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파는 양조간장 대부분은 100% 콩으로 담지 않는다.

[아이쿱생협 연속기고] (4) 간장 이야기

18:15

[편집자 주=아이쿱생협은 복잡하고 어려운 현행 식품표시제를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예외없는” 식품완전표시제 캠페인(inmycart-icoop.org)을 벌여왔습니다. 시민과 함께 식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함과 더불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윤리적 소비를 선택함으로써 한국 농업을 지키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예외없는” 식품완전표시제 시민 캠페인 펀딩에는 9월 22일까지 3만 5천여명의 소비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오는 10월 17일 ‘아낌없이 표시하자’는 슬로건을 걸고 서울, 광주, 대구에서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뉴스민>은 아이쿱생협과 ?시민기자가 쓴 기사와 인터뷰를 17일까지 연재합니다. 네 번째 글은 간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구조주의 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언어가 없는 사회가 존재하지 않듯 음식을 요리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고 전제하고 세계 각 민족의 요리법을 날것(le cru), 익힌 것(le cuit), 띄운 것(le pounri)로 나눈 ‘요리의 삼각형(culinary triangle)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레비스트로스가 요리의 삼각형에서 목적한 바는 요리 과정에서 자연과 문화를 구별짓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음식물을 먹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속한 사회가 가진 문화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의미는 다르지만, 음식문화라는 건 그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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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음식문화는 어떤가.

현대사 100년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음식문화의 변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국주의 일본 식품산업은 40년 가까이 이 땅을 지배하며 우리의 입맛까지 변화시켰다. ?같은 음식이라도 앞에 일본식이라는 말만 붙는다면 가격을 두 배로 받을 수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와중에 우리의 전통음식은 설 자리를 잃었고 전통음식을 표방하면서도 음식 맛을 내는 기본인 장은 더더욱 다국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음식의 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장의 현실은 어떨까? ?

우리나라에 일본식 식품문화가 들어오기 전 우리의 장은 김치와 마찬가지로 한 집안 고유의 맛이었다.

“망한 집은 장맛이 변한다”
“말이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한 고을의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의 일은 장맛으로 안다.”

등등 장에 관한 여러 속담이 있을 정도로 장맛은 한 집안의 길흉을 상징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고려의 장인 말장이 일본에 들어와서 그 나라 방언 그대로 ”미소“라고 불렸고 고려장이라고 적는다”
(일본의 학자 아라이 하쿠세키)

과거 일본으로 전파되었던 장의 제조기술은 이제 일본에 가서 배워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때 일본으로 전수되었던 많은 것들이 역수입의 현실에 놓여있다. 일본은 에도시대에 이미 미소와 소유공장에서 대량생산이 시작되어 가정에서 만드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다.

현재 식품회사에서 생산되고 있는 장류는 대부분이 일본에서 발달한 장류의 제조기술이나 시설을 따르고 있어서 국내에서 생산된 것들도 왜간장이나 왜된장으로 불리고 있다.?우리나라에서 장의 산업화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1884년 갑신정변 이후부터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부산, 인천, 경성 지역에서 장류공장의 흔적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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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1886년 부산 신창동에 장공장을 설립하여 간장 및 된장을 생산한 것이 시효이며 그 후 1910년에 이르기까지 서울, 인천, 부산 지역에 총 34개의 장류공장이 설립되어 일본이나 만주 등으로 수출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후에는 그 공장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수하여 생산량 대부분이 음식점이나 군납용으로 소비되었는데 이때까지도 장을 사 먹는다는 개념은 아직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6.25를 겪으면서 장을 담아 먹을 형편이 안되자 서서히 장을 사서 먹는 수요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주거환경의 변화로 장독대는 사라지고 입맛의 서구화로 장의 수요는 줄어들며 가정에서 장을 담는다는 것은 이제 시골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

▲장익는 마을 장독대 풍경(사진 출처: 아이쿱블로그 랄랄라)
▲장익는 마을 장독대 풍경(사진 출처: 아이쿱블로그 랄랄라)

시중에서 흔히 파는 양조간장은 대부분 100% 콩으로 담지 않는다. 콩에다 보리, 밀가루에 누룩곰팡이를 배양하여 만든 종국을 섞어서 콩고지를 만들어 소금물에 담그는 방법을 쓴다. ?우리의 전통간장은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어 소금물에 담아서 간장을 우려내고(40일 정도) 남은 메주를 가지고 된장을 담았다. 형편이 좋은 양반가나 궁중에서는 간장 담는 메주와 된장 담는 메주를 구분하여 따로 담기도 하였다.

