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론의 모든 것] ① 지역감정 자극하는 정치가 만든 ‘홀대론’의 역사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홀대론 빅데이터 분석
홀대론을 균형 발전론으로 포장한 TK지역주의
호남 정치 세력이 스스로 강화한 ‘호남 홀대론’

19:07

중앙정부가 특정 지역을 홀대한다는 주장은 식상한 논리다. 지역감정에 기반한 정치가 잔존하는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집권하면 호남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집권하면 영남이 홀대를 당한다는 게 홀대론을 주창하는 이들의 주된 논리다. 정말, 중앙정부는 홀대론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을까.

노무현 정부부터 현재까지 호남과 영남 두 지역을 중심으로 홀대론이 번져온 양상을 살펴봤다. 호남과 영남은 우리나라 정당들이 지역주의를 활용하는 주요한 지지기반이다. 정치 권력에 따라 지역이 홀대당한다면 두 지역이 홀대의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우선 언론보도부터 모아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03년 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약 16년간의 뉴스 데이터를 모았다. 포털 다음(DAUM)에서 각각 ‘호남’, ‘홀대,’ ‘소외’와 ‘영남’, ‘홀대’, ‘소외’를 키워드로 해서 뉴스를 모았다.

보도량만 놓고 보면 누구도 홀대하지 않은 정부는 없다. 지역과 시기를 불문하고 홀대와 소외를 이야기하는 뉴스는 꾸준히 증가했다. 홀대론이 옳다면 영남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는 영남 홀대에 대한 뉴스가 줄고, 호남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는 호남 홀대 뉴스가 줄어드는 게 상식적이다. 정말 중앙 정부가 지역 기반에 따라 다른 지역을 홀대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아래는 16년 치 홀대론 뉴스량을 그래프로 만든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다른 시기에 비해 급격하게 증가하는 몇몇 시점을 제외하면 각 영호남 홀대 뉴스는 꾸준한 증가세다. 영남 홀대 뉴스는 증가 추세가 거의 변함이 없고, 호남 홀대 뉴스만 유독 튀어 오르는 시기가 있을 뿐이다.

자유한국당이 집권해도 영남 지역이 홀대당한다는 뉴스가 줄어들지 않고,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도 호남 지역이 홀대당한다는 뉴스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중앙 정치권력은 지역을 막론하고 홀대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게 아니라면 홀대론은 실제 사실과는 다른 이유에 근거해 확산된다고 봐야 한다.

<뉴스민>은 각 정부별로 지역 홀대 뉴스가 확산되는 진짜 이유를 확인해보기 위해 뉴스 데이터의 핵심 키워드 의미 분석을 시도했다. 노무현 정부(2003~2007년), 이명박 정부(2008년~2012년), 박근혜 정부(2013년~2016년), 문재인 정부(2017년~2018년)로 시기를 나눴다.

광주·전남·전북을 함께 아우르는 호남은 앞서 제시한 키워드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했고,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로 나뉘는 영남은 TK만 따로 다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다시 수집할 때는 TK, 대구경북, 홀대, 소외, 패싱을 키워드로 해서 뉴스 데이터를 수집했다. 2017년부터 언론을 통해 새롭게 언급되고 있는 ‘TK 패싱’이란 신조어 때문인지, 뉴스 데이터만 양만 놓고 보면 TK 홀대가 영남 홀대보다 더 많았다.

노무현과 지역주의, 그리고 호남
호남 기반 정치세력의 분당과 합당

우선 노무현 대통령 시기 호남 홀대 주요 키워드를 살펴보면 이후 등장하는 정부와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지역주의 극복에 꽤 큰 노력을 기울였던 만큼 지역주의와 관련한 키워드가 많고, 당시 혼란했던 민주당의 사정이 드러난다. 지역주의 극복 관련 키워드 군집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만 유일하게 보이는 군집이다.

눈에 띄는 군집은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를 중요한 기치로 내걸었다.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할 때도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중요한 조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민주당마저 호남 지역 기반을 중심으로 분당하는 사태를 겪는 등 지역주의의 악습을 몸소 겪었다. 2005년 5월에는 “열린우리당을 통째로 이끌고 지역주의 정치에 투항하자는 것”이냐면서 구태를 보이는 당시 지도부를 비판하는 ‘정치인 노무현의 좌절’이란 글을 써 공개했다. 노 대통령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꽤 노력을 기울였지만, 열린우리당은 2007년 민주당과 통합하면서 ‘도로 민주당’으로 회귀했다.

‘홀대론 일반’이란 군집은 홀대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키워드들이 모여 있다. 호남 또는 호남 ‘출신’은 ‘상대’적으로 ‘경제’나 ‘인사에서 홀대를 당했다는 ‘민심’을 보여준다. 그 반대에 ‘영남 정부 이명박’은 17대 대선을 앞두고 쏟아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우려가 드러난다.

