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열린 첫 미투(#me_too, 나도 고발한다) 집회에서 성폭력과 여성혐오 없는 세상을 위해 다같이 싸우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7일 오후 6시, 대구시 중구 대구백화점 앞에서 ‘다같이 싸우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는 주제로 첫 미투 집회가 열렸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나쁜페미니스트가 주최한 이번 집회에는 7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나온 미투 가해자는 공무원 상사, 야구선수, 미술작가, 알바 오빠, 동급생, 중학교 선생님, 랩퍼 등 다양하게 폭로됐다. 익명 미투 폭로를 위해 마련된 ‘미투 홍벽서’에도 체육 교사, 택시 기사, 지나가던 할아버지 등에 대한 고발도 붙었다.
정김지은(18) 씨는 중학생 시절 좋아하던 야구팀 2군 선수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정김지은 씨는 “지금껏 일어난 일을 되새겨보면서 내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아니 청소년만 아니었다면 그 선수가 나에게 그렇게 했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최근 저 말고도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 놀랍게도 그 피해자들은 모두 여성 청소년이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교실에서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50대 남자 교사에 대한 미투도 나왔다. 수업 시간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졸면 ‘한 교실에서 남녀가 잔 거야?’, ‘결혼할 때 찾아가서 같은 반 남자아이들과 잤다고 말한다’는 식이었다. 서현빈(16) 씨는 “이런 말을 들은 뒤로는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다. 학생을 졸지 않게 하려는 취지였다면 굉장히 효과가 있었다”며 “그런데 성적수치심을 이용해서 학생을 깨우는 게 올바른 걸까.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 친구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남성도 무대에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A(24) 씨는 “7년 전 동급생 4명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최근 경찰에 신고를 하러 갔는데, 신원을 가린 미투는 미투가 아니라고 하더라”며 “저의 신원을 드러내는 건 두렵지 않다. 오직 가해자들 신원이 밝혀지고 처벌받으면 좋겠다. 남성도 남성성의 피해자일 수 있고, 성폭력 피해자일 수 있다. 피해자들이 계속 함께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서(16) 씨는 페미니즘 공부를 하기 시작한 후 당한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은서 씨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친구들과 동아리를 함께 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다른 학교 남학생들에게 여러 비하 발언을 들었다”며 “그런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함께하면서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날 모두 9명이 직접 또는 대리 발언으로 피해를 폭로했다. 폭로와 지지 발언으로 이어진 집회는 2시간 동안 이어진 후, 동성로 일대를 행진하며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은 보라색 풍선을 들고 “다 같이 싸우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은 사소하지 않다”는 등 구호를 외쳤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미투 때문에 피해를 받으면 어떡하나, 세상이 망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세상은 진작에 망했어야 한다”며 “우리는 더 길고 오래, 안전하게 말할 것이다. 피해자, 목격자, 지지자들의 분노를 담아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오는 20일 오후 7시, 대구시민공익지원센터 상상홀에서 여성학자 권김현영 교수와 함께 ‘미투 그 이후’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 예정이다.
한편,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미투 특위’를 꾸리고 피해자 상담, 법률, 의료 지원을 하고 있다.