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출산율 제로”라는 현실 /이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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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이라는 대재앙이 임박했음에도 아무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드디어 한국의 출산율이 우려하던 제로에 근접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숙의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한국의 출산율이 말 그대로 제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와 예측은 2009년부터 나왔다. 거의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올해 신생아 출생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지고 2022년에 “출산율 제로”에 도달할 것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젊은 세대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에 대한 진단은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은 진단일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젊은 세대의 세계관을 탓하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리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달리 말하자면, 지금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문제에서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국가 입장에서 단기간에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없다면 이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겠지만, 이번 예멘 난민 사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듯이,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자본주의가 덜 발달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너무도 발달한 자본주의가 자기 자신의 최후 기반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목격 중이다.

물론 이런 자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 바로 복지라고 명명하는 사회보장제도이다. 유럽인들이 천성적으로 착해서 복지국가를 만든 것이 아니다. 이들도 일찍이 우리와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합리적으로 세운 것이다. 유럽을 따라하는 수밖에 없는 우리 입장에서 립서비스로나마 ‘복지 강화’를 출산율 저하 문제의 대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게으르긴 하지만, 그나마 정직한 주장이라고 평가할만하다. 물론 이보다 더 최악의 경우는 ‘군기 빠진’ 젊은 세대를 탓하면서 주요 책임을 젊은 여성들의 문제로 몰아가는 입장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고사하고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한 것은 “이대로 가다가 한민족이 없어진다”는 따위의 ‘선동’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출산율 저하의 근본 원인은 다른 무엇이 아닌 한국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에 있기 때문이다. OECD국가라고 자화자찬하면서도 세계 최장을 겨루는 노동시간과 저임금, 그리고 고정 수입만으로 결코 마련할 수 없는 주거 문제는 가정을 이루기 위한 기본적인 물적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설령 부모의 재력을 빌려서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낳아서 기른다는 것은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는 일이기에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다. 신혼부부행복주택을 공급하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발상은 임시약방문일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로 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5일 서울 구로구 오류동 행복주택 단지에서 신혼부부와 청년 주거더책에 대한 발표 행사를 가졌다. [사진=KTV 영상 갈무리]

왜냐하면 결국 그 신혼부부행복주택조차도 일정한 ‘자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이 다름 아닌 이 ‘자격’의 문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흙수저’라는 자조는 이 ‘자격’에 대한 풍자에 다름 아니다. 한때 한국의 평등주의를 상징했던 부동산과 교육이 실질적으로 ‘자격’을 재생산하는 구조로 고착되면서 출산율 저하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어떤 이들이 착각하는 것과 달리 시장은 공평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불평등을 야기하는 장치이다.

상품화는 차별화를 원칙으로 삼는다. 모든 상품은 화폐만 있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평한 대상’이면서 동시에 “당신만을 위해 특별하게 만들어졌다”고 속삭인다. 또한 동일한 상품이라고 해서 다 같은 ‘자격’을 나타내지 않는다. 누구나 돈가스를 사 먹을 수 있지만, 엄연히 분식집에서 파는 돈가스와 일식집에서 파는 돈가스는 다른 것이다. 누구나 돈까스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공평한 것이라 말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순진한 소리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도 ‘좋은 소비자 되기’를 교육받은 요즘 세대에게 너는 일식집 돈가스를 먹을 ‘자격’이 없으니 분식집 돈가스로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이기적인 당사자들은 요즘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이다. 요즘 세대는 부모의 ‘자격’을 갖추지 못할 바에 아예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선제적 배제’를 결행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인간 자본’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자기계발 논리의 폐해라고 할지라도, 결국 이런 세계를 만든 장본인들은 이 현실을 개탄하고 있는 기성세대이다. 젊은 세대가 자유롭게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해서 삶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진 못할망정 ‘내 새끼’만 명문대를 보내고 세계적인 기업에 취업하기만 바라면서 오늘도 노심초사 전월세 올릴 일만 고민하는 기성세대 역시 한국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강화해서 출산율 저하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것이다. 신혼부부행복주택 몇 만호를 지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