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시대, 인구가 없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촌에 사는 엄마들은, 도시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위험에 언제나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 아이가 자랄수록 의료시설부터 보육, 교육까지 부담은 점점 늘어나지만, 인구가 적고 평균 연령이 높은 지역에서 이런 문제들은 뒷전이 되기 쉽다. ‘맘’이기 전에 시골러(시골+-er: 시골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로서, 시골과 한국에 대한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경북 농촌 여성들을 만나봤다. (앞선 기사 보기=경북 시골맘들은 조금 더 ‘강해야 한다’ (1))
2.
시골 엄마들이 더 ‘강해져야 하는’ 이유는 의료 인프라의 부족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두 돌도 안 된 아이를 둔 초보 엄마인 성희 씨는, 갓난아이 돌보는 것과 가사노동을 도와줄 사람이 절실했다. 주위에 정보를 공유할 또래 엄마도 없었다. 출산 직후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서비스를 신청하려고 알아봤지만 “여기까지 오려고 해도 숙식을 할 수도 없고, (교통이 불편해) 출퇴근할 수도 없으니” 성희 씨의 집까지 올 수 있는 건강관리사가 없었다.
일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 아이가 좀 더 자라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부터도 고민이다. 그런데 “농어촌에서는 보육교사를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 대개 보육교사들은 안동 쪽에서 출퇴근하거나 읍에 집을 구한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문 것이다. 자밀라 씨도 “시골이니 아이들 수가 적어서 그런지 (보육센터 등에 지역민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보육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 문화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다.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영어도 배우고 학원도 가니까 농촌 애들도 (뒤처지지 않게 미리) 배워둘 필요가 있어요. 문화센터가 있으면 좋겠어요. 안동에 보건소에서 그런 게 있다는 걸 아는데, 신청하려다가 너무 멀어서. 엄마랑 문화적으로 즐기고 싶을 때, 그런 건 (시골에)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도 선영 씨가 사는 의성 점곡면은 여성농민회가 주도해 설립한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마치면 5, 6시까지 센터에서 활동하고 온다. 그 사이 부부는 농사일에 신경 쓸 수 있다. 선영 씨는 “대부분 보육시설은 큰 읍에 쏠려있는데, 이곳에 센터가 생기니까 아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며 “2, 3개 면에 센터가 하나씩 생기는 등 보육 제도만 제대로 갖춰져도 (시골에서 사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반면 정작 학교에서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방과 후 활동이 차츰 줄어들고 있는 게 선영 씨의 걱정이다. 그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통폐합 대상학교이기도 하다. 11살 첫째의 반 친구는 총 3명, 7살 둘째의 반 친구는 총 2명뿐이다.
“(시골 안까지) 올 수 있는 강사분들이 없대요. 보통은 안동, 가까우면 읍에서 오시는데. 이게 차비 빼고 나면 왔다갔다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 돈 받고 오실 수 있는 분이 잘 없는 거예요. (…) 그러면 ‘여기 사는 젊은 엄마들이 자기 전공이나 잘하는 것들을 살려서 마을 선생님처럼 운영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대부분 다 농사를 짓는 분들이라 시간을 내기 어렵고, 자격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롭더라고요. 지자체에서 이런 것들을 발굴해 방법을 열어주면 재능을 가진 분들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경북 출생아 수는 2007년 25,062명에서 2017년 17,957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구미, 포항, 경산 등 큰 도시에서 그나마 2~3,000명 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2017년 한 해 울릉에서 태어난 아기는 32명, 영양은 80명, 군위는 100명뿐이었다. 현재 영양군 인구는 17,461명(2018.7.31.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불과하다. 그런 가운데 경북 농촌 지역에는 특히 다문화 가정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자주 들린다.
