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24일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예정보다 한 시간쯤 이르게 경북 구미 상모동 박정희 생가 공원에 도착했다. <뉴스민>이 6.13 지방선거에 맞춰 준비한 선거 기획 보도 ‘경북민심번역기’ 첫 방문지는 경북 구미다. 오후 1시부터 박정희 동상에서부터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예정했다. 첫 방송, 첫 방문지, 실수 없는 준비를 위해 1시간을 서둘렀다.
2011년 시민 성금 6억 원을 들여 세운 동상은 이제 구미 상징 조형물처럼 돼 버렸다. 탄핵당한 전 대통령 박근혜 씨의 국정농단이 밝혀진 후로는 태극기가 물결쳤다. 이른바 ‘애국·보수’ 정치세력은 이곳을 성지로 삼은 듯 찾아들었다. 차량 약 30대가 서 있는 주차장 한켠에 ‘박근혜 대통령 인권 유린 중단 및 무죄 석방 촉구’라고 크게 써 붙이고 자리 잡은 천막이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경북 23개 시·군 중 구미를 가장 먼저 찾은 데는 그런 연유가 있다. 보수의 본산으로 각인된 경북을 상징해서 보여줄 수 있는 도시는 구미만 한 곳이 없었다. 동시에 구미는 경북에서 가장 역동성이 높고, 변화 가능성이 큰 곳이기도 하다. 경북 시·군 방문 계획을 세운 후 과거 선거 연혁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여느 경북과 다른 결과를 구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구미 유권자 중 다수는 경북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표를 줬다. 그런데 구미 내 27개 읍·면·동 중 공단2동, 진미동, 양포동 3곳만 따로 살펴보면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세 곳은 전부 문재인 대통령이 홍 대표보다 많이 득표했다.
대선을 읍·면·동으로 구분해서 살펴보면 경북 332개 읍·면·동 중 226곳에서 홍 대표가 문 대통령을 이겼는데, 유독 구미에서는 ‘무려’ 3곳에서 문 대통령이 이긴 결과가 나왔다. 공단2동, 진미동, 양포동의 ‘다른 선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그 이유를 현장에서 찾아보자는 것도 구미 방문 목표였다.
보수 본산, 구미 박정희 생가를 시작점으로
‘문’이 ‘홍’을 이긴 마을 세 곳, 이유 찾으러
전도양양한 기대를 품고 찾은 박정희 생가 공원은 주차된 차량 30대가 무색하게 사람 만나기가 힘들었다. 주차된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잠시 후 인근 카페나 식당에서 되돌아와 차량에 몸을 실었다. 근근이 든든히 채운 배를 앞세우고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있었지만, ‘그런 거 안 한다’거나 ‘잘 모른다’면서 손을 휘젓고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인권 유린 중단 및 무죄 석방 촉구’ 천막 아래서 나온 이들뿐이었다.
태극기를 한가운데 박아 놓은 벙거지를 쓰고, 왼쪽 가슴에는 태극기와 박정희-육영수 부부가 새겨진 배지를 단 남성은 설렁설렁 취재진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방선거 민심 청취를 하러 다닌다는 이야기에 그는 내가 할 말이 있다며 취재진을 천막으로 이끌어가려 했다. 천막으로 끌려가는 대신 5분여간 주차장 가운데 서서 이야길 듣고 돌아 나오면서 ‘저 사람을 어디에서 봤는데···’ 기억을 더듬다가 ‘아!’ 2년 전에 쓴 기사를 찾았다.
2016년 11월 14일 박정희 탄신제가 있던 날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이곳을 찾아 박근혜 퇴진 피켓 시위를 했다. 그날 그곳에서 해고노동자들의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박근혜 만세”, “박정희 만세”를 목놓아 소리쳤던 남자, 그 표정이 너무 슬퍼서 사진을 찍어 남겼던 그 남자였다. 그 옆에서 더 슬픈 표정으로 남자의 사진을 찍던 여자는 오늘도 그 옆에 있었다. (관련기사=‘박정희 탄신제’, “박근혜 퇴진” 시민에 욕설·폭행한 박근혜 지지자(‘16.11.14))
2년 만의 재회(?)를 뒤로하고 서둘러 공단2동, 진미동, 양포동이 ‘다른 선택’을 한 이유를 찾으러 자리를 옮겼다. 구미에서 오랫동안 노동조합 운동을 하고, 민주노동당 활동도 했던 배태선 민주노총 구미지부 교육국장을 만났다. 배태선 국장을 만난 데는 이들 세 곳의 ‘다른 선택’에 노동조합 운동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 추정했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여섯 차례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시장-도의원-시의원 대부분의 선출직 공직 대부분을 한국당에서 독식했다. 한국당 독주에 대응해 후보를 내고 맞선 정당은 뜻밖에도 민주노동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한국당과 무소속 대결로만 치러지던 시장 선거에 2002년 처음 후보를 내놨고, 2006년에도 후보를 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4년에야 시장 후보를 냈다. 2002년, 2006년 민주노동당 시장 후보로 나선 이들은 모두 민주노총 구미지부 의장 출신이다.
