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 배지를 맞추는데 6천만 원의 예산을 책정한 곳이 있다. 한우 식당에 2억 원을 쓴 기초의회도 있다. 체력단련실을 만들겠다며 2천만 원이 넘는 집기를 사기도 하고, 의정 홍보를 하겠다며 영상장비를 4천만 원 주고 마련한 곳도 있다. 얼마 전 중앙일보의 ‘우리 동네 의회 살림’이라는 콘텐츠에는 이 같은 기초의회의 예산 운영 실태를 보고 분개한 사람들이 단 댓글이 달려있다. 내가 사는 곳의 기초의회는 다른 건 둘째치고 조례 발의 비율이 14%밖에 되지 않았다.
누가 작정하고 ‘털어’주지 않는 이상, 이처럼 기초의회에서 예산을 어떻게 쓰고 무슨 조례를 제정했는지 시민 개개인이 알기는 상당히 힘들다. 나만 해도 당장 하루에 17개의 동, 3개의 구를 넘나들며 공부를 하러 다닌다. 집에서는 대개 잠만 자고 밥은 먹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우리 동네’라고 부르고 있지만, 정말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동네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기초의회가 어떤 조례로 이 동네의 생활을 바꿔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는 우리 동네의 모습은 버스 창밖으로 지나는 풍경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권은 점점 넓어져 동네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두 번째 해보는 지방선거에서 2차로 받게 될 네 장의 용지가 애물단지처럼 느껴진다. 누굴 뽑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신이 없는 동안 동네에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고 알려주는 후보도 없다. 뽑힌 사람이 동네를 눈에 띄게 바꿀만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침마다 지나는 길거리에 홍보용 트럭이 들어서고, 옷 색깔만 다른 선거유세원들이 내게 손을 흔든다. 공약도 거기서 거기다. 복지 전문가, 유서 깊은 동네 출신, 도서관 건립. 어떤 것도 매력적이지 않다. 누굴 뽑아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잘하려고 마음먹으면 광역단체장 선거 운동보다 하기 힘든 것이 기초의원 선거 운동이다. 기초의회가 단체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단체장에게 권한이 집중되어있는 현실에서 기초의회가 단체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 이같은 상황에서 유권자의 생활권 광역화로 특정한 동네 이슈를 잡기란 무척이나 힘든 일이고, 동네 문제에만 천착하자니 ‘과연 표심을 끌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뽑히고 보자’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다. 쉽게 가려면 얼마든지 쉽게 갈 수 있는 선거다. 광역단체장 공약에 묻어가거나 인맥을 내세우고, 적당히 보편적인 호감을 살만한 이슈를 잡은 뒤 이름만 알리면 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본 후보들은 모두 가지 않은 길 보다는 가기 쉬운 길을 선택한 것 같다. 지방선거는 지방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고민하는 선거인데, 동네 이슈는 공중에 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다들 동네 토박이임을 강조하고, 아무런 공약도 없이 그저 도서관을 짓겠다고만 말한다. 기초의회의 생명력을 기초의원들이 깎아 먹고 있다. ‘우리 동네 의회 살림’에는 ‘구의원이 진짜 필요한지 모르겠다. 이래서 다들 기를 쓰고 한자리하려고 하는구나’라는 댓글도 더러 있었다. 선거 때마다 후보를 알아보려는 유권자들의 노력도 이어지지만, 지금까지 기초의회가 무엇을 해왔는지 알고 회의감을 가지는 유권자들도 적지 않다.
이번 선거는 그래도 ‘어떤 후보가 좋을까’라는 고민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다음에도 여전히 배지에 예산 6천만 원을 들이고, 한우 식당에서 2억을 쓰는데 조례율은 20%가 되지 않는다면 다음 지방선거 의제는 어쩌면 ‘기초의회 필요한가’가 될지도 모른다. 동네 문제에 천착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당선만 되고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회기를 마감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대로는 ‘지방정부에 자주조직권을 부여하고 자치행정권과 자치입법권을 강화하며 자치재정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아무리 개헌안에 포함돼도 지방자치의 가치를 살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우리 동네 문제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이를 고치기 위해서 뛰겠다는 후보를 찾고 있다.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