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존엄해야 하는 존재인 사람이 죽었다. 한 사람은 2016년 여름 서울 구의역에서. 또 한 사람은 2018년 한여름 택배물류센터에서. 부자이거나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특성화고를 갓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청년이었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사회로 출발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온 청년이었다.
그들에게 허용된 ‘안전’장치는 없었다. 한 청년은 2인 1조의 규정이 무시된 상황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청년의 마지막 유품인 작업가방에서는 컵라면 하나가 나왔다.
또 한 청년은 사상 최대 폭염 속에서 택배물류작업장에서 10시간 이상 노동 중 감전으로 사망했다. 별도의 안전교육을 이수하지는 않은 채 투입되었다.
대한민국의 작업장에는 항상 ‘위험’이라는 단어가 공존한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율도 높다. 우리나라는 노동자 1만 명 당 사고사망자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다. 2017년까지 한 해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 수는 9만 여명에 가깝고, 이 중에 964명은 목숨을 잃었다. 매일 3명은 일을 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발생한 사고이지만, 너무나 닮아 있다. 구의역 청년은 서울메트로가 외주용역계약으로 스크린도어 전문수리업체가 아닌 광고대행업체 소속이었다. 최저가 입찰로 낙찰받았다. 전문성이 부족한 업체가 최저가 낙찰로 선정됐으니 고용인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2인 1조 출동 원칙이 무시되는 이유가 됐고, 낮은 임금을 줘도 되는 사회초년생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적절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않았고, 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택배물류센터의 청년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정된 1시간 이상 실시해야 하는 노동자 정기안전교육을 5분 받았다고 노동청 조사결과 밝혀졌다. 비상시 필요한 안전장치와 안전덮개는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했던 다른 청년의 증언을 빌리자면, 폭염 속에서 포도당 알약 2개와 생수 한 병, 그리고 3개 레일에 1대씩 배치된 선풍기만이 그들에게 제공된 사업장 복지의 전부였다고 한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사고는 진행형이다. 2017년 석유화학탱크 사고로 인해 도장 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음료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선 특성화고 학생은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포장 업무를 하다 포장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했다.
이들의 죽음을, 혹은 이들을 존엄한 가치로 대우했다면 이러한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체가 존엄하다는 미화까지는 못하겠다. 아직 우리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해야’만 하고 ‘개같이 벌어야’ 하는 것에 익숙하다.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어느 정도 희생을 감내 할 수 있다고 배운다. 기업이 잘 되어야 국가가 강해질 수 있다고 배웠다.
국가와 기업을 위한 경제라면 노동자는 존엄한 인간이 아닌 하나의 기계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당한 자본주의 사회라면 누구나 노동을 하고 대가를 얻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과서에서 노동3권을 이야기하면서도 단원의 마지막은 사업주가 직장폐쇄로 맞설 수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도 안전교육은 형식적으로 해치우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비정규직과 청년 노동의 가치는 낮아야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이 더 이상 산업현장의 부품, 국가 산업의 구조물이 아니어야 한다. 그들의 노동을 제공하고 정당한 삶을 구현할 수 있는 권리주체자여야 한다. 노동자가 노동이라는 존엄한 가치를 제공한다면 국가와 기업은 충분한 대가로 안전한 작업장과 복지를 제공해야만 한다. 이 단순한 논리가 이룩해야할 목적치가 아니라 지금 우리 현장에서 당연한 가치여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ILO(국제노동기구) 155호 산업안전 보건 협약을 비준했다. 비준국은 작업과정에서의 사고 및 상해를 예방하기 위해 관련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검토할 의무를 가진다. 이는 물질적 요소 뿐 아니라 작업자의 신체 정신적 영역에 까지 이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더불어 기업에게까지 위험이 발생하지 않을 의무를 이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