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구경북은 독립하라’, ‘답 없는 동네다’, ‘쪽팔린다’ 등 6.13지방선거가 끝나고 결과 관련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타 지역 시민들의 비난도 있었지만, 경북에서 사는 시민들의 자조 섞인 한숨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뉴스민>이 지난 4월부터 경북 13개 시·군을 다니며 만난 시민들은 다양했다. ‘보수’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이들, ‘보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이들도 있었지만, ‘인물’을 강조하거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광역단체장의 정당은 바뀌지 않았지만, 구미에서 첫 민주당 시장이 당선됐고, 광역의원·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로부터 시작된 ‘바람’의 효과도 있었지만,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다.
이번 6.13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경북에서 기초단체장 1명, 광역의원 9명(지역구 7+비례 2), 기초의원 50명(지역구 38+비례 12)이 당선됐다. 기초단체장은 1회 포항시장, 2회 울진군수 이후 처음 당선자를 냈고, 광역의원은 1회 영양군 류상기 도의원 이후 처음 지역구 당선자를 냈다. 비례까지 모두 더하면 민주당은 6번의 선거에서 9명의 광역의원 당선자를 냈는데, 한 번의 선거에서 이만큼 당선자를 낸 것이다.
아래에서부터 변화는 더 크다. 정당공천제가 실시된 4회 선거부터 6회까지 민주당 기초의원 당선자를 모두 더해도 17명(지역구 8+비례 9)에 불과했다. 단 한 번의 선거에서 역대 당선자 수 총합의 3배에 달하는 기초의원을 배출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경북에서도 세대별 정당 지지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경북 전체 평균연령(43.8세)보다 젊은 구미시(36.8세), 칠곡군(39.6세), 경산시(40.1세), 포항시(42세)에서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지역구 광역·기초의원 당선자를 대거 배출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평균연령이 가장 높은 의성군(55.8세)에서도 민주당 도의원, 기초의원 지역구 당선자가 나온 것이다. (관련 기사=경북, 세대별 투표 경향…젊은 구미, 칠곡, 포항, 경산부터 변했다)
<뉴스민>은 지난 20일과 21일 구미와 의성을 찾아 시민들을 만났다.
한국당 김주수 군수에 호감 드러내는 시민들
민주당 도의원 당선자 ‘임미애’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평균연령 55.8세 초고령지역 의성에도 변화의 바람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 신호
“임미애” 의성읍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60대 시민은 “지방선거 결과 때문에 취재 나왔다”는 말을 하자마자 임미애 경북도의원 당선자의 이름을 냉큼 뱉었다. 그는 도착한 버스 앞에서 1분 동안 이야기를 이어갔다.
“임미애, 좋은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이고. (민주당 도의원이 처음 당선됐잖아요.) 그 사람은 민주당 달고 1등 두 번 했어. 원캉 똑똑하니.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했다고 하면 볼 게 어디있노. 앞으로도 잘할 거고, 그 사람 융통성 있고, 책임질 사람이고 약속을 잘 지킬 사람이야. (이야기) 꼭 실어줘.”
이런 답변은 계속 이어졌다. 의성역에서 만난 김상환(67) 씨도 “이번에 의성에서 민주당 도의원이 나왔잖아요”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미애” 이름을 호명하며 “군의원 할 때부터 노인 상대로 많이 도움을 줬어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특정 정당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인물을 보고 잘하면 찍어준다는 이야기였다. 경북민심번역기 취재 초기에는 이런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씨는 임미애 당선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자유한국당으로 재선에 성공한 김주수 의성군수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김 씨의 이야기 속에서 달라진 환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 좋으면 되지, 뜻도 모르면서 빨갱이라고 한다. 예전에 숨어서 독립운동한 사람들을 빨갱이라는데, 적이 봐서는 나쁘지만, 나쁘지도 않다. 이 동네 너무 심하다. 민주당보고도 아직 숨어서 많이 칼(이야기할) 겁니다”
아직 숨어서 많이 이야기할 거라고 단정 지으면서도 김 씨는 ‘빨갱이’라는 말의 부정적인 효과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했다. 취재 내내 ‘얼굴은 나오면 안 된다’, ‘나도 들은 이야기’라면서 수줍음을 드러내면서 뱉어낸 이야기였다. 여전히 경북도민을 ‘보수’라는 테두리에 묶으려 한다면 이제는 더불어민주당도 그 테두리 안에서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는 듯 보였다.
의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신성영(62) 씨는 “이번에 민주당 찍었다. 서로 경쟁하는 게 좋다”고 말했고, 김주수 현 군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김희숙(60) 씨도 “촌 어르신 할매들도요, 할매 할아버지도 많이 바뀌어 갑니다. 이제 민주당으로 많이 변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평균연령이 높은 도시답게 21일 의성읍에서 만난 의성군민 10여 명은 모두 60세를 넘겼다. 경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던 중소도시 3~50대 시민들과 달리 이들은 ‘경제’ 분야를 선택지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신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한 이정표였다. 민주당에 대한 문호가 열린 것도, 문재인 정부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도 ‘남북 관계’에 있었다.
의성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이모(72) 씨는 “임미애가 똑똑해서 찍어줬다”고 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잘하고 있잖아요. 대통령이 통일할라 카지요, 모든 걸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던 이 씨는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이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성으로 봐서는 좀 불쌍한데요. 너무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아이들 거기 물에 빠졌는데 어디 가시고 없었지, 그게 어지간히 안 됐어요”라고 말했다.
