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농성장 찾은 권영진 대구시장, “시장 믿고 돌아가 달라”

420장애인연대, “생존권 걸린 문제, 말만 믿고 갈 수 없어”
권영진, “계량적 사인은 어려워...최선 다하지만 협약은 자신 없어”

21:24

“시장으로서 최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태풍도 오는데 여기서 하는 건 일단 중단하시고 나중에 또 항의 할 수 있습니다. 고생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2일 오후 4시 권영진 대구시장은 장애인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15일 째 대구시청 앞에서 농성 중인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420장애인연대) 회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권 시장은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계량적인 약속은 할 수 없다고 밝혔고, 420장애인연대는 진전된 약속이 없는 가운데 농성을 중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2일 오후 4시 대구시청 앞 장애인단체 농성장을 방문한 권영진 대구시장

비가 내리면서 대구시청 1층 로비에서 420장애인연대와 대화를 이어간 권영진 시장은 “실무자들은 빨리빨리 해주자는 것이었는데 제가 하지 않았다. 다른 캠프는 고민 없이 사인했을 것”이라며 “방향은 동의다. 하지만 계량적으로 사인은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권 시장은 “그동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저도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장애인을 위해 최선 다하겠다며 살았다. 그런데 반(反)장애인 낙인은 힘들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니 새로운 마음으로 뵙고 싶다. 그러한 마음을 헤아려 달라. 최선을 다하겠지만 협약은 할 자신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박명애 420장애인연대 상임대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은 믿는다. 그런데 장애인 당사자에게 그 말은 원론적인 말이다. 약속이 없으면 희망이 없다. 협약이 안 된다면 공론화 테이블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고, 권 시장은 “특정 단체나 개인과 공론화 테이블은 만들 수 없다”고 답했다.

▲2일 오후 4시 10분, 대구시청 1층 로비에서 권영진 시장이 장애인 단체 회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1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권 시장은 “태풍이 지나면 다시 (농성) 하더라도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은 철수했다가 날이 좋아지면 해 달라”라며 “저를 좀 믿어달라. 이제는 시장을 믿고 사회적 위치로 돌아가달라. 속 시원하게 요구대로 못해서 미안하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420장애인연대는 태풍이 심할 때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420장애인연대 관계자는 “진전된 게 없다. 발달장애인, 활동보조 정책은 장애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서 시장 말만 믿고 농성을 멈추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일 오후 4시 10분, 대구시청 1층 로비에서 권영진 시장이 장애인 단체 회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420장애인연대는 지난 5월부터 대구시장 후보자들에게 ▲장애인 복지 공공시스템 구축 강화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환경 조성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지원 체계 강화 등을 내용으로 정책 협약을 요구했다. 임대윤, 김형기 후보는 협약을 체결했고, 권 시장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할 수는 없다”며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