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났다. 아침마다 잠을 깨우던 유세 음악도 사라졌다. 길거리에 울긋불긋 휘황찬란하게 붙어 있던 선거 현수막도 반 정도 되는 당선사례 현수막으로 급감했다.
투표율은 지방선거 실시 이후 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높은 투표율의 원인과 영향에 대해서 논의 중이기도 하다. 60% 정도의 투표율이 과연 높은 투표율일까를 생각해본다. 쉽게 말하자면 2명 중 1명 정도가 투표했다는 소리다. 분명히 나는 줄까지 서가면서 투표했는데도 대한민국 유권자의 반절 정도는 투표하지 않은 셈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투표를 마치고 투표장 옆 놀이터에서 아이의 친구 엄마 몇을 우연히 만났다. 당연히 투표를 마쳤거나, 투표하러 가는 길일 것이라 생각하고 ‘투표했니?’라고 물었다. 거기 모인 세 명의 엄마들은 투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투표를 안 하겠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누군지 모르겠다’, ‘귀찮다’가 이유였다. 바로 옆, 걸어서 스무 걸음쯤 가면 투표소가 있고, 가는 길 담벼락에 후보자들 포스터가 총 천연칼라로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너희들이 오늘 행사하지 않은 그 권리는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얻어낸 권리야. 프랑스의 ‘올랭드구즈’라는 여성은 단두대에 목이 잘리면서도 참정권을 요구했으며, 영국의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여성은 달리는 말에 몸을 던지기도 했어. 그러므로 너희들은 모르는 소리 말고 당장 가서 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라고 간절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아이 친구 엄마들을 앉혀 놓고 동네 놀이터에서 진행할 언사는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벽보를 한 번 보고 가서 투표하고 오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말았다.
그 일 이후 시민들의 참정권 인식을 고민해보았다. 사실 그 어떠한 권리든지 거저 얻어진 것은 없다.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기억된다. 신분으로부터의 자유 역시 고려시대 망이·망소이의 난, 동학농민운동 등의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는 치열한 투쟁과 희생의 결과물이었다.
대한민국의 참정권은 1948년에 정부 수립과 동시에 남녀 모두에게 보장된다. 당시 국내적으로 독립운동 자체가 권리획득의 투쟁이었고, 그 안에는 참정권도 포함하는 것이기에 자구적인 노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기 세계적인 참정권 투쟁 역사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참정권은 해방과 동시에 어쩌면 선물처럼 부과된 느낌이 없지 않다.
1789년에 신분제로부터의 자유, 즉 귀족이라는 천부적인 신분이 아니더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했고, 이를 명문화하는 인권선언문이 발표된다. 그 이후 부르주아 남성에 한정되어 있던 참정권은 남성 노동자들로 확대됐고, 노예해방과 더불어 흑인에게도 보장됐다. 혁명 역시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격렬한 투쟁에 의해 이루어졌고, 흑인해방 역시 수많은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이다.
여성의 참정권은 그리고 나서도 훨씬 이후인 1920년대부터 서서히 보장되기 시작했다. 인권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대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프랑스에서조차 1944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그 참정권을 얻기 위해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여성들은 단두대에 오르고, 말에 몸을 던지고, 수많은 차별과 혐오를 극복했어야 했다.
참정권이 뭐라고 이렇게 애를 써가며 획득하려고 했느냐고 질문한다면, 참정권은 나머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대답할 수 있다. 즉, 참정권을 누릴 수 있는 계층이 유산계급남성, 남성 노동자, 흑인 남성, 여성의 순으로 확대되어 왔다는 것은 인권을 온전히 주장하고 누릴 수 있는 계층의 순서와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원회에 따르면 유권자 한 명이 행사하는 투표의 파생가치는 2,891만 원이라고 한다. 경제논리를 떠나서라도 참정권 획득을 위한 과정과 참정권 행사로 인해 보장할 수 있는 권리들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인권의 가장 중요한 영역임은 분명할 것이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이 한 말을 인용해본다.
“권리 없이는 생명과 재산의 보호도 없다” 즉,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