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본지 천용길 기자는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히로시마에서 열린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에 다녀왔습니다. 행사와 더불어 일본 사회운동과 아베 정부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에 대한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히로시마에서 만난 사람]이란 부제로 평화운동가 기타무라 메구미 씨, 최봉태 변호사, 일본공산당 히로시마현지부의 테루미 모치즈키 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군 위안부, 세월호 문제는 다르지 않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나 세월호 문제를 대하는 박근혜 정부를 보세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지 않는 아베 정부나 잘못됐다고 하면서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를 보세요. 역사 문제인 동시에 평화의 문제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처음 대화를 나눈 평화운동가 기타무라 메구미(42, 일본 히로시마) 씨. 그녀는 전업 운동가는 아니다. 직업은 수화통역사가 본업이다. 그녀는 스스로 “나는 평화운동가가 아닌 진짜 평화를 바라는 시민”이라고 했다. 스스로 시민이라고 자처하는 까닭은 겸손함을 드러내기 위함만은 아니다.
원폭 투하 탓에 히로시마에는 평화운동단체가 많아요. 원폭 희생자 권리 구제 운동, 핵무기 사용 반대 운동, 전쟁 반대 운동 등…그런데 각자 자신의 의제에만 갇혀 있어요. 핵무기에 반대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죠. 또, 평화운동을 한다면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여기기도 하죠. 우리는 어떤 평화인가 생각해봐야 해요
첫 만남에서 그녀는 내게 선물을 건넸다. 손수 만든 세월호 추모 노란리본 목걸이였다. 한국에서도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가 수면 아래로 점차 가라앉고 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이 놀라움은 그녀의 삶과 생각에 대한 무지였음이 드러났다. 손목에는 세월호 추모 팔찌를 차고 있었고, 핸드폰 덮개에는 세월호 리본이 붙어 있었다. 또, 손가방에는 조선인 학교 차별 반대 버튼이 달려 있었다. 세월호 문제에 왜 관심을 가지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후쿠시마 문제와 다르지 않아요.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부끄럽게도 일본어를 전혀 모르던 기자는 메구미 씨에게 다음날 통역을 부탁했다.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고, 다음 날 아침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수화통역사인 그녀는 주로 저녁 시간에 일한다고 했다. 일본수화뿐만 아니라 한국수화까지 한다. 통역 일이 없을 때가 그녀의 활동 시간이다. 아베 정부의 ‘안전보장법안’ 반대, 원폭 피해자 지원, 일본군 위안부 규명, 세월호 추모 등 활동 폭이 상당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잠시 헤어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귀환(한일 민간인 단체는 9월 12일부터 홋카이도에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을 수습해 18일 부산으로 귀향하는 일정이 있었다)을 위한 준비 약속이 있다고 했다.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았기에 저녁 시간 인터뷰를 부탁했다.
평화공원 구석구석을 다녔다. 희생자 위령비 주변으로 단체 방문한 이들이 많았다. 초등학생부터 회사원까지. 히로시마 내 학생들은 성인이 되기까지 이곳에 몇 번씩은 단체 방문을 한다고 했다. 또, 기업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평화공원을 방문해 원폭 이후 처참한 상황을 되새긴다고 했다. 히로시마 원폭 돔(원래 1915년 세워진 히로시마시 상업전시관인데, 원폭 피해로 반파되고 남아 있는 유적 중 하나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앞에는 원폭 피해 생존자가 외국인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과 원폭 이후 피해 내용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 피해자와 강제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핵을 투하한 미국 이야기도, 동아시아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일본 이야기도 가려져 있었다.
