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려보면 희망고문이었다. 9일 오전 10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대구시 달서구 호림동 대구기계부품연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차별, 성희롱, 비정규직 차별, 비리 백화점 대구기계부품연구원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11년 동안 비정규직으로만 일하던 김지은(가명, 30대) 씨는 청춘을 보낸 대구기계부품연을 바라보며 화가 나고, 눈물도 맺혔다. 왜 그는 11년 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쫓겨났을까.
입사는 2007년 4월 30일이었다. 계약직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었다. ‘연구원’이라는 번듯한 직책도 받았다. 또, 일단 취직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규직이 되는 게 어렵지 않다고들 이야기했다. 마침 2006년 11월 30일 국회가 비정규직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계약직도 2년 이상 일하면 법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바뀐다고 했다.
기계·자동차 관련 석·박사 연구원들이 진행하는 연구사업 발주 기간까지 일한다고 계약서를 썼다. 막상 입사하니, 연구사업 행정 업무만 있는 게 아니었다. 회의실/세미나실 대관 업무, 홍보자료 작성 및 발송, 문의전화 응대, 연구원 소식지 제작 기획까지 다양했다. 연구사업 기간이 끝나자 다른 부서에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채용시험을 치르지는 않았다. 계약서를 다시 쓰고 부서만 옮겨가서 일했다.
만 3년이 지났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을 피하려 1년 11개월만 일하다가 잘렸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지은 씨는 잘리지 않았다. 성과급 등 정규직과 차이는 있었지만, 잘리지 않았다. 부서는 바뀌었지만, 직책은 여전히 ‘연구원’이었다. 다른 업무에서는 계약직으로 들어와 정규직이 된 남자 직원들이 하나둘 있었다. 언제쯤 정규직이 되려나.
2010년 3월 18일, 회식 자리였다. 날짜도 잊을 수 없다.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정규직 상관이 강권했다. 그러고는 성추행을 당했다. 수치심에 눈물이 났지만, 잊자고 다짐했다. 괜히 문제를 제기하면 정규직이 되기는커녕, 계약 기간이 만료되고 쫓겨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은 씨보다 늦게 입사했던 계약직 동생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2년이 지나도 정규직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조금만 더 버티지. 왜 그만두냐”고 지은 씨가 물었다. “언니, 여기서 여자는 정규직 안 돼”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그래도 버텼다. 어느덧 지은 씨도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2012년 12월이었나. 노무팀에서 퇴사한다는 서류를 내밀었다. 바뀐 규정 때문이라고 했다. 하라는 대로 했다. 2013년 1달을 쉬었다. 그때부터였다. 연구원은 채용 계약직 채용 공고를 냈고, 지은 씨도 다시 입사 지원서를 써야 했다. 연구사업이 끝날 때마다 퇴사와 입사를 3번 반복했다. 물론, 서류상으로만. 하나의 연구과제가 끝나도 지은 씨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완료된 연구사업에 대한 성과조사 행정 업무를 부탁해왔다. 부서를 4번 옮긴 덕택에 4곳으로부터 각각 다른 성과조사 행정 업무를 할 때도 있었다. 그게 지은 씨 일이었다.
마흔을 바라보기 전에는 정규직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지은 씨는 2013년부터 일하면서 대학원에 다녔다. 연구행정 업무에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해 공학회계 석사 학위를 2015년 받았다. 2018년 1월 24일, 연구행정 업무 정규직 채용공고가 떴다. 관련분야 실무 유경험자를 우대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남자 뽑을 건데 지원하지 마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지은 씨는 11년 동안 연구행정 업무를 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원서를 접수했다.
그무렵 미투(#Me_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확산됐다. 8년 전 일이 떠올랐다. 마침 3월 8일 여성가족부가 ‘공공부문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열었다. 성추행 사건을 접수했고, 여성가족부 공문이 연구원으로 왔다. 조사가 시작됐고, 6월 29일 연구원 내 ‘성폭력 고충상담위원회’가 열렸다. ‘직장 내 성추행’으로 규정됐다. 가해자로 지목된 ‘팀장’은 직위가 ‘팀원’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지은 씨는 6월 30일 ‘계약만료’가 됐다. 정규직 채용에서는 떨어졌다. 다시 계약직으로 일하자는 제안도 받지 못했다.
정부·대구시 사업비 받는 공직 유관단체에서
비정규직으로만 11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간제근로자법이 문제인가, 연구원이 문제인가
대구기계부품연구원(원장 김정태)은 정부와 대구시가 발주하는 사업을 받아 운영한다. 출자·출연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전환 대상 기관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금을 사업비로 받아 운영하는 공직 유관단체다. 공직 유관단체에서 어떻게 11년 동안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일 수 있었을까. 연구원은 원장을 제외한 정규직 76명, 계약직 14명이 일한다. 무기계약직이란 단어는 없다. 때문에 지은 씨 이외에도 2년을 넘게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대구기계부품연구원 측은 연구사업을 수행하는 연구원은 기간제근로자법이 정하는 2년 초과하여도 기간제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사업 종료 시점까지 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주하면 다시 채용공고를 내고 근로계약을 체결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뉴스민> 취재 결과 채용공고를 내고 다시 채용하는 식으로 지은 씨가 일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3년 2월부터였다. 2007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계약서만 다시 쓰고 부서를 옮겨가며 행정업무를 맡았다. 지은 씨에 따르면 계약서에 명기된 사업과 관련되지 않은 업무량이 절반에 달했다고 한다. 기간제근로자법 가운데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2년을 넘기더라도 계약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에 해당한다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상시지속 업무’로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지은 씨의 직책은 연구원이지만, 석·박사급이 진행하는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다. 연구‘사업’에 필요한 행정 처리를 맡아서 했다. 이는 2년 초과 기간제근로자 사용 예외 조항을 대통령령으로 명기한 ‘연구기관에서 연구업무에 직접 종사하는 경우 또는 실험·조사 등을 수행하는 등 연구업무에 직접 관여하여 지원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를 직접적으로 돕거나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사업’의 행정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은 씨 직책이 ‘연구원’에 직접 연구업무에 종사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지은 씨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대구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 성차별, 성추행, 비정규직 차별, 채용비리 진정을 신청했다.
연구원 기획경영실 관계자는 “사업과 관련된 업무만 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지시해왔다. 누가보더라도 지방노동위원회가 합리적인 근거에 의거한 판정이 나온다면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9일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직후 노조(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대구기계부품연구원지부)도 입장문을 냈다. 노조는 “기계부품연에는 우리 노동조합 지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제때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차별, 성폭력, 비정규직 차별, 비리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기계부품연에서 일했거나 현재 일하고 있는 모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그동안 당했던 모멸감, 수치심, 배제와 차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13번의 계약서를 쓰면서 11년을 일하고도 일자리를 잃은 지은 씨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성추행, 성차별도 참아야 했던 여성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인간답게 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