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았던 24일 오전 10시, 대구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안은 여전히 어둑어둑했다. 점심 먹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칼국수나 수제비를 먹는 사람들로 입구는 북적거렸다. 시장 곳곳에는 ‘추석맞이 그랜드 세일’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는 26일부터 나흘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문시장은 더욱 북적여 보였다. 최근 문을 연 (쌀로 만들어 밀가루 냄새가 안 난다는) 어묵 가게 직원은 지나는 사람들에게 어묵 꼬지를 나눠주며 호객행위를 했고, 줄줄이 늘어선 칼국수 가게 사장님들도 서로 자기 가게로 오라며 손짓했다.
시장이 이렇게 북적이는데도 걱정이 느는 상인들이 있다. 17년째 서문시장에서 과일 소매상을 하는 김보영(가명, 49세) 씨는 “대목이니깐 확실히 사람이 많이 다닌다. 그래도 장사는 옛날만 못 하다”고 푸념했다.
김 씨는 “요즘 경기도 경기지만 경기 회복되는 거랑 상관없다. 이제 사람들 문화가 달라져서, 명절이라고 많이 해 놓고 손주, 며느리 나눠주고 이런 문화가 아니잖아. 제사도 한두 가지 음식으로 하지 옛날처럼 가지가지 다 갖추고 안 하잖아. 과일 사가는 손님들도 사과 몇 개, 배 몇 개 이렇게 사 가지 많이 안 사 간다”고 말했다.
20년째 건어물 가게를 하는 박지원(가명, 45세) 씨도 “평소보다 사람이 많기는 한데, 이건 조용한 편”이라며 “3호선 생기고, 뭐 행사도 많이 하고 해도 다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은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추석 대목 특수를 기대했지만, 북적이던 손님들은 대목 장을 보러온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이미 서문시장은 관광지가 돼버린 걸까.
평소 폐백 음식을 만들어 파는 조해진(가명, 50대) 씨는 추석 명절 동안에만 부침개 등 제사음식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조 씨는 “폐백 음식이야 장사 안된 지 오래됐지만, 추석 하루라도 팔아보려고 용 쓰는 거지”라며 “그냥 장사는 보통으로 한다 이렇게 써놔라”고 말했다.
서문시장에서만 40년째 한복을 지어 파는 이복희(가명, 76세) 씨는 “장사하는 꾼들이 많아 그런지 장사가 안된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인터뷰 도중 찾아온 한 손님은 한참 한복을 골라보더니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만 남겼다.
이 씨는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장사가 안된다. 시장에 사람만 많지 손님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목되면 하루 10벌 이상도 팔았는데 요즘은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오랫동안 서문시장을 터전으로 살아온 이 씨인데도, 북적이는 시장 속에서 왠지 모르게 외로워 보였다.
오후 1시,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다. 서문시장과 함께 손 꼽히는 대구 전통시장인 대구시 북구 칠성동 칠성시장을 찾았다. ’50년만에 본시장 등록 허가’를 축하하는 현수막 아래 시장 입구는 서문시장만큼이나 북적여 보였다.
생선을 손질하는 상인들은 무척이나 바빴다. 상어 고기를 손질하던 한 상인은 “보시다시피 손님이 없어요”라며 인터뷰를 피했다.
옆 생선가게 상인이 “지나가는 사람만 많지 손님이 없다. 추석 대목치고는 너무 조용하다”며 대신 나서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세상이 젊어져서 그런지 이런 시장에 물건 사러 안 온다. 우리는 시장에 사니까 경기가 좋은지 안 좋은지 잘 모르지만,?해마다 손님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손님이 없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장은 북적였다. 추석 대목에 제일 손님이 몰릴 것 같은 제사음식 파는 골목을 찾아갔다. 어둑한 시장, 비좁은 골목 때문에 시장이 북적여 보였던 걸까. 칠성시장에서 45년째 제사음식을 만들어 파는 서옥순(가명, 70대) 씨도 어김없이 푸념을 늘어놨다.
서 씨는 “제사음식은 팔월(추석) 당일 바로 쓰는 거니까 우리는 그 하루 보고 이만큼 준비한다. 팔월 지나면 뭐 먹고 살지 그게 걱정이다”며 “요즘은 명절이라고 해도 제사도 잘 안 지내고, 홈플러스, 이마트 다 가고 여기 안 온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서문시장을 부러워했다. 이어 서 씨는 “안 그러면 다 대신동(서문시장) 가겠지. 대신동은 요새 사람 많다고 하더라. 손님 없어도 오다가다 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있겠지. 다른 재래시장은 다 똑같다”며 “해마다 장사가 영 아니다. 전 펴놓고 하나도 못 팔고 노는 날이 더 많은데 뭐. 우리는 옛날부터 장사하던 가락이 있어서 못 놓으니까 하는 거지 장사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서 씨는 “내가 하는 이야기 그대로 쓰면 된다”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는 “지난주엔가 권은희 국회의원이 와서 그러더라. ‘장사 준비 많이 해 놓으셨네, 장사가 잘 되나 봅니다’ 그러더라”며 “팔월 대목에만 내려와서 보니까 그렇지. 한창 장사 준비해 놓으면 오니까 그렇게 보인다. 평소에 좀 와서 보라고 써달라”고 말했다.
바뀐 명절 문화로 특수를 노리지 못해도 ‘가락’이 남아 시장을 떠날 수 없다는 상인들에게 이번 추석은 따뜻한 추석이 될 수 있을까.?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서 씨는 “팔월 잘 쉬래이~”하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