2016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경북 출생아 중 5.1%가 다문화 출생아였다. 자밀라 씨가 사는 영양의 경우, 2016년 출생아 74명 중 12명이 다문화 출생아(16.2%)들이었다. 출생아 수 자체도 적지만 다문화 출생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자밀라 씨는 10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왔다. 한국어 한마디 하기 어려웠을 때는 임신을 해도 “애가 애를 낳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한국어 공부부터 열심히 했다. 다행히 지역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어 언어를 익히고, 센터 사업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밀라 씨처럼 센터 사업을 경험하고 운전까지 할 수 있는 결혼이주여성이 지역에 많지는 않다. 그는 “센터에서 좋은 사업을 해도 농사일이 바빠서 가고 싶은데 참여하지 못할 때가 많다”며 “운전을 못해서 멀리 움직이지 못하는 여성들도 있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의 발을 묶는 건 무엇보다 그들을 향한 편견 어린 시선들이다.
“한국에는 좀 한민족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우즈베키스탄은 과거 소비에트로 묶여있어서 외국인들이 많이 섞여 살고 있고, 다문화 가정이라면 ‘얘는 일단은 우리보다 언어를 2개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여기 한국에는 다문화 애들을 낮춰 봐요. 일단 ‘너는 엄마가 어느 나라 사람이니?’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어르신들의 태도가 ‘얘들은 돈이 없어서 한국에 와서 살고 있고’, ‘돈이 없어서 돈을 매달씩 부모한테 붙이고 있고’ 이런 식으로 보세요. 같은 사람이잖아요. 똑같이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영양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맹임숙 팀장은 “(이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 마을회관을 순회하며 다문화 이해 교육과 센터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민들이 센터로 가보라고 먼저 얘기하는 등 인식이 개선되고는 있다”고 설명했다.
자밀라 씨가 한국에 처음 온 이방인이었다면 선영 씨는 대구에서 의성으로 귀농 온, 점곡이라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방인이었다.
선영 씨가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때로는 남편이 먼저 집에 들어가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받고 저녁 준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습이 마을 사람들한테는 유별난 것이다. 이웃 어른들은 ‘왜 애 엄마가 안 들어오고 애 아빠가 집에 들어와서 이러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여자들이 많이 하는 밭일을 남편이 하고 있으면, ‘왜 이 집은 남자가 저 앉아가지고 일을 한다’는 말을, 아이 돌 때까지 아이들과 집안에서 지내면 ‘요즘 젊은 애들은 애 본다는 핑계로 밭일 안 한다. 우리 때는 다 애 업고 나가서 일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게(이런 시선과 말들이) 전부 여성에게 주어지거든요. 남자들이 휴일에 아이를 보면서 집에 있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내가 이런 소리를 왜 들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경북여성정책개발원이 2017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북 취업여성가구에서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평일 평균 134분이다. 그에 반해 남성은 14분으로, 여성의 가사·육아부담 수준이 남성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17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지역성평등지수 보고서에서도 여성 취업에 장애가 되는 요인에 대하여 경북에 사는 여성은 육아부담 74.1%, 가사부담 45.1%, 사회적 편견과 관행 44.5% 순으로 응답했다. 남성은 육아부담 67.5%, 사회적 편견과 관행 45.2%, 가사부담 36.8%로 나타났다. 이는 여성이 취업을 하거나 개인 여가시간을 가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모두 ‘아이가 충분히 큰 다음’으로 미뤄진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17년 경북 여성 월평균 임금은 1,469천 원으로 남성 월평균 임금 2,663천 원의 55.2% 수준이었다. 전국의 남성 대비 여성 임금비 63.5%보다 8.3%p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북은 2011년 이래 계속 성평등 하위지역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7월 간부공무원과 출자출연기관장 연석회의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여성의 책임을 강조하는 ‘저출산’보다는 남녀 모두가 책임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저출생’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며 “용어와 함께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지사의 저출생 극복 핵심사업 중 하나가 의성에 도입할 예정인 이웃사촌 시범마을이다. 청년 일자리·주거·의료·문화·교육을 두루 갖춘 지역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구 2만 명도 안 되는 촌에도 아이가 아프면 1시간 동안 초조한 마음으로 차를 끌고 가야 하는 젊은 부모들이 있고, 이방인으로서 마을에 섞여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직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