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 부동산 대책에는 천정부지로 집값이 치솟는 형국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종합부동산세 최고 세율이 역대 최고로 올랐고,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한층 더 강화됐으며,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이 대폭 축소됐다. 주택 공급 확대 계획 등 중장기적인 시장 안정을 꾀할 방안도 발표됐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정부의 바람처럼 집값이 단숨에 조정될지 의문이다. 그 내용은 강도만 조금 더했을 뿐 정부 출범 후 거듭 발표되어온, 이미 내성과 불신이 키워질 대로 키워진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값 상승 원인을 제대로 짚은 건지 의심되는, 낙관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번 대책의 내용은 이전과 큰 변별력이 없는, 그래서 틈새시장이 마련될 대로 마련된 그런 정책들로 이뤄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을 두고 전례 없는 ‘고강도’ 규제 대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시장이 우려했던 ‘보유세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종부세 과세표준 공제 금액을 6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은 최종 조율 과정에서 빠졌고, 불공평한 공시가격 문제는 ‘공시가격 점진적 현실화’라는 말로 두루뭉술 넘어갔다. 그 결과 공시가격 94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보유한, 극소수의 부동산 최고 부자들에게만 종부세 최고세율이 적용됐다. 집값 상승으로 불로소득을 누리는 다른 수많은 부동산 소유자들은 여전히 규제의 칼날에서 자유롭다. 지난 8·2 대책 이후에도 이러한 이유로 특정 지역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가 급속하게 늘어 집값이 되레 폭등하지 않았던가?
둘째로, 이번 대책은 집값 상승의 본질적인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고 풀어내지 못했다. 즉, ‘부동산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우리 사회 굳건한 믿음을 깨지 못했다. 집값은 현재 상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상에 따라 결정된다. 미래에 집값이 오를 것이란 예상이 퍼지면 당장 규제가 쏟아져도 집값은 오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예상들이 퍼져 있는가? 인구절벽과 고용절벽, 교육 인프라와 문화 인프라 문제 등으로 인기 지역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줄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와 고령화 문제 등으로 안전자산, 특히 안전자산의 대표 격인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부동산 규제 흐름도 시시각각 바뀌었던 과거의 경험은 이러한 예상을 공고하게 한다.
결국, 핵심은 부동산에서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도록 하는 데 있다. 물론 개발 독재 시절부터 계속되어온 고질적인 문제인 만큼 단번에 핵심을 관통하는 해결책을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보유세가 시가에 맞게 부과되고, 상속·증여에 불법·편법은 안 통하며, 통화·금융정책이 정치 사회학적·이념적 요인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건 마냥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인기 지역에 안 살아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지방에도 양질의 일자리가 생기며, 자신의 노후를 사회가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도록 하는 건 평등과 공정, 정의를 위해서라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그리고 지금 정부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문제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최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 인터뷰에서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거기에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 제가 강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라고 했다. 이 발언에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분노한 건 그가 경제학적으로 오류를 범해서가 아니었다. 한 인터넷 댓글은 “열심히 일해서 더 나은 환경으로 가려던 희망의 싹이 뭉개져 버린 현실이 화가 난다”라고 하기도 했다. 부동산 문제에 드리워져야 할 칼날은 틈새시장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촘촘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또한, 불평등 구조를 낳는 특권의 핵심을 향해 있어야 한다. 정부 앞에 놓인 숙제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