원폭 피해자 가운데 왜 외국 사람이 있을까
의문에서 시작한 평화운동
왜 일본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지 않나
세월호 대하는 한국정부를 보면 똑같다
히로시마역 앞에서 메구미 씨를 만났다. 그녀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하고, 걸었다. 가톨릭 신자인 그녀가 다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성당에 들렀다. 그리고 다시 평화공원을 지나 1시간 만에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무실은 대형 복사기가 없었다면 가정집으로 여길만한 공간이었다. 책과 사진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벽면 높은 곳에 자리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사진, 한국 소설과 한국사 교과서, 독도 관련 서적을 보며 그녀의 관심사가 보였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책은 세월호 기록집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밀양을 살다>였다. 그녀는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 집회에도 참석했다.
무엇이 그녀를 국경을 뛰어넘는 평화운동으로 이끌었을까. 그녀가 생각하는 ‘평화운동’의 범위가 궁금해졌다.
평화운동을 의식한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예요. 관심은 초등학생 때부터 두고 있었구요. 히로시마에는 원폭 피해자가 많잖아요. 그런데 왜 이 피해자 가운데 외국 사람이 많을까 궁금했어요. 그러다 보니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원폭에 대한 설문조사 활동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한, 일, 중, 동남아시아 시민 연대 필요하지만
일본이 우선 사과해야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인 고등학교 2학년, 그녀는 필리핀 네그로스섬을 방문했다. 수화통역을 배운 덕분이었다. 히로시마에는 평화운동가가 많았지만, 필리핀에는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평화운동을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무렵 그녀는 한국인 교사·고교생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한·일 과거사 문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소위 한류에 큰 관심이 없던 그녀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계기는 드라마였다. 2004년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2001년 SBS방영)을 본 친구가 배우 이병헌 씨의 팬이 됐다. 친구는 이병헌 씨를 보러 한국에 같이 가자고 졸랐고, 그해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메구미 씨는 최근 이병헌 씨의 스캔들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돌그룹보다는 세월호 집회에 참여한 가수 김장훈 씨, 유민 아빠 김영오 씨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가 치료를 위해 히로시마에 오면서 만났어요. 피폭자 수첩 신청을 도와주고, 한국인 청각장애인 수화통역을 도와줬어요. 피해자 가운데 청각장애인도 꽤 있었는데, 이들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세워진 조선인농아학교에 다녔던 분들이에요. 그래서 일본수화통역이 필요했거든요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를 알아가면서, 강제노동과 위안부 문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왜 일본 정부는 사과하지 않을까, 한국 정부는 왜 공식적 사과 요구를 하지 않을까 등이 그녀에게 의문으로 남았다. 그래서 시작한 역사 공부로 인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민낯도 보게 됐다.
집에서 뉴스를 통해 세월호 사고를 봤어요. 처음 뉴스에서는 전원 구조했다고 하는데, 조금 지나니까 구조가 안 됐다고 했어요. 세월호를 보면서 한국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이 피해를 당했는데, 왜 구조하지 않고 규명을 안 하는지…위안부 문제를 보면 사과하지 않는 아베 정부가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세월호를 보면 한국정부도 그렇지 않나 싶었어요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만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피해자 위치에만 있지 않다. 베트남전쟁 파병과 라이따이한 문제에서 한국은 가해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국이 먼저 베트남 전쟁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지원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인 중에는 한국의 베트남에 대한 사과가 없는데 우리가 왜 사과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일본에 핑계를 줄 뿐이에요. 우선 일본이 먼저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해요
그녀는 단호하게 ‘일본의 사과’가 우선이라고 답하며 말을 이었다.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피해자와 시민들이 같이 운동해야 해요. 지금도 민간교류는 하고 있어요.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죠. 같이 운동해도 일본 정부는 바뀌지 않아요. 강제노역 유골 봉환 문제도 비슷해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도 마찬가지인데요. 일본 정부가 사과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아요
독도?문제를 꺼냈다. 위안부 문제만큼이나 민감한 문제다. 기자가 ‘독도는 한국 땅이 아니에요’라고 말하자 메구미 씨는 펄쩍 뛰었다. (그녀의 방 한쪽에는 독도가 표시된 조선시대 지도가 걸려 있었다) 독도 문제는 역사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원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이 때문에 한일 양국이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다.
