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정치적으로 내 편이 되어준 가족과 친구들도 통합진보당, 그 단어 앞에선 말 수가 적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진 일이었다. ‘내가 불편해 할까봐’였고, 지켜보는 나도 어쩔 줄 몰라 불편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숱하게 들어온 ‘북한 가라’는 회유와 종북 낙인이 부자연스러운 시절이 왔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천지개벽이다.
‘사람들은 참 좋은데 당이……’ ‘이정희는 아까운데 이석기가……’ 그 시절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건 가족의 냉담도 언론의 융단폭격도 조롱도 아니었다. 그것은 빌미론이었다. ‘그럴만하니까, 그랬으니까 당한거지’ 하는 냉소와 거리두기였다. 그 낯설고 복잡 미묘한 눈빛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들의 농단과 기획은 집요하고 치밀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해되지 않았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고 있다. 덩달아 이 이야기를 꺼낼 힘을 얻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방인으로 낙인찍힌 시간을 징징대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때 왜 편 들어 주지 않았냐고 책망하려는 것도 아니다. 만천하에 진실의 일단이 송곳처럼 주머니를 삐죽이 뚫고 나오는 마당에도 아직 ‘통합진보당’은 열거되는 농단과 거래의 사례에 끼워 넣기조차 부담스러운 서글픈 검열을 이제는 거두자는 말은 하고 싶다.
그들을 누군가는 고루하고 낙후한 이미지로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안쓰러울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빚진 마음 어찌 할 바 몰라 할 것이고, 어쩌면 손 내미려다 주저하며 황급히 손을 거두려할 지도 모르겠다. 다 좋다. 다만,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 억지스럽고 어색했던 단서를 걷어내고 당신과 만나길 고대한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든 100% 동의를 전제로 만나진 않으니까. 진심으로 새 시대를 조망하는 가치의 중심에서 마주하길 학수고대한다.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여정의 일원으로, 촛불 후 뭔가 허전해져만 가는 마음을 함께 나누고 민주주의를 완성시켜가는 동반자로 편견 없이 만났으면 좋겠다.
10월 20일,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명예회복대회다. 어떻게 한들 사라진 당이 그 모습대로는 살아오지 못할 것이다. 또한 시대는 변했으니까. 분명한 것은 당은 사라졌지만 그 사람들이나 그들의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오늘도 어디선가 치열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의 잘못도, 당신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거짓과 낙인이 횡행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이제는 가해자가 감옥에 있는데도 피해자가 유폐되어있는 이 지독한 모순은 바로잡아지길 바란다. 그 시절을 건너온 그들이 어떻게 앞길을 헤쳐 나갈지는 온전히 그들의 몫일 터다. 그러니 이젠 불편해하지 마시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당신과 나의 정진과 연대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