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찬드라 꾸마리 구릉과 4명의 셰르파

15:13

그녀는 주말 식사를 하러 공장 밖을 나섰다. 동네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계산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챙겨 나온 돈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오다 흘리거나 했던 모양이다.

당황해하는 그녀를 식당 주인은 아래위를 훑어보며 대뜸 반말로 물어왔다.

“돈 없어?”
“응. 돈. 돈. 돈 없어. 없어…”

까무잡잡한 피부에 깊게 패인 주름, 두꺼운 입술과 좁은 이마, 대충 묶은 검고 굵은 머리,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엉성하고 낡은 채 겹겹이 껴입은 옷. 그리고 어눌한 발음으로 겨우 이어가는 짧은 단어가 그녀의 모습이었다.

식당 주인은 익숙한 듯 담당 지구대에 전화를 걸었고, 몇 분 되지 않아 경찰차가 도착했다. 잠시 후 그녀는 지구대 책상 앞에 앉아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경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전히 반말로 찬드라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집은 없어? 이름이 뭐야?”

친절했지만 반말이었다. 그녀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았다. 이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겨우 대답한다.

“찬드라 니마리 꿀룽”

그녀는 두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동료와 다투고 밖에서 밥을 사 먹겠다고 나온 것부터였다. 오다가 돈을 잃어버린 것부터였던가? 그녀가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며 목소리가 높아지니 맞은편에 앉은 경찰관들은 오히려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앰뷸런스에 실려 정신병원에 입원 처리가 된다. 그렇게 6년 4개월 동안 병원에서 ‘선미’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갇혀 지낸다. 그녀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이주 노동을 왔던 ‘찬드라 꾸마리 구릉’이다.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박찬욱이 연출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박찬욱 감독의 ‘찬드라의 경우’의 한 장면.

얼마 전 에베레스트 등반에 올랐다가 베이스캠프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들이 있다. 한국인 5명과 4명의 네팔인이었다. 뉴스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5명의 한국대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 탐험대의 선구자이자 영웅이었다. 그들과 마지막을 함께 했던 4명의 네팔인 역시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동지였을 것이다.

5명의 한국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 때, 같은 방향으로 걷고 같은 목적을 향했던 4명의 네팔인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과 끝을 함께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들은 우리 국민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죽은 사람들에 불과한 것일까?

2014년 네팔 셰르파(등반을 지원하고 협력해주는 네팔인들을 이르는 말)들이 파업한 적이 있다. 셰르파 16명이 한꺼번에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그들에게 주어진 보상금은 400달러 정도, 우리 돈 50만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찬드라 꾸마리 구릉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국가는 그녀의 6년 4개월을 환산해 보상금 2861만 원을 줬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환산할 수 없지만, 우리가 보상에 대해 책정하는 금액에 이미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해서 반영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인종이 다르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 등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