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면 날~마다 오는 날이 아니야~ 1942년, 라틴아메리카에 약장수 미국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요? 관객석 싸늘합니다. 미국 진땀납니다. 끄응… 빅브라더 잠시 이마를 찌푸립니다. 악극이 있으면 약은 자알 팔리는 법! 따악! 미(美)정부의 핑거스냅과 함께 월트디즈니가 나타납니다. 자아, 야심차게 준비한 만화계의 나이롱 극장, 『라틴 아메리카의 밤』을 소개합니다~!
미국이 팔고 싶은 약은 ‘선린(善隣)외교정책’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좋은 이웃정책’이라고도 부릅니다. 네, 북아메리카에 속한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즉 중남미(中南美)는 아랫집 윗집 사이입니다. ‘라틴(Latin)’이라는 말 뒤에는 뼈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15세기 말, 이탈리아 탐험가 콜럼버스가 신대륙 사냥에 나서고, 인디언이 살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합니다. 이게 웬 떡이냐~ 유럽국들, 앞 다투어 아메리카 정복에 나섭니다. 특히 라틴 민족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남아메리카에 집중적으로 빨대를 꽂습니다. 식민 지배는 무려 300년간이나 이어졌습니다. 라틴문화가 인디언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고도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라틴족들은 승리감에 의기양양했습니다. 이것이 중남아메리카가 라틴아메리카 된 사연이었지요.
한편, 위층 사는 북아메리카 역시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영국, 프랑스가 밀고 들어왔지요. 둘은 식민지를 놓고 치고받기 시작합니다.
결과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승리~! 식민지는 영국 차지가 됐습니다.
한숨 돌리는 것도 잠시, 본토와 식민지 주민들 사이에 그 거리만큼이나 두꺼운 벽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본토 주민 머리를 긁적입니다. “쟤들은 왜 자꾸 가지 말라는데 인디언 지역에 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식민지 주민 역시 못마땅한 표정입니다. “아니 왜 굳이 군대를 보내서 세금을 더 내게 만드는 거야?” 뚜둑~! 식민지 주민들 인내심이 끊어집니다. 독립을 결심합니다. 또다시 치고받기,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18세기, 뿌와앙~! 기계가 등장했습니다. 산업혁명의 시작입니다.
미국도 칙칙폭폭 달려갑니다. 미국 북부를 중심으로 공장이 들어섭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입니다. 농업 중심의 남부에 노예 노동자가 많다는 소문~! 우연인지 갑자기 노예 인권 문제가 급격히 불타오릅니다. 남북 전쟁이 일어납니다. 노예제가 폐지됩니다. 쩝, 흑인 인권은 그대로네요. 아아 속보여라! 어쨌든 미국 전역 급격히 산업화됩니다. 이제야 다른 유럽 국가들을 따라잡았군요. 헥헥 대는 것도 잠시, 고개 들어보니 뭔가 하나 빠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립한다고 정신 팔린 사이 유럽열강이 확보해놓은 식민지였지요.
가까운 남아메리카 쿠바에 식민지 부자 스페인이 있었습니다. 쿠바로 건너간 미국 사업가들은 스페인이 쿠바를 점령해 벌어들이는 돈을 직접 보았지요. 그 소문은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미국인들은 술렁였습니다. “쿠바가 돈 되네, 산업국가에 식민지는 필수라고!” “그런 방법은 정당하지 않아.”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집니다. 미 해군 잠수정이 쿠바 근처 해역에서 폭발한 겁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 의혹만 가득합니다. 미국 황색언론 기레기들 이때다 하고 덤빕니다. 스페인 짓일지 몰라, 스페인이 어떤 나라인지 아니? 쿠바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야, 아니야, 생각해보니 스페인 짓인 것 같아! 갑자기 쿠바 인권이 불타오릅니다. 남북전쟁 때 그러했듯이~!
작전명,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구하라’ 그렇게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선언합니다.
미국이 이겼습니다. 쿠바는 자유를 얻었을까요? 쿠바의 현실을 살펴봅시다. 미국, 쿠바에서 스페인을 몰아냅니다. 그러더니 쿠바를 보호하겠다며 군대를 들여보냅니다. 그뿐인가요? 쿠바 살림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합니다. 쿠바 정부는 미국을 사랑하는 자들로 구성해야 한다. 고로 미국인들이 쿠바 땅을 터무니없이 헐값에 사는 것은 애교로 봐야 한다~! 그것은 보호가 아니었습니다, 지배였지요. 미국은 쿠바에 눌러앉아 상왕 노릇을 하며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못된 자본가들! 이 사정을 목격한 남미 사람들은 미국 하면 치를 떨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이 콧대 높은 미국에 강펀치를 날립니다. 미국, 재기를 꿈꾸며 제2차 세계전쟁 참전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희한한 소문이 들려옵니다. 독일 나치가 조~ 아래 남미를 은신처로 쓴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돈 없어 죽겠는데 황금 거위까지 빼앗기면 어쩐다? 미국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시행한 것이 국가 차원의 의도적 접근, 선린 외교정책이었던 거지요. 아에이오우~ 미국, 근엄했던 얼굴을 풀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씨익~ 웃어 보입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팔짱 낀 남미인들의 도끼눈이었습니다. 어림없다 이놈아~ 아, 이 일을 어쩌지요?
