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청년정책 95개나? 당사자가 직접 골라봤다

대구시, 내년부터 '대구형 청년보장제' 도입
대학생, 취준생, 창업준비생, 취직자가 직접 고른 정책은?

19:14

대구에 사는 청년 한 명이 활용할 수 있는 대구만의 청년 정책은 얼마나 될까.

대구시는 지난 11일 ‘대구형 청년보장제(안)’ 50개 사업을 발표했다. 청년의 생애주기별로 설계한 정책으로 기존 사업과 신규 사업을 더해 내년부터 2022년까지 예산 2,376억 원을 투여한다. 올해 시행 중인 67개 청년 정책 중 청년보장제에 빠진 정책의 유지 여부나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존 사업과 내년부터 시행될 정책을 더하면 모두 95개다. 대구시 청년기본조례에 따르면 청년은 만19~39세의 사람을 말한다. <뉴스민>은 대학생, 취업준비생, 창업준비생, 취직자 등 대상별로 정책을 분류했다. 특별한 나이나 대상 규정이 없는 정책은 공통 정책으로 분류했다. 지금부터 나에게 맞는 정책을 골라보자!

#대학생 PICK
취업 말고 일상 정책, 
‘청년생활종합상담소’ 선택

대학생인 함주영(21) 씨는 지난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에 학내에서 시작된 시국선언 활동을 통해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임을 꾸렸다. 그는 지방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시각에서 보는 시사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모임을 하고 있다.

청년 커뮤니티 지원 사업(다모디라)에 선정돼 2개월 동안 월 50만 원을 지원받았다. 모임에 필요한 활동비를 지원받았지만, 모임 운영에 가장 큰 재정 부담이 된 장비 구입은 하지 못했다. 소모성 물품이 아닌 자산취득성 물품 구입은 제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할 때 마이크 등 장비 구입이 되는지 물어봤는데, 적은 금액이라 될 거라고 했는데 안 됐다. 결국 마이크를 대여해주는 곳을 찾아야 했다. 우리 모임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모임을 선정하고 지원할 때부터 체계적으로 안내해주거나 컨설팅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과 관련 있는 정책은 대학 리크루트 투어나 대학생 인턴 사업 등 취업을 돕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주영 씨는 오히려 취업 정책보다 청년생활종합상담소 등 일상에 도움 되는 정책을 선호했다.

“리크루트 투어를 통해서 기업을 많이 알 수 있고, NGO활동확산사업도 다양한 NGO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니까 좋다. 하지만 청년들의 니즈가 단순히 취업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년 자살률이 높기도 하고, 지쳐있는 청년들의 심리 치료나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한 것 같다”

주영 씨는 “정책이 많기도 하고, 정리되어 있지 않고, 대구시 정책과 정부나 대학에서 하는 정책이 겹치는 것도 많은 거 같다. 서울시에서는 한 사이트에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 다 모여있던데, 대구도 정책을 찾아보려고 하는 대학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이트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PICK
13개 중 ‘희망 옷장’ 딸랑 하나?
“기업 정보 보고 따질 것”

지난해 8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기형(27) 씨는 내년부터 대구 청년수당이 생긴다는 소식에 시큰둥했다. 올해 안 취업이 목표기 때문이다. 청년수당은 취업준비생만의 정책이다.

기형 씨는 올해 상반기 한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다 떨어지면서 취업 준비 기간 1년을 넘겼다. 그는 올해 시행 중인 정책과 내년부터 시행될 정책 95개 정책을 펼쳐 놓고 어떤 정책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취업준비생이 활용할 수 있는 정책들

100개 가까이 되는 청년 정책 중 창업을 위한 정책 21개를 우선 제외했다. 거리 조성 사업이나 정책 개발, 기업 지원 사업 등 당장 취업준비생이 활용할 수 없는 것도 제외했다. 졸업했으니 대학생 인턴 사업이나 멘토링 사업 등 대학생으로만 제한된 12개 정책도 제외했다.

청년생활종합상담소, 신혼부부 행복주택 사업도 눈에 띄었다. 언젠가 취업이 된 후에 이용할 수 있을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를 돕는 정책은 13개 정도로 추려졌다. 기업인턴사업, 달구벌명인 청년인턴 사업, 대구청년학교 ‘딴길’, 희망 옷장…

“다른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도 많은 거 같다. 그나마 제가 활용할 수 있는 건 면접용 정장 대여 사업 같다. 당장 저는 활용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거 같다”

기업인턴사업, 청년 ‘Pre-Job’ 지원사업 등 청년과 기업을 직접 연결해 주는 정책은 6개다. 그런데도 기형 씨는 왜 활용할 정책이 많지 않다고 하는 걸까.