퍼즐이 조금 맞춰졌다. 공단2동, 진미동, 양포동은 구미공단 지역과 인접해 있고, 인구 구성도 젊은 인구가 많다. 2015년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 구미시 평균 연령은 36세지만, 공단2동 31.6세, 진미동 31.2세, 양포동 29.9세로 훨씬 더 어렸다. 같은 기간 경북 평균 연령이 43.1세. 경북을 망라해도 3곳은 매우 어린 동네였다.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젊은 노동자들이 보여주는 ‘다른 선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시장 선거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배 국장은 “아침, 저녁마다 퇴근 시간에 공단에 서서 인사를 하면 거의 다가 경적을 울려줬어요. 빵빵! 힘내세요! 너무 분위기가 좋아서 이러다 당선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에는 구미 지역 노동조합 운동도 물이 오르던 시기였다. 노조원만 약 1만 2천여 명에 달했다. “합동 유세가 있을 때였는데, 어느 고등학교에서 유세를 했는데 그때 우리 후보한테 ‘감동했다’, ‘지지한다’고 전화도 많이들 왔었죠.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는 개표하는 날까지 전화가 와서 공단 쪽 투표함 열면 우리가 이길 거라고 하기도 했어요”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후보가 받은 득표는 11.79%에 그쳤다. 배 국장은 분위기와 달랐던 결과를 받아들고 “절망했다”고 말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가까운데 있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투표하러 갈 시간적·육체적 여유가 없었다. 실제로 당시 투표율을 보면, 구미시 전체는 43.6%였는데 공단2동(35.6%), 양포동(36.9%), 진미동(40.7%)을 포함한 공단 인근 동네는 이보다 낮고, 공단과 멀고 구미 정주 인구가 많이 사는 읍면으로 갈수록 높다.
“당시만 해도 선거권 있는 노동자들에게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대중적이지 않았고, 구미는 다 3교대 사업장이어서 출근을 했어요. 안 놀거든. 그러니까 투표를 할 시간이 없죠. 그러면 노동자들은 반드시 당선된다는 확신이 있거나, 반드시 당선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없으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거예요. 그게 문제예요”
때문에 배 국장은 최근 공단2동, 양포동, 진미동이 다른 정치적 의사 선택에 적극적인 것을 두고 “노동자들의 삶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수많은 사업체가 구미를 떠나거나 문을 닫았다. 그나마 남은 사업체들도 처우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절박함이 대선에서 표출됐다는 거다.
역설적인 건 사업체가 문을 닫고 떠나는 건 공단 노동자들이 ‘다른 선택’을 하는데 영향을 미치지만, 기존 정주민이나 보수적 성향의 상인들이 보수성을 유지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배태선 국장을 만나고 찾아간 인동시장 상인들은 사업체가 떠나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인동시장 카페에서 지인들과 커피를 대화를 나누던 이상호(59) 씨는 13년 전 상가를 내고 구미에 자리 잡았다고 소개했다.
이 씨는 “도시가 유령도시로 바뀌어 버렸다”면서 “구미 경제가 너무 낙후되어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고 뭐고 정치 하는 사람 자체가 다 밉다. 민주당은 적폐청산 하면서 내내 사람을 잡아넣는다. 구미 사람들, 삼성, LG하고 먹고 사는데 뭣하면 삼성 수색하고, 사람 잡아넣는다. 말로만 일자리 창출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 씨는 “경제를 활성화해줘야 하는데 그런게 전혀 없잖아. 정치 하는 사람들 말밖에 더 있나. 이번엔 선거도 안 할 거예요. 투표도 안 해. 하면 뭐하나, 기대가 요만큼이라도 되어야지”라고 덧붙여 말했다.
마찬가지로 인동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재경(58) 씨도 “얼마 전에도 LG디스플레이가 400명 정도 올라갔어요. 기업들이 자꾸 나가는 게 문제”라며 “구미는 물류가 안 좋아서 간다고 해요. 물류 조건이 안 좋은데 박정희 때문에 여기가 많이 좋아졌잖아요. (박정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 유치되고 했는데 이젠 다 그리 간다고 하더라”라면서 아쉬운 마음을 남겼다.
정 씨는 최근에 전라도 지역을 다녀올 일이 여러 번 있었다면서 “거긴 완전 딴 세계예요. 일주일 단위로 가면 매일 바뀌어요. 공사차가 거기 다 모인 것 같아요. 외국 마을도 유치하고 엄청 대단해요. 땅을 메워서 하는데, 가보면 진짜 딴 세계야”라고 정권이 바뀌고 지역 차별이 이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후 4시 20분경, 라이브 방송을 종료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다시 정 씨의 식당을 찾았을 때, 정 씨는 반가운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취재진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오후 5시까지 더 찾아온 손님은 여자 손님 1명뿐이었다. 그 여자 손님은 약 1시간 30분 전 취재진이 정 씨를 인터뷰할 때 식당 문 앞에서 서성이다 발길을 돌려 나가던 단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