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특별하지 않은 아이었던 나는 학창시절 ‘장’자리와 크게 인연이 없었다. 반장은 ‘엄친아’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운동회 차전놀이의 맨 꼭대기 자리에서 고삐를 잡고 지휘하는 전교학생회장과 부회장의 위용과 아우라는 정말 대단했다. 밑에서 낑낑대며 나무 기둥을 들쳐 맨 채 올려다본 그 자리는 결코 오르지 못할 산이었다. 그들은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했다. 집도 잘 살고 심지어 얼굴도 잘생겼다. 어떻게 그런 캐릭터가 있을 수 있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어린 나의 동경어린 시선이 만든 착각과 과장도 섞여 있다. 하지만 사실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엄친아’는 늘 존재했다. ‘엄친딸’도 있었지만 유리천정에 가로막혀 학급임원은 사실상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줄반장 몇 번을 해본 것이 전부인 나에게도 가뭄에 콩 나듯 몇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첫 번째는 6학년 2학기 반장 선거. 나는 남자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기세등등 출마를 선언했다. 구도는 남자 대 여자의 일대일 구도. 한 반에 50여 명의 학생, 그중 남자가 두세 명 정도 많았기에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실 모든 선거는 구도가 전부라 할 수 있다. 남자는 남자를 찍고, 여자는 여자를 찍는다. 이른바 ‘묻지마 투표’다. 당연히 남자를 대표해서 출마한 나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다.
선생님은 그런 결과가 우려되었는지 투표 직전까지 남자라고 해서 남자를 찍지 마라 누누이 강조했다. 그리고 내심, 아니 대놓고 여자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아이의 아빠는 학교 육성회장이었다. 우리 반에서 단연 돋보이는 아이. 방이 몇 개나 있는 좋은 아파트에 산다는 그 아이는 항상 예쁜 차림을 하고, 좋은 것을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선생님의 기대와는 달리 ‘바를 정’자 획수는 정확히 남자 대 여자로 나뉘었고 남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나는 영광스런 6학년 2학기 반장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당선의 기쁨도 잠시. 반장 생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혼이 나고 무시를 당했다. 선생님은 2학기 내내 싫은 기색이 역력했고 반장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엄마가 인사를 오는 것도 관례처럼 이어온 운동회 때 반장 집에서 준비한 선생님 도시락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어렴풋이 우리 집이 돈이 별로 없어 싫어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우연히 6학년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은 나의 등수를 물었다. 몇 등이라 대답을 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심한 듯 쳐다보고는 사라졌다. 난 지금도 그 선생님의 이름도 얼굴도, 말과 행동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남중에 진학하니 초등학교와는 다른 시무시한 ‘정글의 세계’가 펼쳐졌다. 출신 학교별로 패를 나눠 무리를 짓고 일진다툼에 열을 올렸다. 싸움과 공부를 적당히 했던 나는 1학년 선거에서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들의 몰표로 학급 실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딱히 뭔가를 한 기억은 없지만 수업시간 시작과 끝마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를 하고 떠든 사람 이름도 칠판에 썼다. 그리고 1학기가 마무리될 즈음 담임선생님이 날 불렀다. 학급 실장은 모범적이고 공부를 잘해야 하는데 성적이 신통치 않다며 사퇴를 권유했다. 영수학원을 다니면서 공부에 집중하라 했고 실장은 좀 더 성적이 괜찮은 사람이 하는 것이 좋겠다 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선생님의 뜻이 그렇다 하니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차별과 사퇴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반장의 추억은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다.
이후 집이 잘살지도,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던 나는 학교와 학급을 대표하겠다고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고 기회도 없었다. 반장은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을 선생님이 임명하는 자리에 불과했다. 공약과 소통은 꿈도 꾸기 힘들었고 반장 자리는 학생들을 통제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래야 하는 줄 알고 그게 당연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학교 앞에서 직접 만든 피켓도 들고, 공약도 내거는 것을 보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여전히 공부를 잘하고, 집에 돈이 많은 특별한 아이들만 독차지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사실 누구도 특별하지 않은 아이는 없는데 말이다.
어른들의 선거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유명 정치인의 사진을 내걸고 (사실 얼마나 친한지도 모르겠다.) 그 친분과 권위에 기대어 지지를 호소한다. 돈이 많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자랑하면서 특별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같은 학교와 고향을 출신임을 내세우고 특정 정당의 후보이면 여전히 ‘묻지마 투표’를 던진다. 너도나도 일 잘하고 실력 있다고 외쳐대지만 그들은 과연 유권자와 소통을 하고 있을까 중앙 정치판에 줄을 서고 있을까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이제 곧 동네일꾼을 뽑는다는 선거가 코앞이다. 집에 오니 두툼한 선거 공보물 봉투가 우편함에 꽂혀 있다. 뜯어 펼치니 묵직한 공보물 뭉치가 후드득 쏟아진다. 많아도 너무 많다. 도대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아내가 묻는다. “혹시 강OO 있어?” 혹시 지지라도 하는가 싶어 찾아서 보여줬다. 열을 내서 말한다. “그 사람 절대 안 찍으려고. 낮에 애 재우는데 얼마나 시끄럽게 음악을 틀고 다니는지 짜증나 죽을 뻔했어.” 그렇게 공보물은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재활용 분리수거장에는 공보물이 잔뜩 쌓여있다. 한번을 읽어봤을까? 결국 유권자 다수에게는 소음과 쓰레기에 불과한 냉정한 선거현실이다.
정말 동네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고 싶다면 차전놀이 맨 꼭대기에서 지휘하는 사람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밑에서 낑낑대며 나무기둥을 매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줄 사람,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한 표를 던졌으면 좋겠다. 절대 특별한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선거도 어른들의 선거도 변해야 한다. 아이들이 수많은 포스터 중에 누구를 찍을 것인지, 왜 그런지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다. 적어도 그 물음에 얼버무리지 말고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그런 선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