‘호남고속철’은 6개 군집 중 가장 실체적인 홀대의 근거로 보인다. 1987년부터 건설 계획이 수립된 호남고속철은 노무현 정부까지 추진이 지지부진했다. 2004년부터 호남선에도 KTX가 배치되긴 했지만, 고속선이 아니어서 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 내각에서도 조기착공은 어렵다는 입장을 계속 냈고, 호남 정치인은 반발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2006년 8월에 한나라당과 그 전신 정당들이 호남 국민을 섭섭하게 했다면서 사과했다. 한나라당이 공식적으로 호남을 홀대하고 소외시켰다면서 사과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곽성문, 맥주병 난동 파동
균형 발전론으로 포장한 TK지역주의

TK 홀대에 대한 뉴스 키워드도 지금과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호남 지지 기반 정당에 몸담고, 지역적으로는 부산 출신이어서 TK가 마음만 먹으면 노골적으로 홀대론을 들고나올 수 있는 시기였다.

정치인들은 노골적이긴 했다. 대구 중·남구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국회의원 곽성문의 ‘맥주병 파동’은 시끄러웠다. 곽성문은 2005년 5월 상공회의소가 야당에 후원금을 홀대한다면서 불만을 제기하면서 상공회의소 관계자에게 맥주병을 던져 논란을 일으켰다. 지역 홀대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단 본인 호주머니 사정 때문에 난동을 부리는 사달을 낸 셈이다.

맥주병 사건을 제외하면 이 시기 TK 홀대 뉴스는 점잖은 편이었다. ‘수도권 집중’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고, 한나라당 대통령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역 균형 발전으로 잘 포장했다. 균형 발전의 일환으로 경주에는 방폐장, 김천에는 혁신도시를 유치했다. 물론 경제자유구역 TK 지정을 요구할 땐 지역감정을 자극하며 호남을 언급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내세우는 ‘균형 발전’ 논리를 적절히 활용했다.

대선 포함 공직선거만 네 번, 이명박 정부
선거 때마다, 호남 홀대 부상

이명박 정부 들어서 호남 홀대는 선거와 함께 자주 부상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임기 중 국회의원(2008, 2012) 선거 두 차례, 지방선거(2010) 한 차례 등 공직선거만 세 번 있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까지 포함하면 네 번이다. 그만큼 정치적 대립이 잦았고, 지역주의가 자주 소환됐다. 호남 홀대 뉴스 데이터양이 급증하는 4차례 중 두 번이 선거가 있던 2008년과 2012년이라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가장 극심했던 건 대통령 선거였다. 18대 대선은 무소속 4명을 포함해 후보 6명이 나섰지만, 사실상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1대 1 구도로 전개됐다. 선거 결과만 놓고 봐도 51.6%(박근혜) 대 48%(문재인)로 보수-진보, 영남-호남의 총력전이었다. 아래 키워드 군집을 보면 대선 시기에 호남 홀대론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문재인은 호남이 세 번째 민주 정부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호남 민심에 적극 구애했다. 다시는 호남이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아픔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시절 호남 홀대가 있었다면서 사과하기도 했다. 이에 질세라 당시 새누리당 공보단장 이정현은 문재인을 가리켜 “호남 홀대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호남 ‘배려’는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수사였다. 2008년 총선과 관련한 작은 군집도 보이는데, 대표적인 친이계였던 정두언은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결정에 호남을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남고속철은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진 숙원 사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호남고속철 조기 완공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2009년 착공했다. 정부 초반부터 호남에선 고속철 조기 완공을 요구하면서 호남 홀대론의 군불을 땠다.

‘사사롭게 이로운’ TK 홀대
이명박-박근혜, ‘홀대’는 남의 이야기

반대로 TK 홀대 키워드는 선거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실제적인 이익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첨단의료복합단지를 TK에 유치하기 위한 도구로 TK 홀대와 소외가 활용됐고, 덕분인지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대구로 왔다.

호남 홀대 키워드와는 다르게 ‘TK’와 ‘홀대’, ‘소외’ 키워드는 TK‘가’ 홀대를 당하는 것보다, TK‘와’ 비교해서 다른 지역이 사회·문화·복지·경제·교육 전반의 예산 지원과 사업에서 홀대당하는지를 드러내는데 활용됐다.

