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잊지 않겠다고 했잖아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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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딸이 노란리본 고리를 유치원 가방에 매달아 달라 했다. 예뻐서일까? 우쭐대며 신이 난 아이에게 물었다. “그게 뭔지 알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응. 세월호 언니, 오빠들 하늘나라 갔어. 잊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아빠랑 나랑 노래도 같이 불렀어.”

딸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시민합창단으로 ‘잊지 않을게’ 노래를 같이 불렀던 것도, 노란리본의 의미도, 언니오빠들이 먼 여행을 떠났다는 것도 말이다. 그리고 나에게 또 묻는다. “근데 왜 안 구했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사실 아빠도 그게 정말 궁금해. 도대체 왜 못 구했을까. 아니 안 구했을까. 딸의 모습이 기특해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아이들이 그리워서 또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2014년 4월 16일, 악몽 같은 그 날을 힘들게 다시 떠올린다. 전원 구조의 오보. 줄어드는 구조자와 늘어나는 실종자와 사망자. 당연히 구조되어야 할 사람들이 희생자가 되어 한 명, 두 명 올라온다. 억장이 무너진다. 사상 최대의 작전은 없었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다. 애원하고 사정했지만, 국가는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곡과 날조를 일삼고 비열하고 잔인한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학생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얼마나 귀한 자식인데,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슬픔과 분노, 후회를 그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의 온갖 신은 다 찾으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간절함과 무기력함이란.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버릇처럼 자고 있는 딸의 다리를 주무르며 매일 밤 울었다. 만약 이 아이가 내 곁에 없다면? 다시는 볼 수 없다면? 생각만 해도 지옥이 따로 없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 속에 너무 힘들었다. 세상 모든 부모가 다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아빠가 되고 나서 겪은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슬픔은 차원이 달랐다.

304명의 희생자, 5명의 미수습자. 너무 많은 대가와 희생을 치렀다. 그리고 미수습자 5명 중에는 우리 딸과 같은 또래 혁규, 나와 같은 아빠 재근 씨가 있다. 당시 겨우 여섯 살 혁규. 한 살 아래 동생에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아빠와 함께 배 안에 남은 아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아빠 추워. 무서워. 죽기 싫어.” 아빠에게 애원했을 것이다.

아빠는 “아빠가 지켜줄게. 아빠만 믿어. 아빠가 우리 혁규 지켜 줄게.” 애써 달랬을 것이다. 구조를 기다리는 끔찍하고 간절한 시간. 나라면 어땠을까. 그 상황이 눈에 선해서 아프고 괴롭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버텼지만 아빠와 아들은 생을 달리했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제주도에서 단란한 가정을 꿈꿨던 혁규네 가족은 미수습자로 남은 아빠와 아들, 희생자가 되어버린 엄마라는 비극 속에 생존자 동생은 홀로 남겨졌다.

4년이 지난 지금, 혁규 동생은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책가방을 메고 동생의 등굣길을 함께 하는 오빠는 없다. 아침밥 먹이며 머리 땋아줄 엄마도 없다. 준비물 같이 사러가자고 조를 아빠도 없다. 그리고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시원한 답도 해줄 수 없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그깟 ‘사고’로 치부한다. 돈 때문에 그런다고 조롱한다. 추모공원을 세우는 것도, 같이 슬퍼하고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도 반대한다.

진실을 밝혀야 할 조사위원회는 아직도 유족들과 시민들이 반대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 살아도 산 게 아닌 생존자들 앞에 여전히 잔인한 현실이다. 과연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졌는가? 왜 배가 가라앉았고, 왜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가 말이다. 아직 진실은 가라앉아 있다.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다가왔다. 사실 일상의 바쁨에 세월호 참사가 이제는 ‘내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혁규를 떠올려본다. 내 아이 같아서, 미안해서 또 눈물이 맺힌다. 미안한 마음으로, 함께 하겠다는 마음으로 4주기를 맞이하는 광장집회를 나갈 것이다. 예쁜 노란 리본을 아이 가방에 달고 내 옷깃에 노란 배지를 달고 ‘잊지 않을게’ 노래를 함께 부를 것이다.

지하철에서 만나 교복 입은 학생 가방에 노란리본이 매달려 있다. 앞의 자동차 뒤편 유리에 노란리본 스티커가 붙어있다.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기억하고 함께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렇게 모두 잊지 않겠다고. 나도 우리 딸과 함께 약속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