“대구에서 영업·관리 분야로 취업을 준비 중인데, 취업성공패키지 하면서도 문자로 날아오는 채용 정보를 보면 양질의 일자리는 별로 없다.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는 경산이나 화원 테크노폴리스 쪽에 연봉 높은 곳이 간혹 있고. 좀 건실한 기업, 직원 복지에 신경 쓰려고 하는 회사들이 손에 꼽힌다. 저런 정책에 어떤 기업이 참여하는지 봐야 나도 선택할 수 있을 거 같다”

기형 씨는 이미 1년 동안 대구에 있는 기업 정보는 대부분 파악했다. 새로운 일자리거나 기존보다 더 나은 일자리가 아니라면 굳이 기업 연결 정책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 그는 대졸자가 취업해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늘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업준비생 PICK
본업 살려 ‘업사이클아트 창업’ 성공
“임대료 지원 도움…완벽할 순 없어”

숫자로는 가장 많은 창업 준비생 청년 정책은 어떨까. 창업 정책은 팝업 레스토랑, 전통시장 창업, 농업, 의료 등 지원 분야가 다른 정책에 비해 구체적으로 나누어져 있다. 창업하고 싶은 분야에 맞춰 지원하면 된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이원오(30) 씨는 최근 업사이클아트 청년창업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업사이클아트는 버려지는 자원으로 새로운 제품이나 소재를 만드는 작업이다. 본업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대구시에 거주하는 만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 창업을 위한 임대료, 제품 개발 지원 등을 해준다. 특히 임대료 지원이나 창업 후 제품 판매 컨설팅은 처음 창업을 하는 원오 씨에게 도움이 됐다.

“임대료 지원을 해주는 건 도움이 된다. 그런데 사업에 선정되고도 공간을 구하지 못해서 첫 달은 지원을 못 받았다. 이미 공간도 있고, 직원도 있는 기창업자가 지원받기 유리하게 돼 있다”

3개월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지원받는 1년 동안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내년부터는 청년 재창업 지원 사업도 시행된다. 창업 초기만 지원하던 기존 정책에 더해 창업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재사업화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솔직히 완벽할 수는 없다. 창업을 도와주는 정책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취직자 PICK
‘청년 통장’ 3개 골랐지만…자격 미달
“딴길 학교, 취직 전 알았으면 좋았을걸”

올해 상반기 취업에 성공한 강용호(26) 씨는 취업 전 정부에서 시행하는 취업 정책을 모두 찾아봤다. 취업성공패키지, 청년희망재단 정책을 통해 서울, 부산을 오가며 면접을 볼 때 교통비와 숙박비를 지원받았다. 대구시에서 지원하는 정책이 따로 있는지 미처 몰랐다. 대구에서 시행하는 정책 중 취업 전에 알았더라면 하는 정책도 있다.

“딴길 학교 이런 건 진짜 좋은 거 같다. 너무 취업이 안 되니까 정말 농사를 한 번 지어볼까, 해외를 나가볼까 별 생각을 다 했다. 어차피 취업도 안 되고 이럴 바에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를 할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찾아도 정보가 별로 없다. 취업 전이였다면 딴길 학교는 정말 가봤을 거 같다”

▲달서구 한 카페에서 대구청년정책 목록을 살펴보는 강용호, 김기형 씨

정책 목록을 훑어보던 용호 씨는 당장 활용하고 싶은 정책으로 청년희망적금, 청년희망키움통장, 청년내일채움공제 정책을 골랐다. 청년마더박스, 신혼부부 행복주택 정책도 내년부터 시행된다니 마음에 들었다.

사회초년생 자산 형성을 위한 청년 통장 정책은 지자체별로 다르게 시행된다. 청년희망키움통장이나 대구형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정부 사업과 연계한 거다. 하지만 기분 좋게 고른 정책 3가지는 모두 용호 씨의 자격 조건과 맞지 않았다.

조건이 맞는 것이라곤 나이와 대구에 거주하고 대구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라는 것 말고 없없다. 청년희망적금은 1년 미만 단기 일자리 종사자만 해당한다. 청년희망키움통장은 일하는 청년이 생계수급자 중 소득 중위 20% 이상만 해당한다. 대구형 청년내일체움공제은 중소기업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지원해준다.

“단기 일자리 아니고, 생계수급자 아니고, 인턴도 아니고… 그러면 저는 청년힙합페스티벌이나(웃음) 다니는 회사가 대기업은 아닌데 직원 수가 많아서 중소기업은 또 아니다. 중소기업이면 국가지원사업도 받을 수 있는데, 약간 턱걸이처럼 걸쳐있다”

대구에서 결혼, 자녀 계획이 있는 용호 씨도 30대 초반에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와 결혼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청년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이 도움이 될 것 같긴 하지만 결혼 전에 적은 돈이라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은 진짜 대구에 살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애도 낳고 싶은데 돈 모으기가 쉽지 않다. 월급이 모을 수 있는 만큼 넉넉한 게 아닌데, 정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아니고. 돈을 찾다 보면 결국 대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인 거 같다”

용호 씨는 “사실 이런 정책을 찾아보는 것도 힘들다. 한 군데서 정보를 모아서 주는 곳이 없으면 청년들 대부분이 모르고 넘어갈 거 같다”며 “앞으로 결혼할 때 필요한 정책은 봐둬야겠다. 대구시가 홍보를 많이 해서 여기 있는 정책이라도 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