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계약 만료로 일자리를 잃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진선미(가명, 52) 씨는 지난해 6월 1일 경북 김천시 통합관제센터 관제요원으로 입사했다. 관제요원은 김천시에서 직접 고용하는 기간제 비정규직이다. 1년 기간제 계약을 했다. 곧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통합관제센터는 휴일, 공휴일 상관없이 24시간 운영된다. 관제요원 36명이 4개 조를 이루어 오전-오후-야간 8시간씩 3교대를 한다. 김천시 곳곳에 설치된 1,500여 대 CCTV 화면을 실시간 감시하면서 방범, 재난·재해, 어린이 안전사고 등을 예방하는 일을 한다. 지난해 12월 저수지에서 투신자살하려던 시민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해 사고를 막았다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모니터 화면은 13초에 한 번씩 바뀐다. CCTV 9대 화면이 띄워진 모니터 두 대를 동시에 감시한다. 관제요원 1명이 감시하는 CCTV는 약 140여 대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중앙정부, 자치단체, 지방공기업 등은 1단계로 기간제, 파견·용역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내용이었다.
선미 씨는 “당시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한다고 해서 우리도 그런 줄 알고 있었다”며 “조장들이 팀장님과 식사하면서 물어봤는데,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좋은 소식이 있을 거다. 그러니까 기다려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나랏일’이 진행되는 속도는 더뎠다. 선미 씨는 올해 5월 말 1년 계약이 만료됐고, 2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통합관제센터에서 일하기 전 10개월 동안 기간제로 다른 업무를 했기 때문이다. 김천시는 기간제 계약 기간을 2년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
2개월 연장한 계약 기간이 끝나는 지난 8월 1일까지도 선미 씨는 정규직 전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앞서 6월 1일에도 동료 20명이 계약이 만료됐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9개월 이상 근무하고, 앞으로 2년 이상 업무가 지속되는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는 11월에도 계약 만료 예정자가 있다.
선미 씨는 “아무 소식이 없길래 지난 7월에 노조(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 김천시통합관제센터분회)에 가입했다. 정규직 전환이 되는지 안 되는지, 심의위원회가 한 번 열렸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며 “노조 가입 전에 벌써 계약이 만료돼서 나간 동료들도 많다. 전환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못 듣고, 늘 그렇듯이 2년이 되면 나갔다”고 말했다.
똑같이 CCTV 관제요원으로 일하더라도 자치단체마다 무기계약직, 기간제, 용역 업체 비정규직 등으로 고용형태가 다르다. 안동시는 올해 무기계약직 CCTV 관제요원 4명을 정규직(공무직)으로 전환했다. 경북 영양군은 지난해 기간제 비정규직 9명을 전환했는데, 모두 CCTV 관제요원이었다.
영양군 인사담당 관계자는 “CCTV 관제요원을 가장 우선적으로 전환했다. CCTV가 없는 세상이 오지 않는 이상 계속 지속되는 업무이다”고 설명했다.
2017년 6월 말, 고용노동부 특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천시 기간제 비정규직은 모두 429명이다. 이 중 김천시는 올해 1월 36명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나머지 기간제 비정규직은 순차적으로 전환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시기나 대상은 정해지지 않았다.
김천시 자치행정과 후생복지담당 관계자는 “CCTV 관제요원도 정규직 전환 대상이 맞다. 지난해 심의위원회에서 우선적으로 인건비가 지원되는 직종을 전환하고, 나머지 분들도 순차적으로 해가야 한다”며 “관제요원분뿐 아니라 다른 직종도 전환해야 하는데, 예산상 한꺼번에 전환할 수가 없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계약 만료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방안에 대해 이 관계자는 “전환 시기가 결정되면 가이드라인 발표 시점에 일하던 분들도 제한 경쟁을 통해 전환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앞서 계약 만료된 분들께도 양해를 구한 상황”이라며 “노동조합에서 요구하는 직종이라고 해서 그 직종만 먼저 전환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경북 자치단체, 예산 이유로 ‘찔끔찔끔’ 정규직 전환
전환 시기 늦어지는데 계약 만료 비정규직 보호도 제 각각
자치단체별로 정규직 전환 대상이 일관성이 없는 것도 문제다. 경북 관내 자치단체는 예산 등을 이유로 기간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순차적으로 하고 있다. 국비나 도비에서 인건비가 지원되는 보건, 청소년 복지, 평생학습 등 일부 업무만 먼저 전환하는 식이다.
지난해 CCTV 관제요원 9명을 우선 전환한 영양군은 올해 최대 20명 전환 대상자를 선정해 전환할 계획이다.
시 단위 자치단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북 시 단위 10곳은 올해까지 기간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한 인원이 393명에 불과하다. 경산 72명, 포항 61명, 영천 49명, 안동 48명 순이다.
이처럼 가이드라인 발표를 기준으로 1년 이상 전환 논의가 늦어지면서 무기계약 전환 전 계약이 만료되는 김천시와 같은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산시는 정규직 전환 대상자 계약 만료 시 정규직 전환 결정 전이라도 우선 전환하고 있지만,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특별한 지침이 없어 방안을 고심 중이다.
경산시 인사담당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이 예정된 업무라면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을 예상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일시적 업무이거나 고령자이면 배제를 하고, 본인 의사에 따라 계약 만료 시점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영천시 인사담당 관계자는 “예산 문제 때문에 4단계에 걸쳐서 전환하기로 했다. 전환하는 도중에 계약이 만료되면 전환심의위에서 방안을 논의해야 할 거 같다. 가이드라인 당시 대상자를 포함해서 공채해야 할지, 업무 특성에 따라 채용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고용노동부 지침이 처음에 한 번 밖에 안 내려왔다.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지침이 있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기는 문제는 지자체가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계약 만료자에게 경력을 인정해 가산점을 부여하고 공개 채용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완료했다.
선미 씨와 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는 13일 오후 4시 김천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과 계약 만료 비정규직의 복직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을 시작할 예정이다. 선미 씨는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는 동안 계약이 만료돼 해고됐다. 일자리 창출, 고용 안정 보장하라고 내려온 지침인데, 누구는 실업자를 만들고 다른 사람을 채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조창수 공공운수노조 경북지역지부 부지부장은 “정규직 전환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전환 시점이 정해지지 않아 계약 만료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계속해서 생긴다. 빈자리에는 또 기간제 노동자를 뽑는다”며 “정규직 전환이 될 때는 전환 시점에 일하던 노동자가 아니라 가이드라인 발표 시점에 일하던 노동자가 전환 대상이다. 함께 공개경쟁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일자리를 얻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