호남 홀대 키워드에선 TK나 영남이 홀대당한다는 키워드를 볼 수 없었지만, 오히려 이곳에서 호남 출신이 인사에서 홀대당한다는 키워드가 크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TK 홀대론이 대선 국면에 사용되지 않은 건 아니다.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한 TK의 전략이 홀대론이었다는 건 앞서 첨단의료복합단지,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사례에 견줘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TK 홀대부터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TK가 크게 홀대받은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홀대론’을 활용해 지역의 이익을 얻으려는 모습이 여전하다. 공공‘기관’과 혁신‘도시’ ‘이전’을 추진하는데 협력하고, 공항 공약 실천을 압박하고, 지역 예산을 요구한다. 박근혜 정부는 영남 출신 편중 인사를 이어간다.

되려 호남과 충청은 영남과 비교하며 홀대를 멈추라고 악다구니다. 충청에서는 충청권에만 중소기업 연수원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북 내에서 의료, 복지, 문화, 경제가 소외된 곳을 보살피라는 요구를 하고, 지역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확대하려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TK 홀대 뉴스 데이터 분석에서 공히 볼 수 있는 건, TK 홀대 키워드로 수집한 뉴스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영남, 충청 등 다른 지역의 홀대를 보여주는 키워드가 더 잘 드러난다는 점이다.

호남 정치세력이 자초한 호남 홀대
호남 인사 홀대 지적은 ‘이정현’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호남 홀대 여론은 야권 내에서 불거졌다. 대선 이후 만들어진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4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1월 정동영, 3월 천정배 두 사람이 탈당하면서 본격적으로 분화가 시작된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문재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에 크게 반발했다. 천정배는 탈당 후 무소속으로 광주 서구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면서 “호남 정치의 부활”을 선언했고, 주승용을 비롯한 호남 국회의원들이 우후죽순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안철수계와 호남 정치인들이 떠난 새정치민주연합은 문재인 중심의 더불어민주당으로 재편되고, 두 세력은 전격적인 호남 민심 쟁탈전을 시작한다. 이같은 야권의 좌중지란으로 불거진 호남 홀대론은 박근혜 정부 호남 홀대 뉴스 데이터 분석에서 크게 자리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호남 정치 세력이 자초한 호남 홀대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를 향해서도 호남 홀대론이 불거졌지만, 인사 홀대라는 식상한 지적에 그쳤다. 인사 홀대는 이정현 카드를 쓰면서 무마 시도됐다. 당시 호남 유일 새누리당 국회의원 이정현은 친박 핵심으로 박근혜 정부 초대 정무수석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안철수-천정배의 호남 구애
‘강호축’ 개발론으로 발전한 ‘홀대론’

호남 정치세력이 자초하는 호남 홀대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어진다. 국민의당 안철수와 천정배는 2017년 5월 대선을 앞두고 호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민의당 대선 주자였다. 안철수는 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부터 호남 민심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본인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호남을 향한 안철수의 구애는 대선 기간 내내 이어졌다.

천정배는 호남 주도 정권교체를 이뤄서 개혁연합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주장했지만, 3월에 대선 출마 뜻을 접었다. 천정배는 이후 현재까지 꾸준하게 호남에 구애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반면 문재인은 호남에서 박근혜 정부의 차별과 홀대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면서 호남 민심을 얻으려 했고, 호남 밖에서는 국민통합 대통령 되겠다고 강조했다. 천정배, 안철수가 문재인을 ‘호남의 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문재인은 기존의 적, 박근혜를 활용한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호남 홀대론은 국가 발전 전략으로 발전했다. 강원, 충청, 호남권 광역단체장들은 강원, 충청, 호남을 잇는 ‘강호축’ 국가 발전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2018년 2월 이 지역 단체장들이 모여 강호축 정책 반영 공동 건의문을 채택하고, 현재까지 끊임없이 정책 반영을 위해 활동 중이다.

과거와 다른 TK 홀대 키워드···불안감 엿보여

흥미로운 점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TK 홀대 키워드들이 보이는 변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오면서 TK 홀대론은 균형 발전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거나, 지역 이익을 챙기는 알리바이로 작동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보이는 TK 홀대 키워드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과거에는 웃는 얼굴을 ‘홀대’라는 가면으로 가렸다면, 문재인 정부 이후에는 가면 뒤에 불안한 표정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예산, 인사에서 영남 지역을 홀대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정치, 정책, 국비에서 TK가 패싱 당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그 배경은 문재인 정부를 호남이 선택한 대통령, 호남이 선택한 정권 교체라는 인식에 있다.

‘예산’과 ‘인사’ 같은 키워드가 호남이나 충청 등 다른 지역이 아니라 TK의 ‘현실’을 보여주는 키워드로 사용된 사례는 문재인 정부가 처음이다. 실제로 홀대당하고 있는 사실 여부보다 과거에 비해 TK가 홀대당하고 있다는 인식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는 게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