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시적 여정] (23)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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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 시인이 연재하는 ‘김수영의 시적 여정’은 매달 5일, 20일 뉴스민에 연재한다. 인용된 작품의 전문 수록은 저작권자와의 협의를 마쳤습니다.]

1963년 즈음부터 김수영은 자신의 시적 인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존 문제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성찰, 나아가 존재론적 문제까지 김수영의 시적 인식은 전방위적이고 동시에 전위적이었다. 형식에 있어서도 자기풍자나 고발에 머물지 않고 위트와 유머까지 포함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뿌리」는 본인이 직접 밝힌 대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책을 읽고 받은 영감으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2018년 봄에 나온 이영준이 엮은 전집의 재개정판에는 이와 관련된 산문이 발굴·수록되었는데 「내실에 감금된 애욕의 탄식-여성의 욕망과 그 한국적 비극」이 그것이다. 이 산문에서 김수영은 “버드 비숍이라는 영국 여자의 『한국과 그 인방(隣邦)』”을 읽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그다음 문장인데, “이 저자는 1893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전국의 방방곡곡을 답사하고 외국 여자로서는 최초의 방대한 한국 기행문을 남겨놓았는데 어떤 대목은 우리들이 뻔히 알고 있는 일이면서도 포복절도할 지경의 재미있는 데가 많다”고 적었다.

이 짧은 독후감과 「거대한 뿌리」는 그 정조가 전혀 다르다. 산문에서는 『한국과 그 인방(隣邦)』을 읽으며 도리어 세태 비평을 하고 있는 셈인데 시에서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문에서 밝힌 어떤 것이 시에 투영되어 있다면 그것은 유머이다. 그런데 그 유머는 단순한 해학이 아니다. 웃음으로 어두운 현실을 뒤집고 있다는 점이 「거대한 뿌리」의 특징이다. 그것은 4연의 거침없는 욕설과 과거에 대한 긍정은 “단정적 선언의 돌연함과 공소함”1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시는 본질적으로 시인의 다른 페르소나가 사건을 해석, 표현하면서 “단정적 선언”이 충분히 가능한 장르이다. 따라서 “단정적 선언”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단정적 선언”이 독자에게 어떤 변이를 가져오느냐에 있고, 만일 그 변이가 유의미하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단절된 시간을 통해 존재하는 현재, 그래서 “썩어 빠진 대한민국”에 대한 비판이며 근대와 진보란 이름으로 서둘러 매장해버린 “더러운 역사”와 “더러운 전통”에 대한 긍정이다. 산문 「내실에 감금된 애욕의 탄식-여성의 욕망과 그 한국적 비극」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김수영에게 196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는 끔찍한 획일화와 통속화로 빠져들고 있는 사회였다. 그런데 이런 근대 문명에 대한 인식은 집중적이고 수미일관하지는 않지만 1960년대 중반 즈음에 들어와 김수영이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던 문제이기도 했다.

따라서 「거대한 뿌리」에서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도 “통일도 중립”도, 그러니까 그 당시에서 봤을 때는 상당히 앞선 시대정신들도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김수영 특유의 시간관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라고 해서 그가 과거를 단순히 ‘상기’하고 있다고 읽는 것은 큰 착오이다.

‘상기’는 단지 회고이며, 회고는 과거를 특권화해 현재를 누추하게만 할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거대한 뿌리」는 시종 “쨍쨍 울리는” 리듬과 속도로 짜여 있고, 과거를 특권화해 현재를 누추하게 한다기보다 현재에 잠재된 시간으로서의 과거를 활성화해 시 전체에 그러니까 현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물론 과거의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반어일 뿐이다.

“더러운 역사”, “더러운 진창”은 대한민국의 근대가 과거를 능멸하는 수사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에 편승하는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김수영은 대한민국 근대의 본체가 일본제국주의와 미국의 식민지와 신식민지 지배체제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들어라 양키들아―쿠바의 소리」라는 산문을 보라!)

「거대한 뿌리」는 ‘드디어’ 나타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혁명 이전에 그가 그렇게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근대가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뭉개고 등장한 것이며, 근대의 희생자는 바로 민중이란 인식이 예리하고 또 통렬하게 표현되어 있다. 근대라는 시간이 “더러운 역사” “더러운 전통”이라 부르는 존재들은 바로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같은 것들이다.

