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미투, 학내 상담소 아닌 ‘대나무숲’으로 가는 이유는?

대구·경북 12개 대학, 학내 상담 건수 크게 늘지 않아
처벌보다 말하기 효과, 비밀 보장될까 신뢰 문제도

14:44

“학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교육부 성희롱·성폭력 특별 신고 창구 안내 갈무리

정부가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 운영 실태조사에 나섰다. 각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 미투(#Me_too, 나도 고발한다) 폭로가 쏟아지는 동안에도 교육부 온라인 신고센터로 접수된 신고는 지난 한 달 동안 37건, 이 중 대학 미투는 13건에 불과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대구·경북 지역 대학 중 미투·위드유 선언을 공개적으로 한 곳은 경북 포항 포스텍이 유일하다. 한 비정규직 교수가 학내 익명 커뮤니티에 쓴 미투에 총학생회, 총여학생회 등 학내 자치단체가 곧 지지 선언에 나섰다.

당시 해당 교수가 직접 학내 상담센터에 신고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포스텍 페미니즘’ 회원인 변서현 씨는 “센터장이 피해 교수님의 학부 직속 정교수인 상황이라, 직접 고발하기가 어려웠던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시 모 대학 재학생도 지난 3월 8일, SNS에 실명으로 미투 폭로를했지만 나흘만에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기 어려울 거 같다’는 이유로 미투를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렸다.

<뉴스민>이 대구·경북 국공립대학교를 포함한 사립대 12곳에 대한 성폭력 신고 및 상담 기관을 알아봤다. 대부분 대학이 ‘성희롱·성폭력 예방에 관한 규정’에 따라 인권센터, 상담센터, 상담소 등 형태로 성희롱·성폭력 신고와 상담, 징계, 고소·고발 지원 창구가 있었다.

▲대구·경북 국·공·사립대 12곳 성희롱·성폭력 상담소 현황

대구대학교는 미투 운동이 시작되자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별도로 설치했다.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통합적으로 신고받던 것에서 별도로 이메일, 전화 창구를 개설했다.

대구대 특별신고센터 관계자는 “최근에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빨리 신고를 접수하고 처리하기 위해 신고센터를 만들었는데, 예전에 비해 신고가 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이미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상담센터나 학생회 등을 통해서 신고가 들어왔는데 특별신고센터를 통해서 신고 절차가 더 간소화됐다”고 설명했다.

비밀 보장 원칙에 따라 피해 신고 건수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들 대학은 최근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특별히 신고가 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익명으로 폭로하는 것이 곧 신고나 처벌을 위한 건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남대학교 양성평등센터 관계자는 “사실 처벌하고 싶으면 학교보다 경찰을 가는 게 빠르다. 익명으로 이야기하는 거 자체로 피해자들은 치유받기도 한다”며 “신고를 하고 조사를 받는 과정도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저희도 상담할 때 무조건 신고하라고 안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대학 내 상담소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믿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컸다. 대학마다 규정에 따라 성희롱·성폭력위원회를 꾸리고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비밀 보장 원칙을 두고 있지만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탓이다.

계명대학교 재학생 함주영(21) 씨는 “인권센터가 있는 걸 얼마 전에 알기도 하고, 학내에서 일어난 일을 학내 상담소에 이야기하기 어렵다. 비밀이 유지될까 걱정도 돼서 오히려 밖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거 같다”며 “인권센터가 미투운동을 지지한다거나 하는 안내도 못 봤고, 이전에 학내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 성희롱 사건이 처리된 걸 봤을 때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북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KFC’에서 활동 중인 재학생 김가현(24) 씨도 “실제로 제가 당한 일을 학내에서 해결해보려고 하기도 했는데, 교수들이 결정권자이기도 하니까 쉽지 않았다”며 “10대 때 ‘we-class’도 실제로 신뢰도가 매우 낮았는데, 그런 경험들 때문에 교내 시설로는 발길이 가지 않는 거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 4일 ‘교육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향후 계획’을 발표하면서, 학내 성희롱·성폭력, 선후배 간 폭력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라고 각 대학에 권고했다. 또, 성희롱·성폭력 관련 사건을 고의로 은폐하거나 무대응한 교원은 해임, 파면 등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방안도 내놨다.

김가현 씨는 “학내 인권센터가 있기는 하지만 좀 더 학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내용으로 홍보하면 좋겠다. 미투를 폭로하는 피해자들은 이미 많이 지쳐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미투를 해도 ‘여긴 믿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기면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