절대 안 돼요. 독도 문제를 두고 한국에서 공유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좋지만, 일본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잘못됐어요. 역사를 보면 독도는 엄연히 한국 땅이에요. 한국에서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일본에서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까요. 평화운동 하는 사람들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요. 원폭 피해자 운동 하는 사람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다수거든요. 독도는 역사문제이고, 한국 땅이에요
아베는 전쟁을 좋아하고 미국이 좋아하는 사람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께, 박근혜 아버지는 다까기 마사오
아베와 박근혜 정부 모습 비슷해
지금은 평화 상태가 아니라는 인식 필요
기자는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 ‘국제주의적으로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일본 평화운동에 대한 한계가 녹아 있었다. 그래서 일본 사회운동에 관한 질문을 이어갔다. 최근 아베 정부의 법 개정에 반발한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도 알려졌던 터였다. 그녀도 13일 7천여 명이 모인 히로시마 ‘아베 반대, 전쟁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아베는 전쟁을 좋아하고 미국이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외할아버지가 기시 노부스케(만주국 정부 산업부 차관 역임, 일본 전 총리) 잖아요. 아베랑 박근혜가 비슷한데요. 박근혜 아버지도 다까끼 마사오(박정희) 잖아요. 히로시마에는 평화운동가, 피해자운동, 헌법 9조를 지키는 단체 등 활동가들이 많아요. 그런데 일반 시민과 거리가 있어요. ‘노 아베, 노 워’ 같이 가자고 하면 안 가요. 평화운동하고 싶지만, 참석한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면 안 된다고 그래요. 불만이 있어도 묵묵히 있는 사람이 많아요. 13일 열린 집회에도 7천 명이 왔지만, 일반 시민들은 거의 없었어요. 그에 반해 한국 세월호 집회를 가보면 자발적인 시민들이 많아요. 한국 시민들은 파이팅 넘치고 열심히 해요
조금 머쓱했다. 한국도 사회운동의 위기가 거론된 것이 한두 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본은 10년 후 한국의 모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우려가 들었다. 일본의 정당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어떨까. 일본녹색당과 일본공산당을 지목해 물었다.
저는 소속된 정당이 없어요. 일본공산당은 열심히 하는 사람들 많아요. 그런데 다들 나이가 많아요. 젊은층과 소통이 잘 안 돼요. 그래서 안타까워요. 녹색당요? 선거 때는 본 적 있는데 평소에는 보기 힘들어요. 선거는 나오지만, 활동이 없어요. 특별히 지지하는 정당은 없고…(한국의) 데모당이 좋아요
이야기를 하던 가운데 그녀가 내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온라인 서명 사이트였다. ‘자민당과 공명당 의원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는 서명운동이었다. 주최측은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에 이 서명을 보낼 계획이다. 전쟁가능 국가로 바뀐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일본 시민은 전쟁에 대한 원죄가 많이 있어요. 결국, 일반 시민들이 나쁜 사람들에 대항한 목소리를 내야 해요. 저도 운동에 대한 선생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라고 생각해요. (외치는 평화가) 어떤 평화인지 생각해봐야 해요. 지금은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잖아요. 지금 일본과 동아시아는 평화 상태가 아니라는 자각을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해요. 일본 시민도, 한국 시민도
15일 히로시마에서 헤어진 메구미 씨와 22일 동대구역에서 다시 만났다. 그녀는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봉환 일정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추모제와 장례식까지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산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대구를 ‘박근혜’의 고향으로 기억하는 그녀에게 대구의 다른 면모를 소개해주고 싶었으나, 잠깐 이야기를 나눌 시간밖에 없었다. 그녀가 반복해서 던진 말을 곱씹어본다.?“지금은 평화 상황이 아니다. 어떤 평화인가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