바로 그때, 미 국무부의 머릿속에 꼬마전구가 켜집니다. 남미인도 부담 없이 좋아하는 메이드인 유에스에이가 있었던 거지요. 그것은 월트 디즈니사의 효자, 미키마우스, 도날드덕 같은 캐릭터였습니다. 국무부 작전에 웬 만화 캐릭터냐고요?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충격 먹은 미국은 이미 전쟁채권을 홍보하고 군대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모든 장르를 동원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만화의 역할은 다른 장르보다 훨씬 컸습니다. 대중성 때문이었지요. 이로 인해 월트 디즈니에 교육 훈련용 영화 부서가 생겼고, 군 장교가 직접 근무했습니다. 만화로 외교를 하겠다는 건 일리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국무부의 지휘봉, 월트 디즈니에게 특명을 내립니다. ‘만화로 두 나라를 이어라~!’
그리하여, 애니메이션 『라틴 아메리카의 밤』이 탄생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밤』은 월트 디즈니 소속 예술가들의 남미 여행기입니다. 디즈니의 캐릭터들도 함께 가는 셈입니다. 도날드덕도, 구피도 그들의 손끝에서 그려지니까요.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남미 지도 위를 날아다닙니다. 그들은 이국적인 모습을 스케치로 담기도 하고, 신경질쟁이 오리 도날드덕과 순둥이 개 구피를 불러내 라마를 탄다던가, 남미의 목동 가우초들의 삶을 체험해 보기도 합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오페라 하우스와 의회 건물, 고층 빌딩이 둘러싼 해변의 화려한 도시를 보여주기도 하지요.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날 너무 미워말게~, 자네들 계속 촌스럽게 살수도 있었는데 자본주의 덕분에 이런 세련된 도시도 생겼지 않았나! 내가 바로 그 전도사라고!” 철면피 이웃 아저씨, 갑자기 친구행세를 시작합니다. 네, 바로 그‘친구’가 포인트였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나라에 『라틴 아메리카의 밤』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제는 『살루도스 아미고스』 (Saludos Amigos)입니다. 안녕, 친구들이라는 뜻이지요. 어제까지 흡혈귀였다가 오늘은 친구가 되자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과연, 이들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오오, 남미가 저렇게 세련된 곳이었단 말인가? 미국 대중은 총천연색에 이국적인 남미의 풍경과 도시의 모습에 푹 빠졌습니다. 남미의 반응도 꽤 뜨거웠습니다. ‘오오, 월드스타 도날드덕이 우리나라를 소개한다고?’ 『라틴 아메리카의 밤』은 극찬을 받으며 극장에서 재개봉하기에 이르렀고,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월트 디즈니가 속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부글부글 끓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칠레 만화가 페포(Pepo)였습니다.
그런데 그를 분노케 한 것은, 자본주의도, 제국주의도 아닌, 비행기였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밤』은 실제 남미의 풍경과 만화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그런데 월트 디즈니 예술가 팀이 칠레에 도착했을 때, 변수가 생겼습니다. 칠레 정부가 사진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던 겁니다. 예술가 팀은 고민 끝에 칠레를 구경한 뒤, 떠오르는 만화를 그려서 애니메이션화 하기로 했습니다.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엄마 비행기와 아빠 비행기가 몸져눕자, 비행경험이 전무한 아기 비행기 페드로가 칠레의 무시무시한 안데스산맥을 넘어 편지를 받아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칠레가 고작 작은 비행기란 말이야? 다른 남미 국가들의 고층 빌딩과 모자이크가 깔린 광장을 보던 페포, 뜻밖의 결심을 합니다. ‘가장 칠레다운 만화를 만들어 버리겠다~!’ 그리고 그 만화는 선린외교정책 이후 남미의 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됩니다.
그 만화는 『콘도리토』입니다. 주인공은 콘도르인간입니다. 콘도르는 독수리처럼 생긴 맹금류입니다. 칠레에는 남미의 등뼈 안데스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콘도르가 많이 삽니다. 덕분에 콘도르는 중세시대, 칠레의 문장(紋章)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칠레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콘도리토가 사는 곳은 펠레틸레휴라는 소도시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밤』에 나오는 다른 남미 국가들의 도시들과 닮아 있었지요. 페포가 선택한 장르는 유머였습니다. 그가 생각한 칠레스러움은 유쾌함이었던 겁니다. 콘도리토는 찰방찰방한 정도의 깊이로 유머를 풀어나갔습니다.
그러나, 당시 칠레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애초에 선린외교정책 뒤에는 남미를 삼키겠다는 야욕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의도적 접근은 점점 본색을 드러냅니다. 미국, 서서히 남미 각국 정부를 돈으로 포섭합니다. 사람들이 고통받건 말건, 미국은 칠레 정부를 조종하며 뱃속을 불립니다. 현대제국주의의 정석입니다. 칠레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남미 사회가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지요. 모두가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만화계도 마찬가지였지요. 다함께 으쌰으쌰 움직인 결과,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있었습니다. 1970년,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이죠.
아옌데 대통령의 등장입니다~!
감히 내가 만든 체제를 뒤집으시겠다? 미국은 이를 빠득빠득 갈았습니다. 1973년, 피노체트라는 자를 내세워 무력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아옌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지지자들은 피노체트의 공포 정치하에서 고문을 당하고 죽어갔습니다. 변화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사라졌습니다. 신문사는 강제로 문을 닫았습니다. 방송국은 정부 감시하에 운영되었습니다. 대학 총장은 군부가 지정했습니다. 더불어 민주주의와 현실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만화들은 거의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을 견디고 『콘도리토』는 살아남았습니다. 운이 좋은 덕분이었습니다. 그 찰방찰방하고 가벼운 유머 덕분이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해,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은 덕분이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콘도리토』는 삼 세대 이상의 독자층을 보유한 장수의 아이콘으로 통합니다. 문학에서, 밤은 종종 제국주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밤에 콘토리토가 태어났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콘도리토』를 읽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콘도리토의 유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