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가짜뉴스, 규범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김민하

13:06

정치권에서 또다시 가짜뉴스 얘기다.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쪽과 이를 반대파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하는 쪽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이런 경우 무엇을 ‘가짜뉴스’로 규정할 것인지 부터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여당의 입장은 명확하다. 관련된 독립기구나 사법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경우 가짜뉴스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근본적 의문을 해소하기에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다. 첫째, 독립기구나 사법부 역시 무엇이 가짜뉴스인지를 판별할만한 수단과 능력은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둘째, 이런 기준으로는 애초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가짜뉴스’로 지목되는 여러 허위정보 중 독립기구나 사법부가 가짜뉴스 여부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쉽게 제기될 수 있는 반론은 가짜뉴스 논의가 결국 정부의 여론 통제 수단 강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야당들은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 오히려 가짜뉴스를 양산했던 이들이 이제 와서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우습다. 그들의 일종의 파렴치와는 별개로 이런 우려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최근처럼 현 정부에 거부감을 가진 인사들이 유튜브 등을 직접적인 여론 조성 통로로 갖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자유한국당은 아예 당 차원에서 소속 인사들의 유튜브 이용을 장려하고 콘텐츠 제작을 위한 지원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기성 미디어가 더 이상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통로를 확보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보수정권 시절 야권 지지자들이 팟캐스트를 통해 여론을 형성해야 했던 것과 유사한 시도이다. 이전 정권에서도 팟캐스트 방송에 대한 검열이나 통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걸 반대파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게 아니다.

이런 ‘내로남불’ 구도는 오히려 논의를 방해하니 가짜뉴스가 아니라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논의로 초점을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앞서 논의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논의로 쟁점을 옮기더라도 오늘날처럼 누구나 자신의 피해자성을 부각시키려고 드는 세태에선 가짜뉴스를 규정과 동일한 문제에 부딪친다.

by Nick Youngson CC BY-SA 3.0 ImageCreator

최근 남성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지는 미투운동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좋은 예다. 이들의 인식 속에 여성을 향한 구조적 불평등이란 없고 오직 ‘거짓 미투’에 의한 남성의 피해만 존재한다. 혐오표현은 강자가 약자를 겨냥하는 경우에 성립한다는 나름의 ‘가이드라인’도 있지만, 오늘날 여론은 ‘피해자’를 곧 ‘약자’로 치환하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남성 피해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생기면 “남성은 약자”라는 주장의 움직일 수 없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게 최근까지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뜨거운 감자가 돼온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표현을 혐오로 규정하고 또 어떤 표현은 ‘혐오 리스트’에서 제외시키는 논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혐오표현 규제를 위한 논의를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 유일한 길은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 자체를 정치화시키는 것이다. 무엇을 혐오로 규정할 것인가를 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혐오표현이 정치적 힘을 획득하게 되는 메커니즘 자체를 해체할 정치적 수단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가 혐오표현이나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의존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또 정치권이 이들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단이 확보될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됐다. 혐오표현과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한 축이 혐오표현과 가짜뉴스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과정에는 언제나 이러한 현상이 동반됐다. 감세, 규제완화, 작은정부라는 3개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를 뒤흔든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는 혁신주의(progressivism)의 실천적 결론이었던 뉴딜 체제와 자유주의적 대법원 및 흑인 민권운동에 대한 반감이 뿌리이다. 레이건 연합은 시장지상주의적 지향을 가진 부유층, 매카시즘을 추동하며 서구의 반공주의를 재확인하길 원한 신보수주의자 지식인, ‘동부 기득권’을 소재로 한 음모론에 열중하는 ‘신우파’ 세력의 연합이었다. 같은 논리로 보자면 오늘날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과거 뉴딜연합의 반격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오늘날 가짜뉴스와 혐오표현을 무기로 한 극우포퓰리즘에 맞서 ‘체제’를 지키는 것은 브렉시트나 독일의 메르켈 정권의 예를 볼 때 신자유주의자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서 레이거노믹스의 예에서 봤듯 신자유주의도 한때는 극우포퓰리즘과 같은 원리로 주류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이것은 다른 지역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일본에서 오랜 시도 끝에 신자유주의 체제를 안착시키는데 최종적으로 성공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다. 고이즈미 내각을 탄생시킨 동력은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의 일본열도개조론 이래로 형성된 족의원-관료-대기업의 이익분배 구조인 이른바 ‘철의 삼각’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었다. 이 ‘철의 삼각’은 고이즈미 이전까지 주류 파벌이던 게이세이카이(経世会)의 동원 구조였기에 자연스럽게 기시 노부스케와 후쿠다 다케오 이래로 비주류였던 세이와카이(清和会) 소속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부상한 것이다.

그런데 고이즈미 총리가 속한 이 파벌은 애초에 비무장과 고도성장을 한 세트로 추진한 전후의 요시다 시게루 노선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당 내외로 부족한 조직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주의의 부활 모색이라는 동원 이데올로기를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신주류의 이런 선택이 오늘날의 ‘헤이트스피치’와 반중정서로 대표되는 극우주의의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정반대 지향으로 나타난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태는 공산당 엘리트에 대한 공격이라는 동일한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배외주의적인 중국민족주의를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한국도 신자유주의는 박정희식 국가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민주주의의 실현과 함께 동맹관계처럼 등장하였다.

원래 그런 것이니 가만히 있자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규범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허위정보와 특정한 표현의 제거를 통한 체제의 정상화만을 시도해서는 쳇바퀴를 돌리게 될 뿐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치에 개입할 통로를 계속해서 확장해야 하고 더 많은 대중이 통치의 주인공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언론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공론의 형성이라는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이를 통해 정치가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말하도록 강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