회 무주산골영화제(2018) 초청작

<행사개요>
▣ 일시 : 2018년 11월 17일(토)~18일(일) 15:00 l 18:00(1일 2회 상영)
▣ 장소 :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중구 국채보상로 537 서울한양학원 1층)
▣ 공동주최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조직위원회
–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 전태일 48주기 대구시민노동문화제

※ 관람신청 및 문의 : 선착순 입장(55석) l 관람전후 자율후원
–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전화(053-425-3553)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김상목 프로그래머 문자 및 메일
(휴대전화 l 010-8598-1324, 전자메일 l spanishbomb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