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행복한 아이들이 사는 대한민국?

20:31

몇 년 전 출장을 다녀오던 비행기 안에서의 일이다. 모스크바에서 환승해 서울로 오는 비행기였다. 내 옆자리에는 금발머리를 한 러시아 소녀가 동석했다. 우리 아이 또래 같아 보이기도 했고, 기껏해야 10~12살인 아이가 무슨 연유로 혼자 비행하는지도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혼자 여행하는 거니?”

아이는 짧은 영어로 서울을 간다고 했다.

“서울은 무엇 때문에 가는 거니?”
“영어캠프요, 15일 동안 영어캠프가 있어요.”

잠시 당황스러웠다. 한국에서 영어캠프라니, 그것도 러시아 소녀가. 내가 그럴듯한 반응을 내지 않고 짐짓 당황스러워 하니, 소녀는 자신의 영어가 틀렸거나 부족해서 그런가보다 했는지 가방에서 영어캠프 관련 서류를 꺼내 보여주기 시작했다.

서류에는 한국에서 약 보름간 진행되는 영어캠프 스케쥴표가 있었다. 한국업체였고, 주로 러시아나 구소련 국가의 상류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 같았다. 한류콘텐츠를 포함해 다양한 체험일정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영어 수업을 진행하는 이들은 우선 이름만 봐서는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이었다. 아마 미국이나 영국쯤 되는 원어민 선생님일 것으로 추측된다.

이게 블루오션이었던가 싶다. 정규학제를 다 마무리했다면 적어도 6년은 영어를 지독스레 공부했지만 영어는 극복해야 할 먼 산처럼 느껴지는 한국인들에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의 영어캠프라니…지독히도 아이러니했다. 거기에 더해 대한민국 아동의 행복지수는 OECD에서 늘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교육이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 교육산업은 전 세계를 상대로 발전하고 있는 아이러니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을까? 몇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고자 한다.

[죽을때까지 시킵니다. 00 학원]
[지옥의 SUNDAY,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수학만 합니다]
[자물쇠 학원, 걱정마세요 당신의 자녀를 10시간 동안 자물쇠로 든든하게 가둬드리겠습니다]

실제 나온 적 있는 학원의 광고들이다. 대한민국은 경쟁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지옥처럼 보여진다. 거기다 더해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도태되는 인간처럼 규정한다. 대한민국은 누군가의 우스개 소리처럼 만주벌판에 데려다 놔도 학교부터 세운다고 했다. 그만큼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나라다.

교육이 발전한 나라는 분명히 훌륭한 나라가 맞다. 그러나 사람의 존엄을 실현할 방법으로서 교육이 아니라 성공의 수단으로 전락한 나라에서 우리는 그 도구의 도구로서 희생되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리고, 보호받아야하고, 그래서 부모와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만 하는’ 이상한 논리에 매몰되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로 몰리고 있다.

▲[사진=https://rantingsfromavirtualsoapbox.wordpress.com/tag/cows-calf/]

얼마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송아지 농장 사진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람 한 명 들어가면 딱 맞을 것 같은 시설 안에는 갓 태어난 송아지들이 가두어진다. 거기서 딱 60일간 살아진다. 그리고 어린송아지 고기용으로 도축된다. 우리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송아지는 풀밭을 마구 뛰어다니며 해맑게 ‘음~매’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축사에서만큼은 어미소의 뒤를 따라다니는 모습이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대한민국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 송아지들에게도 할 말은 있을 터였다. ‘너희들은 원래 그런 운명을 타고난 송아지들이야. 그렇기 때문에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단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단다. 그게 네 운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해’라고 아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들을 ‘어리니까’를 전제하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대하고 존중해준적이 있었는지, 그들에게 지금 의견을 구하고 있었는지를 거듭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그들에게 권력으로 권해져서는 안 된다. 나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얻어지는 것이고 사회적 나이를 이유로 그들이 차별받거나 부당하게 제한당해야 하는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은 대구광역시 어느 교육청에서 몇 년 전 실시한 백일장에서 당선되어 좋은 시 읽기로 홍보된 어느 학생의 작품이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지금 모습이고, 이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살고 있는 한은 우리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금방 높아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소리 없는 전쟁 (OO중 2학년 박 O O)

시험기간이 되면
우리들은 총 안든 군인
1급 비밀노트를 채우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선생님의 말씀을 적는다.

전쟁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울리면
한 손엔 펜 다른 한 손은
1급 비밀노트를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휴전의 시작을 알리는
폭격이 터지면
적군의 스파이가 숨어든다.
앗!
내 1급 비밀 노트를 사수하라
시험기간이 끝나면
우리는 잠시 휴전상태
다시 전쟁은 시작된다. (2008. 교내 백일장 2학년 운문부 장원)

▲[사진=대구서부교육지원청 홈페이지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