김희숙 씨도 “남북 간에 대화하고 통일 그런 걸 계기로 해서 어르신들이 좀 좋다고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반응이 괜찮죠. 한국당 군수도 잘하고 계시고요”라고 말했다.
경북에서 가장 젊은 도시, ‘박정희’ 상징으로 과다 대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지금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 투자해야”
‘경제’ 문제 해결을 빼놓지 않는 구미시민들
보수정당 지지하지만, 바뀐 구미시장에 대한 기대감
첫 민주당 시장이 나온 구미는 경북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이번 선거에서 기초의원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자유한국당을 앞지르기까지 했다. ‘박정희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보수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실제 구미는 앞선 선거들에서도 변화의 선두에 있었던 도시였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구미시 양포동, 진미동, 공단2동 등 세 곳은 문재인 대통령이 득표율 1위를 기록한 지역이었다. 양포동 29.9세, 진미동 31.2세, 공단2동 31.6세로 구미 평균보다도 젊은 지역이었다. 2016년 총선에서 경북 구미시갑에 출마한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는 득표율 38.08%를 받기도 했다. 당시 선거는 새누리당 백승주 당선자(61.91%)와 1:1로 치러졌다.
구미에서 만난 시민들은 ‘경제’를 빼놓지 않았다. 한국당 대신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 가운데 첫 번째도 경제였다.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임 남유진 구미시장이 추진한 박정희 관련 사업이 구미를 과대 대표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구미역 앞에서 대기하던 익명을 요청한 택시기사는 “구미 경제가 말이 아니라서 실망해서 그런 것 같다. 구미의 침체기가 오래되면서 유권자들 선택이 그렇게 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고, 구미중앙시장 앞 상인 50대 박모 씨는 “옛날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보니까 구미도 한 번 바뀌어야 한다고 그래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구미새마을중앙시장 안에서 만난 또 다른 박모(37) 씨도 “(한국당이) 너무 못해서 대기업들이 많이 나갔잖아요. 대선 때부터 색깔을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구미역 대합실에서 만난 김모(39) 씨는 “구미가 욕먹는 부분이 박정희 생가가 있다 보니까, 구미 세금이 다 거기로 들어가잖아요. 그 부분은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구미 발전을 생각한다면 지금 여기에 투자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사실 경제지표인 GRDP(지역내총생산)로만 보면 구미 경제는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구미시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1인당 총생산액이 매년 증가했다. 2012년 1인당 총생산액은 약 6천3백만 원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구미시민들의 말은 으레 하는 이야기일까.
한국산업관리공단에 따르면 구미국가산업단지 내 업체 수는 2004년 625개사에서 2009년 1,003개사로 늘었다. 여기에다 외국계 업체도 10개사가 가동 중이지만, 고용인원은 줄었다. 2004년 7만7천 명에서 2009년 6만8천 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2016년 4분기 기준으로는 가동업체가 1,890개사로 2004년보다 3배가량 늘어났지만, 고용인원은 9만1천9백9십5명에 그쳤다. 300인 이상 고용하는 회사가 직접 고용을 유지하던 방식에서 ‘협력업체’라는 포장을 씌운 인력파견업체 또는 하청업체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2014년 하반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고용노동통계조사 현황에 따르면 구미시의 청년층(15~29) 취업비중은 19.2%로 155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다. 반대로 구미시는 고령층(55세 이상) 취업자 비중이 16%로 155개 시·군 가운데 5번째 낮다. 일자리를 찾아서 구미에 왔지만, 50대가 되면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앞서 구미역 대합실에서 만난 김 씨도 일자리 때문에 구미에 와서 남편을 만났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서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김 씨는 “새로운 사람이 구미를 좀 바꿨으면 좋겠다. 젊고 아기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그 부분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에 대한 불만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정당에 대한 실망감을 더 크게 만들었고, 이는 다른 정당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구미중앙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정의호(40) 씨는 “자영업을 하고 있어서 솔직히 투표를 못했다. 저도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는데 박근혜 정부가 실망감을 많이 줘서 그 이후로는 투표를 안 했다”면서 “그래도 바뀌었으니까 기대가 많다. 구미경제가 살아나려면 자영업자도 직접 만나면서 시장조사를 제대로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미중앙시장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권예자(58) 씨는 보수정당의 현 상태에 대해 애정어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때까지 보수가 됐으니까, 당연히 보수가 되겠지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젊은 층이 그쪽을 지지하니까 현실로 받아들여야지. 정말 민주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보수 쪽에서 많이 부족했으니까. 다 뭉쳐가지고 옛날처럼 당내에서 다른 소리 나지 않고 그래 잘하는 게 우리 바람이지요. 집권하고 안 하고 떠나서 보수는 보수대로 뭉쳐가지고 자기 목소리 낼 줄 알고 그래야지.”
20대는 경제에도 민감했지만, ‘교육’문제에 관심을 드러냈다. 구미역 앞에서 만난 김동연(21) 씨는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뽑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씨는 “일자리 문제를 푸는 방식이 달라지면 좋겠다. 시장 선거도 그랬지만, 입시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교육감 선거에 관심이 많아서 정책을 자세히 살펴보고 뽑았다”고 말했다. 역시 구미역에서 만난 익명을 요구한 20살 시민도 “새롭게 당선된 시장이 학생들한테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미, 의성=뉴스민 경북민심번역기 특별취재팀]
영상: 박중엽 기자, 김서현 공공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취재: 김규현 기자, 천용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