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정농단의 한 축이었던 대구 노사평화의 전당 /이태광

18:29

확산되는 반대 목소리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에 대한 대구시의 사업추진 세부계획이 공개되면서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 이유는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의 정보공개청구로 3월 23일 공개된 세부계획서가 ‘붉은 조끼·머리띠 추방’, ‘강성노조·분규 걱정없는 경제·노동 생태계 조성’과 같은 노동자투쟁을 부정하는 폭력적 용어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조성된 ‘분규·고임금 걱정없는 생태계’를 ‘대구형 노사상생 모델’로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거점으로 노사평화의 전당을 건립한다고 하니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전국적으로 가장 열악한, 장시간·저임금 상태에 있는 대구 노동자들에게 조끼와 머리띠를 추방하고 투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한심하다. 2017년 4월 기준으로 월 노동일수(21.2일)와 노동시간(178.3시간)은 전국에서 3번째와 5번째로 높지만, 월급여액은 제주를 제외하면 전국 꼴찌인 대구 노동자들은 이미 투쟁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있다. 더구나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열악한 노동조건과 빈곤이 마치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인 양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대구시의 진단과 처방은 본말이 전도된 왜곡된 주장으로 대구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대구시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 사업추진 세부계획’ 일부

왜곡으로 일관하고 있는 대구시

이런 비판과 분노를 두고 김연창 대구부시장은 1월 9일 신문 기고에서 ‘편협한 시각에 의한 비판’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진정 편협한 시각은 바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는 시작부터 불평등한 사회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원초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고 지금도 소득 상위 10%가 전국민소득의 절반 가까이 점유하고 있기에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현실을 알지 못하고, 이런 불평등에 맞서서 인간 특히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저항하고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마도 1,700만 명의 민중이 궐기한 촛불혁명이 불평등에 반발하는 저항투쟁이었다는 현실 인식도 없을 수 있다. 어쩌면 촛불혁명으로 외국 자본 유치하는데 어려워졌다고 혀를 차고 있지나 않을까?

착취와 수탈로 인한 극심한 불평등, 그것을 기본 원리로 내장하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기만적인 보완책으로 노동자들이 단결·교섭·투쟁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은 기본상식이다. 그러므로 대구시가 추진하는 노사평화의 전당은 그 설립 취지에서 이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 3권을 부정하고 있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더구나 법을 지키는 업무에 종사하는 행정관청의 고위관료들이 이런 탈법적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대구시와 고위관료들이 대구를 저임금과 무분규의 도시로 포장해서 상품화하려고 한 점이다. 장기간에 걸친 전국 최하위 수준의 삶의 질에 대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저임금과 빈곤을 도시의 상징으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홍보하겠다는 몰염치가 놀랍다. 거기다 민주노조를 배제한 채 자본가의 도구로 전락한 어용노조를 끌어들여 노사정대타협으로 포장하고 인위적으로 저임금-무분규 상태를 조성하여 이를 상품으로 만들려는 뻔뻔함이 가증스럽다. 이는 비정규직 많이 늘려서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박근혜 정권의 뻔뻔함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이들에게서 공히 느껴지는 몰염치와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더 황당한 것은 김 부시장의 발언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김 부시장은 “지난 30년 동안 다른 지역의 강성과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과는 달리 대구만큼은 생산성 기반의 상생과 화합을 앞세운 평화의 노동운동을 해 왔다‘고 하는데 어디서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거짓이다. 대구지역 노동자들은 87년 대파업투쟁을 비롯하여 지난 30년간 다른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강고하게 투쟁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것은 창조컨설팅을 앞세운 자본의 노조파괴공작에 맞선 영남대의료원, 상신브레이크 등의 장기간 노동자투쟁에서도 충분히 확인되었다.

아마도 그는 시도별 노사분규의 건수를 비교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최근 10년간(2006~2016)의 시도별 노사분규 총건수를 보면 대구는 46건으로 전체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열 번째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대구만’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어떤 근거도 없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독특한 대구형 노사문화’라고 치켜세울 명분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대구시는 2017년에 와서 6건의 분규가 발생하여 여섯 번째로 순위가 급상승하였는데 이 사실은 노사대타협에 의한 무분규가 ‘독특한 대구형 노사문화’라는 그의 주장을 여지없이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3년(2013~2015) 연속 노사정 대타협 대통령상’을 받고 노사평화의전당 건립을 추진한 결과 ‘대구형 평화의 노동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노사분규가 급증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이처럼 거짓된 주장들에 의해 추진되어왔던 전당 건립은 현실과도 동떨어진 것으로 드러나 명백히 그 존립 근거를 상실했기 때문에 당연히 백지화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200억 원이라는 노동자들이 세금으로 낸 거금을 거짓의 전당을 세우는데 사용한다는 것은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노동개악의 도구였던 전당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의 기초가 된 대구 무분규 노사정대타협 선언이 2014년 9월 15일 박근혜-삼성 이재용이 참석하여 1차 독대한, 국정농단의 시초로 논란이 되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과 같이 맞물려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의 창조경제- 삼성의 무노조경영- 대구시의 노사정 무분규대타협 선언이 하나로 엮어졌다. 그리고 9월 26일 대구가 아닌 서울에서 대구 노사정 대타협 선포식이 열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이기권 전 노동부 장관은 이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모델로 삼겠다고 발언하였다.

그 이후 박 정권은 12월 30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노동개악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총력전에 돌입하였다. 9월 5일 노동시장 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3개월 만의 일이다. 그리고 2015년부터 노동개악을 위한 노사정대타협에 대한 정권의 압박이 전방위로 펼쳐진 맥락 속에서 볼 때 대구 무분규노사정대타협은 박 정권에 의해서 노동개악의 도구로 활용되었거나 기획되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일 그렇다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타 개소식은 박 정권이 삼성재벌과 손잡고 대구시를 들러리 세워 독점자본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노동개악에 대한 전면전을 약속하는 동맹을 굳건히 하는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사진=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국정농단의 한 축이었던 전당

그러나 대구노사정대타협 선언을 좀 더 넓게 보면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2014년 8월 30일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다. 그리고 9월에 이 모든 일이 총체적으로 일어난다. 추정하자면 세월호 참사로부터 국면전환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 박 정권은 국조위 활동이 끝나는 9월을 변곡점으로 설정하고 이완된 권력을 추스르기 위해 독점재벌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였는데 그 고리가 노사정대타협을 통한 노동개악이었고 그 출발지점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타 개소식이었다.

▲2014년 대구시와 한국노총 간 노사정 평화 대타협 선포식

삼성은 그해 5월 이건희 회장의 건강상태 악화로 인한 후계승계 작업에 국민연금을 움직이는 등 권력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노동개악을 고리로 한 정치권력과 독점자본의 동맹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틀 속에서 각각의 재벌들은 그 동맹의 일반적 대가를 넘어서 구체적인 개별적 요구를 제기하고 박근혜는 뇌물을 받는 식으로 구체적인 유착이 발생하였다. 그러므로 대구 노사정대타협과 그에 기초하여 2015년 9월 박근혜에게 제안된 노사평화의 전당은 박근혜-독점재벌의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기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자체가 국정농단 패키지의 한 축이었다.

그러므로 노사평화의 전당은 좁게 보면 노동개악의 도구이며 넓게 보면 박근혜 정권-독점재벌의 국정농단의 도구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전당을 둘러싼 사태는 대구시의 반노동자적인 인식이 불러온 문제를 넘어 독재권력과 독점재벌이 작당해서 만들었던 국정농단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느 모로 보나 노사평화의 전당 건립계획은 폐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