김수영은 근대가 창안한 과거를 폄훼하는 언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근대에 그것들을 되돌려주고 있는 방식을 취한다. 사실 이런 방식 자체가 하나의 익살이다. 「거대한 뿌리」에 유머가 있다고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였다. 2연에서 제시한 그 당시의 상황의 복기도 그렇지만 4연의 전무후무한 욕설도 익살맞기는 마찬가지이다. 만일 여기에 익살이 없었다면 우리는 도리어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들뢰즈는 “익살의 모험”은 “표면을 위한 심층과 상층의 이중적 파기, 이것은 우선 스토아적 현자의 모험이지만 그 후 그리고 다른 맥락에서는 선(禪)의 모험이기도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유명한 화두, 선문답, ‘공안’(公案)은 기호 작용들의 부조리함을 증명하며 지시 작용들의 무의미를 가리킨다”2고 덧붙였다. 「거대한 뿌리」에서 근대가 개발한 “기호 작용들”과 “지시 작용들”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하게 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맥락에서 「거대한 뿌리」는 김수영 시의 후반기를 여는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느닷없이 튀어나온 작품인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앞에 「반달」과 「죄와 벌」을 놓는 입장인데, 세 작품이 별개의 작품인 것은 맞지만 김수영은 눈도 꿈쩍하지 않고 이런 작품을 쓸 정도의 강자가 되어가고 있었단 의미에서 그렇다. 따라서 「거대한 뿌리」 1연에서 김병욱더러 “일본대학에 다니면서 4년 동안을 제철회사에서/ 노동을 한 강자(强者)다”고 한 말은 우회적인 자기 암시일 수도 있다. 약자는 강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강자만 강자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온갖 소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속물화와도 싸워야 했고 거짓과 허위와도 싸워야 했다. 생계 수단으로 시작한 양계는 도리어 “원고료를 다 쓸어 넣어도 나오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이참에 토끼를 키워봐야 하나 생활의 고민도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김수영은 이런저런 고생에 대해서 섣부른 불만이나 부정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도리어 “그렇지만 나는 양계를 통해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경험했습니다”3고 말할 수 있었고, 자신은 “무슨 일이든 얼마가 남느냐보다 얼마나 힘이 드느냐를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있”4다고 말할 줄도 알게 되었다. 또 「장마 풍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발언을 한다.

‘사람은 바빠야 한다.’는 철학을 나는 범속한 철학이라고 보지 않는다. 풍경을 볼 때도 바쁘게 보는 풍경이 좋다. 일을 하다가 잠깐 쉬는 동안에 보는 풍경. 그리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풍경. 다시 말하자면 그것은 일을 하면서 보는 풍경인 동시에 풍경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수양버들이 늘어진 연못가의 기름진 푸른 잔디 그늘에서 피크닉을 나온 부인이 부지런히 뜨개질을 하고 있는 영화의 장면 같은 것은 나에게는 평범한 풍경이면서도 결코 평범한 풍경이 아니다.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풍경을 사는 것은 더 좋다.5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삶에 대한 그의 건강함이다. 아마도 이런 건강함이 「거위 소리」를 쓰게 하고 1966년 작 「눈」을 쓰게 했을 것이다. 「거위 소리」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거위의 울음소리는
밤에도 여자의 호마색 원피스를 바람에 나부끼게 하고
강물이 흐르게 하고
꽃이 피게 하고
웃는 얼굴을 더 웃게 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한다

“거위의 울음소리”와 맞물리는 생활의 분주함에서 사물의 운동과 변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긍정이 피어오른다. 이 작품은 길게 설명할 것도 그것을 간명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표면상으로는 “거위의 울음소리”가 ‘나부끼다’ ‘흐르다’ ‘꽃피다’ ‘더 웃다’의 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행에 표현된 각 사건들은 그물처럼 관계 맺고 있다. 그것이 심지어 죽음까지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1. 강연호, 「‘위대한 소재(所在)’와 사랑의 발견」, 『살아있는 김수영』(김명인·임홍배 엮음, 창비, 2005)
  2. 『의미의 논리』(이정우 역, 한길사, 1999) 242쪽.
  3. 이상 「양계 변명」, 『김수영 전집2-산문』
  4. 「토끼」, 『김수영 전집2-산문』
  5. 『김수영 전집2-산문』 123~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