재래식 간장(한식간장)과 개량식 간장(양조간장)은 둘 다 큰 의미의 양조간장에 속한다. 시일이 오래 걸리는 공통점과 담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제대로만 담는다면 둘 다 용도가 다른 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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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양조간장을 만드는 방식이다.

콩이 아닌 탈지대두(gmo콩 문제는 논외로 치자)로 만든 것도 양조간장에 속하며 양조간장이라 불리며 팔리는 대부분 간장이 양조간장이 아닌 아미노산간장이거나 아미노산과 양조간장을 섞은 혼합간장이다.

값싼 탈지대두(수입), 밀 글루텐(수입), 생선가루 등을 원료로 하여 간단한 산분해장치로 단시일(2-3일)에 만들기 때문에 맛이나 향을 내기 위해 화학첨가물이 들어가고 값은 저렴하다. 산분해간장에 부족한 맛과 향기를 보완하기 위해 양조간장을 섞은 것이 혼합간장이다.

예로부터 우리네 간장은 투명하고 옅은 청장(국간장)에서부터 해를 거듭하여 묵힌 진장까지 고루 갖추어 두고 음식에 맞게 골라 사용하였다. 국, 나물 등 단맛이 필요 없는 음식에는 청장(1-2년)을 넣어 음식 고유의 색을 살리면서 담백한 맛을 냈고 구이, 찜, 조림과 약식 같은 진한 빛을 필요로 하는 음식에는 오래 묵혀 단맛을 내는 진장(5년 이상)을 썼다.

▲간장에 핀 꽃, 5년된 간장(고향집 장독대에서)
▲간장에 핀 꽃, 5년 된 간장(고향집 장독대에서)
?▲10년된 간장, 꽃의 색깔이 다르다. 4-5년쯤 되면 진간장이 된다. 짠맛이 순화되고 당도가 강해진다.
?▲10년된 간장, 꽃의 색깔이 다르다. 4~5년쯤 되면 진간장이 된다. 짠맛이 순화되고 당도가 강해진다.

음식의 용도에 맞게 담가두고 쓰던 장은 이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표 간장으로, 된장으로, 고추장으로 가정에서나 음식점에서나 똑같은 장을 사용하게 되며 우리의 입맛을 획일화시키고 있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흔한 말도 무색하게 우리는 장맛에 무심하게 살아왔다.

뭐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도는 알고 먹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상표만이 내가 고르는 장의 척도가 되어왔다. ?마트에는 이름도 휘황찬란한 각종 장들이 소비자를 현혹한다. 햇살을 담았는지 자연을 담았는지 확인할 수도 없는 장들이 감성마케팅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창덕궁 낙선재에서 가장 묵은 장은 순종이 즉위하실 때 담았던 간장이었다 한다. 조청같이 까맣고 달짝지근한 진장이었는데 약식, 전복초같이 검은빛을 내는 데만 아끼고 아껴 사용해 6.25 때까지 남아있었다고 전해진다.

2012년 대한민국 식품대전에서는 450년 묵은 간장이 공개되었는데 적은 양을 배양해 옛 맛을 되살리는데 사용한다 하여 종자장이라 불리는 이 장의 가격이 무려 1억을 웃돌았단다.?기다림의 미학인 우리네 장…가을에 콩을 수확하여 메주를 만들어 한겨울 띄우고 이듬해 봄 길일을 잡아 좋은 소금과 물로 장을 담그고 진짜 햇빛과 바람과 정성의 힘으로만 발효시킨 우리의 장…

현실적으로 장을 담아 먹는다는 건 어렵다. 바람과 햇볕을 쬐게 해줄 공간도 없고 아침저녁으로 항아리 뚜껑 열었다 닫았다 행주로 닦고 할 시간도 없다.?그렇다 해서 많게는 10년까지도 기다려가며 먹었던 장을 2~3일짜리 장맛으로 대체하게 두지는 말자. 자존심도 상하지만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옛말이 부끄럽다. 쫌 가려가며 알고 먹자.

?참고문헌: 『한국인의 장』(한복려,한복진) 교문사

글, 사진_ 손연정(아이쿱 시민기자/하남광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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